김재하의 진보의 창

필자는 철도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해 온 30여년을 포함하여 4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왔다.
철도노조 간부, 민주노총지역본부장,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한 후 올 6월 말 철도기관사로서의 정년을 마쳤다. 현재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이자 전국민중행동(준) 조직강화특위장으로 연대전선운동에 뛰어든 필자가 그동안 진보운동과정에서 느낀 점을 가감 없이 연재한다. 특히 최근 촛불 이후 변화 발전하고 있는 객관적 상황과 각 운동 영역에서 제기되는 각종 쟁점에 대하여 사회과학적인 개념이 부족하고 표현이 좀 거칠더라도 건강한 토론과 문제의식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쓴 글이라는 것을 밝힌다.

▲ 부산시위의 절정을 이룬 1987년 6월18일 부산 서면에서 시민들이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치고 있다. 이날 시위 참가자는 3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 부산시위의 절정을 이룬 1987년 6월18일 부산 서면에서 시민들이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치고 있다. 이날 시위 참가자는 3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지금의 진보운동(민주노조운동, 진보정치운동 등)은 전진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체 또는 퇴보하였는가. 진보활동가에게 현재의 진보운동 발전정도를 어떻게 보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입장과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재를 이 주제로부터 시작한다. 
촛불 정권에 대하여 실망하고 비판하던 이들이 그 책임 당사자인 민주당에 몸을 싣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수구보수세력이 부활과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승리에 대하여 확신이 있어야 운동에 대한 신념이 생기며 굳센 의지로 투쟁을 전개해 나갈 수 있다.

운동의 전망이 부재하면 옆길로 새기 쉽다

대선이 한참 남았는데 민주노총 일부 간부들이 민주당 각 후보 캠프에 몸을 담고 경쟁적으로 현장 간부 조합원들을 끌어 들이려 하고 있다. 다들 이전에는 노동해방을 외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뛰었던 사람들이다. 
민주당으로 가는 이유는 두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고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제 진보운동의 전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는 경우가 많다. 
지난 시기 진보운동의 흐름과 역사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민중들을 믿을 때만이 전망을 세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진보운동이 정체하거나 퇴보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진보운동을 계속한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리되면 민중을 믿지 못하고 승리의 전망도 불투명하여 패배주의에 빠져 결국 옆길로 새거나 역행하기 십상이다. 

패배주의는 저들에 대한 기대와 환상과 저들 힘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온다. 
촛불정권이 출범할 때는 기대도 많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자유주의 현정권의 본질은 드러나고 있으며 특히 노동자민중들 속에서는 현 정권을 포함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많이 걷혀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이 그토록 바라는 평등과 자주의 새로운 세상을 이룰려면 재벌과 미국을 뛰어 넘어야 하며 넘어설 수 있는 힘은 노동자민중들의 자주적인 의식과 역량에서 나온다. 
현재 우리 민중과 민족의 삶과 운명에 끼치는 그들의 힘은 매우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쥐고 있는 권력과 재력, 정치군사적 힘은 매우 강하며 기득권의 역사가 긴 만큼 뿌리도 깊다. 진보운동 전진의 역사와 노동자 민중의 힘을 보지 못하고 저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힘과 영향력만 보면 공포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진보운동의 역사를 보면 노동자 민중들은 그토록 난공불락처럼 세세만년 유지될 것 같았던 정권과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 6월 항쟁, 촛불혁명이 바로 그것이었다. 진보운동의 전진과 민중들의 힘을 믿지 못하여 기대와 환상, 공포에 빠져드는 일부 현상이 안타깝다.

진보운동의 발전 수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민중들의 의식, 주체역량의 수준이다

진보운동이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평가와 전망을 세우는 판단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진보운동이 발전하고 있는가 아닌가의 판단은 주체인 민중들의 의식과 역량(창조적 능력)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진보운동 또한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사람과 조직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정세와 조건보다는 주체역량의 변화 발전을 기본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서 객관적인 조건과 정세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객관정세를 분석하는데서도 주체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 동향이나 기성 정치권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분석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기초해서 투쟁을 어떻게 벌여 나가고 노동자민중의 주체역량을 강화할 것에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객관정세를 분석하는 것은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입장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4차산업의 분석 같은 경우도 노동과 자본의 입장은 다르다. 자본은 어떻게 착취를 잘해 이윤을 더 남길까가 관심사인 반면 진보진영은 과학기술발전이 전체 민중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다.
인류사회의 역사발전과정을 보면 민중들의 의식과 개조능력에 상응하여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중들의 자주적인 의식과 능력이 높아지는데 따라 낡은 사회제도가 청산되고 새로운 사회제도가 정립된다. 인류사회의 사회적 관계는 말하는 도구인 노예제에서 신분적 예속의 봉건제로, 자본의 지배와 예속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각 단계가 존재하는 것은 종전의 낡은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켜 나가는 민중들의 의식과 능력의 수준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봉건제에서 자본의 예속으로 이어진 것은 당시 민중들이 부르조아지의 침략적 착취의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으며 이를 뛰어 넘을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사회는 일찍부터 착취와 압박이 없고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염원했지만 그것이 현실화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 능력이 부족하던 것에 기인된다. 

우리 진보운동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비약적 발전이 예견된다

이 땅의 민중들은 동학혁명,4.19혁명,6월 항쟁,촛불혁명 등 수많은 민중항쟁을 이어오고 있다.
전개과정과 그 결과는 해당시기 민중들이 지향하는 의식 수준과 이를 수행하는 민중들의 준비정도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꾸준하게 발전하여 왔다. 동학혁명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부르조아혁명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역사의 주체인 그 시대 민중들의 가열찬 진보적 투쟁이기에 역사는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이 땅 진보운동은 사상과 이념, 조직과 투쟁 모든 영역에서 발전하고 있다.
민중들의 요구 수준은 절차적 민주주의, 초보적인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요구에서 사회 체제의 문제로 까지 발전하고 있다. 87년 민주항쟁때의 요구에 비하여 지난 촛불항쟁의 요구는 진일보한 요구였다. 지금은 촛불정권의 한계와 불평등의 심화로 평등과 자주를 위한 근본적인 전환까지 요구하고 있다.
노동의 경우, 이전에는 단위현장의 복지,임단협의 요구였다면 이제는 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투쟁까지 발전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새시대는 이렇게 열어 젖히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87년 대투쟁 이후 민중들의 조직적 역량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경우를 보면 이전에는 무풍지대였던 분야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으며 조직규모도 훨씬 성장하여 200만 민주노총 시대를 향하고 있다. 
노동진보정치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발전도상에 있다. 민주노총 결성이후 노동자정치세력화를 기치로 출발한 민주노동당의 출발 때를 비교해 보면 노동진보정치는 훨씬 발전해 왔다. 이념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수준에서 근본적인 변혁과 집권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대리정치, 청원정치에서 직접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 의회만의 정치에서 광장과 거리의 정치로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지금의 일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을 따름이다.
머지 않아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진보진영과 함께할 것이라 하면 ‘그러한 주장은 책에나 있는 관념적 주장 아니냐’ ‘이제껏 해 봤는데 잘 안되라. 그러한 세상이 언제 오겠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민중들은 자유주의 촛불정권에게 걸었던 기대를 걷고 있다. 코로나19의 상황으로 극심한 불평등 사회구조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으며 전쟁과 분단의 주원인인 미국의 패권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민중들은 깨치고 평등과 자주에 대한 요구는 날로 높아져 가고 있으며 일년 내내 투쟁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 어느때보다 바른 속도로 객관정세와 조건가 무르익어 가고 있으며 주체역량은 성장발전하고 있다.
분명히 할 것은 진보운동은 저절로 발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대를 앞장선 진보활동가들의 보다 높은 자각과 역할만이 진보운동의 비약적 발전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

진보 운동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민중의 힘을 믿지 못하고 발전을 보지 못하면 패배주의에 빠지고, 패배주의에 빠지면 그동안의 진보운동의 성과를 부정하고 냉소에 빠지게 된다. 
한번 패배주의에 빠지면 진흙땅 늪에 빠지는 것처럼 빠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기성정치권에 한발 디디면 애초에 가진 진정과는 달리 생각을 바꿀 것과 그들을 위하여 실적을 낼 것을 강요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극적 패배주의를 하다가 일부의 경우에는 함께 했던 진보진영에 대하여 공격의 화살을 돌리기까지 한다. 

근거없는 자부심은 자만이지만 이 땅에서 진보운동을 해 온 모든 진보활동가들은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일이다.
이 땅 진보운동의 역사는 해방 후 70년, 일제 치하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00년이다. 이렇게 긴 세월을 한결같이 진보운동을 이어 온 역사는 드물다.
특히 이 땅의 진보운동은 명줄이 끊어질 정도의 탄압의 시기를 이겨내었다.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진보운동은 압살당하고 기나긴 군부독재 치하에서 대중운동은 질식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땅 민중들은 쉼없이 투쟁하였으며 결국 87년 분출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의 진보운동은 매우 어려운 조건과 환경에서 진행하여 왔다.
일제에 이어 세계 최강의 미제국주의가 직접 관여하고 있으며 오랜 기간 천민자본에다 초보적인 부르조아 민주주의조차 실현되지 않고 있다. 진보운동의 발전은 분단과 국가보안법에다 반노동 사회가 이어져 온 상태를 뚫고 이룩한 성과라 더욱 값지다. 
외국의 진보운동의 역사와 경험을 잘 받아들여 우리 진보운동 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배우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외국의 경험과 현 상황을 무분별하게 비교 선망하면서 우리 진보운동의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스스로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진보운동은 이 땅에서 우리 민중들이 하는 것이다.

김재하

철도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해 온 30여년을 포함하여 4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왔다.
철도노조 간부, 민주노총지역본부장,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한 후 올 6월 말 철도기관사로서의 정년을 마쳤다.
재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이자 전국민중행동(준) 조직강화특위장으로 연대전선운동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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