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미국 대선 (9)

지난해 11월 3일 실시한 미국 대선 투표는 해와 달을 넘겨 대통령 취임식을 하고서야 결과를 확정했다. 하지만 1천만 명이 넘는 미국인은 아직 총을 든 채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수도 워싱턴D.C는 무장한 군인이 경찰을 대신하는 계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계 최강의 선진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꽃 선거, 그래서 세계는 미국에서 실시한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1. 위장된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아마 ‘차별’이 아닐까.

인종차별, 성차별, 임금차별, 지역차별 등 차이를 차별하는 사회에 민주주의가 낄 자리는 없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본 미국은 백인우월주의와 유색인종 차별이 난무하고,  빈부격차에 따른 극단적 차별이 고착된 사회였다.

차별은 반드시 증오를 부른다.

얼굴색 차이 때문에 차별받게 된다면, 가난을 이유로 권리가 차단된다면, 이런 차별이 대통령 후보의 정책에 드러난다면, 이런 사회에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면? 그 사회는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로 분열되고, 그 분열은 서로에 대한 증오를 낳고야 만다.

증오가 표현의 자유를 만나면 폭력이 된다.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뺏을 자유, 싫은 것을 짓밟을 자유는 누구도 가질 수 없다. 만약 이런 폭력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면 그 사회는 머지않아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이번에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 국회의사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무장 시위대에 습격당하고, 대통령 취임식 장소에 2만5천명의 군 병력을 투입 마치 계엄령을 방불케하는 광경을 놀랍게 지켜보았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 증오, 폭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어쩌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너무 큰 믿음이 ‘혹시 미국이’라는 합리적 의심까지 눌러버렸을 지 모른다.

2. 무너진 법치주의

미국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표방한다.

법치주의는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국민을 지배한다’는 국가운영원리다.

왕의 자의적 통치에서 법에 의한 통치를 주창한 근대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큰 진전이었다. 그러나 금전 관계가 주를 이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치는 자본의 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미국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자본에 매수된 정치인이 군대와 경찰을 움직여 노동을 착취하고, 이에 저항하는 피착취자를 법의 심판대로 보내는 일 따위는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된다.

법치주의가 자본의 정치적 지배를 은폐하는 위장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지금까지 미국 사회를 움직여 온 운영원리로 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그 법치마저 맥없이 무너졌다.

미국 대선에서 무장한 시위대가 개표소와 의사당을 난입하는 광경은 무법천지 그 자체였다. 더 이상 법치로 다스릴 수 있는 한계치를 넘은 것이다. 그래서 경찰을 대신해 무장한 군인을 투입하지 않았을까.

3. 국민 없는 국민의 정부

우편 투표에서 무더기 표가 발견됐다며 현직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집권을 위해 폭력 시위를 부추기고, 부정에 부정이 덮쳐 상대를 폭도로 내몰았다.

미국 대선에서 국민의 참정권은 부정되고, 국민의 인권은 유린됐으며, 국민의 이익은 외면당했다.

선거에서 종종 부정선거 시비가 인다. 하지만 이는 일부 지지자들의 주장이지, 현직 대통령의 제소로 법정다툼으로 번져 2개월 동안이나 당선인을 확정하지 못하는 경우는 세계 정치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이 상태면 국민의 의사를 반영한 정상적인 선거가 앞으로 가능할 지조차 미지수다.

투표 당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미국에 살아있다”고 했지만, 이미 그 정부에 국민은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따라가도 될까?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로 위장한 차별, 증오를 부추기는 자유주의, 폭력이 포함된 표현의 자유를 보았다.

아울러 미국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은 그들의 말처럼 ‘법’이 아니라 ‘총’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미국이 자랑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미국이 고도화된 선진 민주주의라는 믿음으로 무작정 따라가던 지금까지의 관행을 계속 이어가도 될지, 지금쯤 오던 길을 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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