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이번 주부터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제2의 음란물 필화를 겪은 장정일 작가의 이야기가 연재된다. 

장정일은 1962년 1월6일 대구시 달성군에서 태어났으며, 소설가, 작가, 시인, 수필가이자 극작가이다. 그는 중학교(성서중학교) 중퇴라는 최종 학력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독학과 독서를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하는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권위적인 가부장은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모티브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간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다. 1996년 발간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외설시비에 휘말려 필화를 겪으면서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1. 사건 원인과 경과

장정일(蔣正一, 1962.1.6.~ )은 1996년 10월10일 김영사에서 펴낸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이하 <거짓말>)가 외설시비에 휘말리며 필화를 겪는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의 핵심은 <거짓말>이 헌법상 보장된 표현과 예술의 자유의 범위를 벗어나 형법에서 규정하는 ‘음란물’에 해당하는가 여부였다. 이 소설에는 38세의 유부남 조각가 제이(J)와 그와 폰섹스를 나누던 18살(고3) 여학생 와이(Y)가 만나 나누는 항문성교, 구강성교, 사디즘과 마조히즘 등 가학․피학적인 성행위뿐 아니라 동성애 등 온갖 성애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1996년 10월31일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관계당국에 <거짓말>과 이를 출판한 김영사를 제재할 것을 권고키로 결정하였다. 이에 검찰은 1996년 11월14일 김영사 상무이사 김영범을 음란물판매죄로 구속하고, 같은해 12월30일 법원은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그 당시 장정일은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12월31일 귀국하여 검찰에 자진 출두하였다. 검찰은 장정일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담당판사(신형근 판사)는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이에 검찰은 그를 음란문서제조죄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장정일이 구속되자 그의 소설 <거짓말>에 대해서는 혹평과 호평이 엇갈렸다.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음대협, 공동대표 손봉호, 이주영, 전대련)는 혹평의 선봉에 섰다. 음대협은 이 소설의 음란성(통속성)을 문제 삼으며, “이러한 소설의 출간행위는 과거 모 기업이 페놀을 무단 방류해 국민 건강을 위협한 것보다 훨씬 악의적인 부도덕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음대협의 정책실장 권장희는 이 소설이 “성을 승화시켜 표현하지도 않고 미성년자를 섹스의 대상으로 두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유지 자체를 깨뜨릴 수 있는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표출됐다. 와이와 우리가 수학여행을 가 동성애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어느 부모가 자식들을 수학여행에 보낼 수 있겠냐”며 원색적으로 공격하였다.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거짓말' 포스터

이에 반하여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문학작품의 가치를 재는 척도는 문학성이나 문학 내지 완결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상의 ‘오감도’가 문학성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당대의 현실에 대한 극한의 내용과 형식을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 평가받는 것처럼 시대에 대한 환멸을 자기모멸을 통해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1997년 5월 30일, 서울지방법원(김형진 판사)은 장정일의 1심 재판(97고단172호)에서 실형 10월을 선고하고, 그가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7월23일 열린 항소심재판부(97노4055 판결, 재판장 한정덕 부장판사)는 그에 대한 보석을 결정하여 석방하였다. 이듬해 1998년 2월18일 열린 항소심에서 장정일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선고를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2000년 10월27일 대법원은 이를 기각(98도679 판결)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즐거운 사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마광수는 “자기 검열이 많아지고 상상력이 위축되는 등 작가에게 치명적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장정일은 “작가에게 사법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유죄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해도 전혀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담담하게 소회를 밝힌다. 실제 장정일은 필화사건을 겪은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 사회와 문학계에 예리한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기존의 필화사건을 겪은 작가들인 남정현, 염재만, 마광수와는 무척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작가에게 사법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증명한 셈이다.

장정일의 소설은 영화 <거짓말>로 제작된다. 하지만 2000년 6월 검찰은 이 영화의 음란성 여부에 대해 무혐의처리한다. 검찰에 따르면, 소설과 영화라는 예술의 장르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표현의 수위가 중요하다. 즉 “영화가 원작보다 표현과 내용이 완화되어 처벌할 정도의 음란성을 인정할 수 없고, 사회 분위기상 형사 제재보다는 국민 판단에 맡기는 편이 옳다”는 것을 무혐의 이유로 들고 있다.

장정일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 이후 이 소설은 판매 금지되어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구할 수 없다. 그런데 <즐거운 사라>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일본에서 번역·발간되어 호평을 받는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일본 최대 출판사의 하나인 고단샤(講談社)와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는 것을 홍보하면서 고단샤에서 출판된 한국 문학작품의 사례로 <거짓말>을 소개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역설적 상황은 표현과 예술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는 국내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다음에 계속)

 

채형복 교수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유럽공동체법’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저승꽃>, <우리는 늘 혼자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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