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교수의 ‘한국문학의 필화사건’

장정일은 1962년 1월6일 대구시 달성군에서 태어났으며, 소설가, 작가, 시인, 수필가이자 극작가이다. 그는 중학교(성서중학교) 중퇴라는 최종 학력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독학과 독서를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하는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아버지’로 표상되는 권위적인 가부장은 그의 작품세계를 지배하는 근원적인 모티브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간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다. 1996년 발간한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외설시비에 휘말려 필화를 겪으면서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2. 작품 줄거리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감독 '거짓말' 포스터

언제부터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이는 1994년 10월 23일 아침 일곱시 안동역 광장에서 와이를 기다리고 있다. 제이는 전직 조각가이고, 와이는 열여덟 고3 여학생이다. 와이는 안동에서 가까운 와이라는 중소도시에 살고 있다. 둘은 무려 스무 살의 나이차가 있다. 둘은 와이의 ‘정신적 어머니’이자 반 친구 우리의 소개로 전화상의 섹스(폰섹스)를 즐기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만난다.

제이는 중고등학생이 성과 신체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지만, 순결서약운동에는 구역질이 난다. 그는 묻는다. 순결을 대중 앞에 서약시키다니? 당신들은 나치인가? 순결을 지키고 안 지키고는 전적으로 개인 사정이다. 순결을 잃었다는 이유로 자살을 하는 여성이 존재하는 땅에서 너희들은 살인자이다.

“와이니?”

“그래, 와이야. 조금 늦었지. 기차가 연착했어.”

전화가 아닌 처음 만나 제이와 와이가 나눈 첫 대화의 내용이다. 처음 만난 둘은 서로 잠시 어색하고 쭈뼛하지만 곧바로 입을 맞추고 씹질(섹스)로 돌입한다. 10대의 와이는 제이와의 첫경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아, 행복해”라는 한 마디 말로 평소 그가 갈구하는 행복감을 표현한다.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감독 '거짓말'의 한 장면

 

수학여행 때 우리와 우연히 같은 이불을 쓰면서 우리의 손으로 애무를 받으면서 와이는 동성에게 자신의 처녀를 주어버릴까도 생각한다. 이후에도 둘은 적극적 애무를 즐기지만 동성애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우리와 와이가 신체적 접촉을 통해 누리는 기쁨은 동성에서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이성을 경험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남성을 대리충족시키는 기쁨에 불과하다. 어느 날 우리의 손이 와이의 살을 만지고 우리의 길고 가는 중지 손가락의 첫마디가 와이의 꽃잎(항문)을 벌리고 들어오자 와이는 배갯머리에 구토해버린다.

“그러니까 나는...강간당하기 전에 내가 선택한 사람과 치러 버리고 싶었던 거야. 스무 살 이전이라고 목표를 정해 놓고 말야.”

이 말은 와이가 제이를 만나 스스럼없이 자신의 처녀를 바치는 이유다. 와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의 큰언니와 작은언니 모두 강간을 당한 경험 때문이다. 큰언니는 자살하고, 둘째언니는 결혼해 브라질 이민을 가서 살고 있다.

제이는 ‘신버지’라고 부르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다. 신버지는 ‘신격화된 아버지’라는 뜻으로 제이가 그를 억누르고 있는 무형의 실체를 일컫는 말이다. 박정희 파벌에 들지 못해 옷을 벗게 된 영관급 육군 장교였던 제이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독자였던 제이를 마치 군인처럼 엄격하게 키웠다. 어린 시절의 제이의 욕망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는 것 속에서만 자유를 느꼈다. 제이는 아버지가 설정해 준 여러 목표들을 상회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수도승처럼 살고 싶다고 욕망한다.

제이의 아버지는 원인 불명의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었음에도 제이의 청년기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제이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더 이상 진학을 포기한다. 다행히 제이가 복종과 절도를 강요하던 아버지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무언가 자신의 손으로 주물럭거리면서부터다. 이를테면, 그가 조각의 일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여러 가닥으로 갈고 풍부하게 하여 그것으로부터 열락을 얻는 것,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편안하게 하고 자극시켜 그것으로부터 쾌락을 얻는 것 등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이는 무엇인가 자신의 손으로 빚어내기를 멈춘다. 그가 만든 형상들이 하나의 감시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십여 년 동안 만들어 온 작품들은 자신의 삶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면전에 보고하는 기록체계이면서 바로 아버지의 형상, 아버지의 우상을 만드는 일이었던 셈이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아버지의 말은 제이의 내면에 아로새겨져 있었고, 그가 손으로 무엇인가 주물러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자유스러운 자아의 표현이 아니라 아버지를 우상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조한다.

“나의 창작이 아버지의 지배를 영구화하고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복종을 나타내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모루에 자신의 한 손을 놓고 망치를 든 다른 손으로 자신의 손을 짓뭉게 버리려고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제이는 자신의 손을 짓뭉개는 것보다 예술을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절도 있고 엄정한 삶의 방식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그 도전의 방식으로 제이가 선택한 방법은 아버지가 말한 문어체에 대항하여 구어체로 말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분뇨예술이라고 부른다. ‘내 쓰레기’, ‘내 똥’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예전작품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다. 조악하게, 조악하게...조악한 방식으로 제작할 것. 그것이 제이의 방식이다.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감독 '거짓말'의 한 장면

제이의 이런 생각은 와이와 비역(항문성교)을 하면서도 드러난다. 제이는 와이에게 ‘할 수 있겠어?’라고 묻는다.

“응,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 내 자지를 똥이라고 생각하면 쉬워.“

와이는 ‘내 자지가 똥’이라는 제이의 말을 부정하지만 제이는 자신의 자지가 똥이라고 생각해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그가 “여자의 똥구멍 속에 즐겨 자신의 자지를 박는 것”은 그것이 자기모멸을 하는 데 적합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작품에 똥칠하는 ‘자기모멸로서의 분뇨예술’과 연결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제이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완벽히 성취해내고자 한다.

제이의 자기모멸은 그 뿌리가 깊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점점 더 결벽증 속으로 빠져들어 자폐환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자 그를 괴롭히던 결벽증이 급속히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맹장처럼 혹은 꼬리의 흔적이라는 엉치뼈처럼 불면증이 남아 있어 그를 주기적인 혼란에 빠뜨린다.

아내는 물론이고 그와 사귄 숱한 에이, 아이, 이, 오, 유 그리고 최근의 피와 와이는 그런 제이에게 ‘신버지가 찾아올 때의 기분’을 물었다. “뭐라고 말할까, 마치 그건 몽정과도 같은 거야.” 신버지의 임재는 성관계를 많이 닮아있다. 그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 여자들이 묻는다. ‘신버지가 너의 어느 구멍으로 들어오는데?’ 제이는 거기에 바로 답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발작적으로 자신의 항문으로 온갖 사물을 쓸어 넣어 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건 비역 때의 느낌과 많이 차이가 난다. 쾌락이나 성행위를 위한 구멍을 따로 갖고 태어나지 못한 남자의 감각으로는 ‘어느 구멍’이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특정한 어떤 구멍이 아니라 온몸을 투명하게 관통하는 것, 그게 신버지가 찾아오는 방식이다. 그 짧은 황홀경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무기증과 우울증에 빠져 며칠간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게 된다.

처음에 제이는 그 체험을 자신의 억압된 유년과 연계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받은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주입식 교육은 자신의 환각체험이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회피하게 했다. 어린 시절의 억압으로부터 한 번도 자유롭지 못한 제이는 그 기억 속에서 항상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이어야만 했고, 또 아들은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게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이의 방어기제는 자신의 특이한 환각을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 바로 신이나 영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치환하게 했고, 그 체험에 아버지도 신도 아닌 어정쩡한 ‘신버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감독 '거짓말'의 한 장면

와이와 만남을 가지면서 제이의 그녀에 대한 애무와 요구의 강도가 높아진다. 처음에는 양 손을 사용해 와이의 엉덩이가 붉어질 때까지 연거푸 두들기던 제이는 차츰 대걸레 자루와 혁대를 사용하여 가학적인 섹스를 즐긴다.

제이의 아내 ‘지’와도 처음에는 무의식중에 혹은 장난으로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들기던 것이 뒤에는 걷잡을 수 없는 강도의 폭력으로 변했다. 그의 가학증은 점점 심해졌다. 어느 날은 성교를 하면서 아내의 엉덩이를 빨래판으로 실컷 두들겨 패고 나서 내일 문을 여는 그의 작품전시회에 ‘당신의 나신을 전시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제의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조각을 공부하던 그의 아내는 파리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대입시험이 끝나고 와이와 제이는 자유롭게 만나 교접한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제이의 와이에 대한 매질도 대걸레 자루에서 철사, 전선 등을 사용하여 심해져간다. 와이는 아무런 신음도 내지 않고 잘 맞는다. 그녀는 정말 이것을 즐기는 걸까? 그런 의문으로 제이는 묻는다. “괜찮아? 더 맞을 수 있어?” “응, 난 네가 하는 건 다 좋아.” 와이의 대답은 간단하다. 제이는 철사 동강과 전선으로 와이를 때린다. 그리고는 묻는다. “널 전시하고 싶어.”

하지만 성욕이 충족되자 제이의 와이에 대한 연민과 자신에 대한 혐오가 함께 치밀어 오른다. 제이는 욕실로 가며 자기 손을 눈앞에 들어본다. 망치로 깨어 버리고 싶다. 그는 중얼거린다. ‘내가 만든 것은 다 이래. 모두 아버지의 모조품이야.’

어느 날 와이를 보내고 제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집은 불타 사라지고 없었다. 구멍가게 주인이 말하기를 어떤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가 휘발유통 비슷한 것을 싣고 집주변을 배회했고 한다. 제이는 그 젊은이가 와이의 오빠란 걸 안다. 하지만 그 불탄 집을 보며 제이는 생애 처음 가장 편안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모두 끝났다.’ 집이 불탔음으로서 자신은 물론이고 감시와 고해체계가 함께 타버렸기 때문이다.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한 장선우감독 '거짓말'의 한 장면

와이의 오빠와 그의 식구는 와이에게 휴학계를 내게 하고 그녀를 집에 감금한다. 집을 빠져나온 와이는 제이와 함께 전국 여러 도시의 여관을 떠돈다. 와이는 제이의 쾌감이 굴욕과 명령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안다. 제이로 하여금 가장 강도 높게 쾌감을 구걸하게 만든 것은 몸이 아프다거나 기분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면서 매질을 아예 안 하거나 하더라도 약하게 하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었다. 그럴 때 제이는 와이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빌었다. ‘난 당신의 노예야. 그러니 벌을 줘.’ 그 요구에 와이는 제이에게 제이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문신을 새기라고 명령한다. 제이는 양 허벅지에 각각 자신의 한자이름과 ‘내 님’이라는 글자를 새긴다.

96년 봄. 군산을 떠나기 전 오토바이 운전자가 전주와 군산 간 국도를 밤길에 과속으로 달리다가 가로수를 들이박고 죽었다. 이름을 보니 와이의 오빠였다. 하지만 그 죽음은 와이의 치밀하게 계산된 사고였다. 와이는 오빠의 오토바이 부품을 빼두었고, 우리에게 일정과 거처를 미리 알려주었다. 와이를 찾으러 무리하게 달리던 오빠는 이유도 모르고 죽었다.

군산에서 와이와 헤어진 제이는 우리를 만나러 와이시로 갔다. 제이는 우리를 범하려 하지만 오히려 그녀에게 간단하게 제압당한다. 제이는 작업장에 굴러다니고 있는 조각도로 그녀를 마구 난자한다. 그리고는 제이는 곧바로 파리로 떠난다. 아내는 제이에게 말한다. ‘당신은 너무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살았어. 이제부터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몇 달 후 와이는 브라질로 가면서 파리에 왔다. 제이는 교복을 입은 와이에게 매질을 당한다.

와이와 하룻밤을 보낸 후 제이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시들어 빠진 채 흔들리는 고독총을 달고 아내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제이는 잠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깜짝 놀랐다. 아내는 와이의 교복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턱밑에 한 손으로 쥔 곡갱이 자루를 괴고 있었다. “당신 허벅지에 씌어 있는 와이란 여자가 누구야?” 아무 대답도 못하는 제이에게 아내는 곡갱이 자루를 방바닥에 한 번 꽝 찍었다. “자, 내게 거짓말을 해봐!” 그래서 제이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 와이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SM클럽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와이는 ‘여신’이다. 여신이란 남자를 지배하고 때리는 역할을 하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똑똑한 여자들이 여신이 되고, 멍청한 여자들은 창녀가 된다’고 할 만큼 SM이 인기다. 와이는 사람들이 SM클럽을 찾는 것은 자기 존재를 확장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와이는 ‘정신적 어머니’인 우리에게 제이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은 것 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와이는 ‘너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았으니까’라며 그것은 우리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음에 계속)

 

 * 채형복 교수는 프랑스 엑스 마르세유 3대학에서 ‘유럽공동체법’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으며 시인이기도 하다.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 <저승꽃>, <우리는 늘 혼자다> 등의 시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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