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필자가 근무하는 현장에 모처럼 신입이 들어왔다. 15년 만에 보는 20세의 신기한 청년조합원이었다. 그가 들어오기 전, 조합원의 평균연령은 50세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6명의 신입이 더 들어왔다. 20대~30대 조합원의 출현으로 현장에 생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선배들은 현장에 배치된 신입들을 애지중지한다. 그런데 이들이 뭔가 좀 다르다. 정시 퇴근하면서 선배들 눈치를 보지 않는다. 함께 일하다가도 자기 맡은 일만 마치면 동료가 일하고 있어도 끝낸다. 기존 조합원은 선임이 밥 먹자고 하면 무조건 따라가는데 이 친구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약속이 있어 안된다고 한다. 회식이나 술자리를 함께하기도 힘들다. 현장에 빨리 적응하려면 선후배 관계를 잘 맺어야 하는데 그런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으려 하지 않는다. 좀 당황스럽다. 

이런 상황은 필자가 속한 지부에 그치지 않는다. 전체 노동조합 범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경향이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에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조합원 소통수단으로 홈페이지, 홍보지, 문자메시지, 텔레그램 등을 활용해 조합원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수단을 이용하는 신입조합원이 드물다. 오히려  ‘블라인드’와 같은 익명의 공간이나 ‘사내 전산망’을 통해 정보를 얻고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는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난무한다.

몇 년간의 신규채용으로 우리 노동조합에서 청년조합원(만 34세 이하)의 비중이 30%를 넘었다. 이들의 일부는 노동조합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노동조합을 탈퇴하는 행동으로 조직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 이후 노동조합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반대 움직임도 조직적으로 일어난다. 신입조합원의 노동조합 탈퇴서가 매일 노동조합 중앙 조직실에 쌓인다. 필자의 세대는 노동조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지도부를 갈아엎었지만 요즘 세대는 그냥 개인적 탈퇴를 선택하고 있다.

현장의 간부와 활동가들 사이에는 신입조합원들의 이런 흐름을 철없는 세대들의 개인주의로 규정하고 ‘노조가 망하게 생겼다’라고 탄식하는 분들이 많다. 필자 또한 이전 세대 활동가로서 이들의 생각에 공감하는 바가 없지 않다. 요즘 세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부와 활동가들이 그렇게만 생각해서야 답이 없지 않은가?

▲ 사진 : 노동자 역사 한내 사진전 중에서
▲ 사진 : 노동자 역사 한내 사진전 중에서

개인주의는 자기밖에 모르며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주의적 경향을 가진다. 특히 ‘적자생존’의 논리가 관철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한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없다.

신입조합원을 개인주의자라고 일반적으로 규정하기 전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선배노동자들과 간부, 활동가들의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신입조합원과 선배조합원을 비교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잡아보자. 

(※아래 표는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임의로 작성한 것임)

20대 신입조합원은 학업과 군 복무를 고려하면 대체로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30대 신입조합원의 경우 어느 정도 사회생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 

선배조합원의 경우는 학창시절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취업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상대적으로 적었기에 학창시절에도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그러나 신입조합원은 입시와 취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의 도가니에서 다른 일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사회활동이라고는 고작 생계와 학비를 충당하기 위한 아르바이트 정도였다.

또한, 사회역사적 경험이 부족하다. 선배조합원이 멀리는 전두환 정권 시기 6월 항쟁에서 지금까지 부침이 가득한 우리 역사를 살아오면서 사회역사적 인식을 넓힐 기회가 많았다. 그렇지만 신입조합원은 멀어야 이명박정권에서 지금까지 광우병 촛불이나 박근혜퇴진 촛불항쟁의 기억밖에 없어 사회역사적 인식의 지평을 넓힐 기회가 많지 않았다. 

신입조합원은 노동조합에 대해 자기 생각과 경험을 가질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체로 언론을 통해 굴절된 시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선배조합원은 축적된 노동조합 활동의 경험을 통해 노동조합의 필요성, 사회연대, 정치활동에 대한 체험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신입조합원과 선배조합원의 차이는 많겠지만 이 정도만 놓고 보아도 신입조합원이 선배조합원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살아온 과정과 사회적 배경이 다르지 않은가? 어쨌든 신입조합원의 개인주의적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선배조합원과 간부,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입조합원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현장에 배치된 신입조합원은 노동 속에서 단련되고 있다. 노동과정은 서로 협력하지 않고는 수행할 수 없다. 개인주의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밖에도 현장에서 선후배 간의 인간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조합의 일상적, 계기적 투쟁을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 이들에게서 노동과 사회적 관계, 투쟁은 마침내 ‘이제 시작’이다. 성장과정과 사회적 배경은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선배조합원도 신입 때는 지금의 신입조합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입사한 선배조합원이 얼마나 되겠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믿기 때문에 그들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구절이 있다. 신입조합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세히 보고, 오래 보기 위한 마음의 준비다. 아들 같고 조카 같고 동생 같은데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더 자세히, 믿음을 갖고 더 오래 보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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