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담당하던 판사가 과로사한 것을 두고도 음모론이 제기될 만큼 윤미향 의원에 대한 여론은 아직 차갑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여당 차원에서 전개되는 한‧일외교의 성격과 본질을 정확히 짚어줄 전문가로 윤 의원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 비록 1순위로 신청한 국회 외교통일위 대신 환경노동위에 배정됐지만 30년 활동경력이야 어딜 가겠나.

정의기억연대 대표였던 국회의원 사무실은 확실히 뭔가 달랐다. 김복동 할머니를 그린 큰 액자가 한쪽 벽을 채웠고, ‘평화의 소녀상’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이 책장 상단에 정중히 모셔져 있다.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 최근 박지원 국정원장과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연이어 스가 일본 총리를 만나 한일관계 복원을 강조했는데, 우리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사 문제를 덮으려는 것 아닌가?

“그럴 리 없다”는 윤 의원의 답변에는 확신과 바람이 동시에 묻어났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 외교의 갈등 요인이라는 설정부터가 잘못이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우리 정부가 덮을 수도 없고, 덮을 리도 없다.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 문제는 일본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그 때문에 과거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배전쟁범죄를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와 법적 배상을 제대로 하면 된다.

- 윤 의원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에선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 외교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지 않은가?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한 책임은 해방 이후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 있지만, 최근 갈등 양상은 박근혜 정부에서 비롯한다.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 정상회담도 없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 매우 원칙적인 발언 같지만, 일본과의 모든 외교를 과거사 문제와 연동함으로써 외교는 외교대로 단절되고, 과거사 문제는 더 꼬이게 만들었다.

이렇게 생겨난 외교 갈등이 2015년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덜컥 맺어버리는 외교 참사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5한일합의가 피해자중심주의를 배제했고 일본군위안부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한일합의의 실질적인 무효화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2015한일합의는 일본 정부가 한국정부를 외교적으로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한국정부가 추구하는 과거사 문제와 한일 외교를 분리한 2트랙 전략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안 외교 과제 때문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문제에 침묵하는 ‘눈치보는 외교’, 민감한 과거사 문제엔 뒷짐외교’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 박근혜 정부 탓만 할 수 없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일본 정부 대신 우리가 피해자를 보상하자고 주장해 과거사 문제의 원칙적 입장을 저버리지 않았나?

문희상 의장 안은 강제노동과 일본군위안부문제 등에 대한 범죄 인정과 사죄, 배상에 대해 가해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피해국 국회가 법을 만들어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었다.

한일간의 관계 개선을 위한 고민에서 나온 법안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 현실에서 그것은 오히려 한일간의 갈등의 골만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20191220, 청와대는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기부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문희상 안'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021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당시에도 문희상 의장 안은 국회에서나 정부에서나 수용되기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까지 들었지만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덮으려 한다는 의구심은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다.

- 방일 중 김진표 의원은 스가 일본 총리가 한‧미‧일 3각 동맹을 강조하는 미국 바이든 당선인 측의 압력을 받았다고 했는데, 압력은 우리 정부도 받았을 터. 이번 국정원장의 방일 때 과거사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유화적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을까?

우려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스가 총리의 발언에서 이를 확신했다. 스가 총리는 박지원 원장과 면담 후에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진전된 입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언급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행간을 읽는 윤 의원의 분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문득 지난해 지소미아(GSOMIA) 소동이 떠올랐다.

-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지소미아 종료 시한 6시간을 남기고 연장을 결정해 버렸다. 과거사 문제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있나?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등을 지소미아와 연결하여 처리하기에는 한미 모두 쉽지 않다.

이미 일본군위안부문제는 미국 사회에서도, 유럽과 국제사회에서도 침해해서는 안될 여성인권 문제로 세계화 되었다. 최근 독일 베를린의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려던 일본정부의 시도 때문에 오히려 소녀상 문제가 세계화 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확인하지 않았나.

윤 의원의 분석이 정확하길 바란다. 화제를 바꿔보았다.

- 최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미국이 대중국 적대 전선을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갈등 해소를 압박하는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이고, 미국은 제 나라 젊은이들의 피 값으로 일제를 굴복하고 평화를 지킨 승전국이다.

마땅히 자기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미국 부모들을 대신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단죄하고 죗값을 받아내야 한다. 이것이 정의다.

우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과거사를 안보 문제 때문에 덮고 가려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30년의 정의연 활동 역사에서 나는 희망을 찾는다.

그동안 과거사를 덮기 위한 일본정부의 숱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결과는 오늘 우리가 보고 있다.

2015한일 합의를 즈음하여 미국정부가 한일 정부에게 압력을 가했던 일이 확인되었지만 결국, 시민의 힘으로, 연대의 힘으로 2015한일합의를 무효화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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