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학교 교육의 주체”… 복리후생 차별, 코로나로 인한 서러움
학비노조, 학교비정규직 법제화·코로나 집단교섭 촉구
24일, 학비 10만 노동자 총궐기… 다음 달 6일, 돌봄노동자 총파업 결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1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삭발식을 가졌다. 그들은 “차별 해소”와 “유령신분을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 15일 여의도 국회 앞,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학교비정규직 법제화, 코로나 집단교섭 촉구’ 삭발. [사진 : 조혜정 기자]
▲ 15일 여의도 국회 앞,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학교비정규직 법제화, 코로나 집단교섭 촉구’ 삭발. [사진 : 조혜정 기자]

지난해 7월. 10만 명의 학교비정규직(학비) 노동자들은 역대 최장기간, 최대규모로 3일간의 파업을 결의하며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학교 급식실, 행정실, 방과후돌봄 등 일손을 놓고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오늘만큼은 자녀들의 도시락을 손수 마련했다며 ‘걱정 없이 파업에 참여하고 오라’는 학부모, ‘학교비정규직 파업을 응원합니다’라는 교장선생님의 격려까지 들으며 서울로 상경했다. 그해 여름, 광화문광장을 꽉 채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목청껏 외쳤다.

그 해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의 삭발까지, 유례없는 투쟁까지 벌이며,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겠다’고 결심하며 한마음으로 총파업에 나섰고, 언론과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학비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유령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지난해 7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3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 총파업대회에 참가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진 : 뉴시스]
▲ 지난해 7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3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 총파업대회에 참가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진 : 뉴시스]

난항 거듭한 교섭, 10월에서야 개회

학비 노동자들이 속한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조·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들은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학비 연대회의)를 꾸려 교육부, 그리고 17개 시·도교육청과 집단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집단교섭 4년째를 맞이했다.

10월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교섭절차합의 끝에 지난 8일 2020년 교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6월에 시작한 집단교섭은 9월 말까지 교섭절차합의조차 이루지 못하고 난항을 거듭해 왔다. “집단교섭의 구조를 안정화 시키고, 코로나19로 드러난 학교비정규직 문제의 대책을 논의하자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교육감들이 무책임으로 일관”했던 이유 때문이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복리후생수당(명절상여금, 식대, 복지포인트) 차별 해소 ▲전 직종 차별 없는 처우개선 ▲단시간 근무 직종 시간 확대 등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코로나 대책 마련 등이다.

차별 해소부터 시작해,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법제화를 통해 ‘유령신분’을 벗어나, 고용 위협과 차별을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결심이다.

▲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와 17개 시·도교육청과의 집단교섭. [사진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와 17개 시·도교육청과의 집단교섭. [사진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다 같이 밥을 먹고 명절을 쇠는데…

이들의 요구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

“정규직, 비정규직 다 같이 밥을 먹고, 설·추석을 쇠는데 왜 식대가 다르고, 명절휴가비가 달라야 한단 말입니까?”

IMF 경제위기 때보다 더 낮은 역대 최저 최저임금 인상률 1.5%, 기획재정부가 공무직 1.5% 인상안을 예산으로 편성했음에도 교섭에 나온 사측 교섭단은 공무원 임금인상 0.9%에 준하는 단돈 ‘1만 5천 원 인상안’을 내놓았다.

“공정임금제 도입으로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80% 수준으로 축소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라는 국정과제를 강조해왔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 자료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 자료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임금은 임금대로, 복리후생비는 복리후생비대로 차별받는 비정규직이다.

복리후생 차별은 법원에서도 위법 판결을 받아왔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차별’이라고 인정했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은 “‘정액급식비’와 ‘교통보조비’도 업무와 관계없이 실비변상 차원에서 지급되므로 이들 수당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조리직렬 기능군무원에게 가족수당과 정액급식비, 교통보조비를 지급하면서 민간조리원에게 이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불리한 처우에 해당함).

2017년 서울고등법원도 “정액급식비, 명절휴가비, 맞춤형복지 등 수당들에 대해 “직무의 성질, 업무량, 업무의 난이도 등과는 무관하게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근로를 제공하는 모든 직원에게 일률적,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수당”이라는 점을 들어 ‘차별적 처우가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부정했다.

국가인권위 차별 인정 사례도 한두 건이 아니다. 인권위는 2013년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학교회계직원이 아닌 교원대체 직종이라는 이유로 맞춤형복지 제도에서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타당성을 찾기 어려우므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2019년 ▲정규직 조리원에게는 근속년수에 따라 추가 복지포인트를 지급하는 반면, 무기계약직 조리원에게는 추가 포인트 없이 기본 복지포인트만 배정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고용(임금 및 임금 외의 금품지급)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정한 것 등이 그 예다.

9월까지 교섭절차합의조차 어려웠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올해 추석도 차별의 서러움을 느껴야 했다. 10월 1차 교섭에서도 사측은 복리후생 차별 해소에 대한 답변은 거부했다.

▲ 복리후생수당 차별 현장사례. [자료 :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
▲ 복리후생수당 차별 현장사례. [자료 : 학교비정규직 연대회의]

지난 7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20만 총파업 이후 ‘공무직위원회’가 구성됐다. 청와대가 학교비정규직을 비롯한 전국 48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통일된 관리 및 관련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지시해 만들어진 기구다. 공무직위원회 교육분야 협의회에서 학교비정규직 관련 임금체계 단일화 방안, 인력확충, 법제도 개선 등 다양한 의제가 논의될 예정이다. 그러나 공무직위원회는 복리후생수당 차별 해소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학교 교육의 주체입니다”… 교육공무직·돌봄교실 법제화 요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유령’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선 초·중등교육법,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이 필요하다.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 공무원, 교육공직원, 강사직종 등 많은 사람들이 학생들을 책임지고 있다. 학교비정규직은 전체 교직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교육의 한 주체가 됐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신분이다.

이들은 초·중등교육법과 지방교육자치법을 개정해, 학교와 교육기관에 있는 17만 교육공무직원의 법적 근거, 채용, 복무 등에 관한 기준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직원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자는 취지다.

코로나 시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적 근거가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3월 코로나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면서 휴업수당 한 푼 못 받고 출근을 거부당하거나, 초등돌봄전담사들은 긴급돌봄 지침 하나로 안전대책조차 없는 돌봄교실을 독박으로 책임졌습니다. 수업이 없어진 방과후강사들은 생계위협을 버티다 못해 학교를 떠나야 했습니다.”

돌봄교실은 초등 1~2학년을 중심으로 방과 후와 방학 중에 운영됐지만 코로나19로 등교수업이 중단되면서 교육부 지침에 따라 ‘긴급돌봄교실’이 운영돼 돌봄의 공백을 온 힘을 다해 메워온 초등돌봄교실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학교비정규직 투쟁의 앞장에 서고 있다. 이들은 안정적 돌봄 운영 체계 마련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9월 한 달을 노숙농성으로 보냈다. ▲초등돌봄전담사 ‘시간제’ → ‘전일제’ 전환 ▲초등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중단 ▲초등돌봄교실 운영의 법적 근거 마련을 정부와 교육당국에 촉구하는 농성이었다.

코로나로 돌봄교실 운영시간이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로 연장되고 돌봄 대상이 확대되면서 업무는 당연히 늘었다. 그러나 4시간, 6시간씩 ‘시간제’로 일하기 때문에 초과노동에 대한 대가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기도 힘든 시간이었다. 전국 학비노조에 따르면 전국의 약 1만 2000여 명의 돌봄전담사 중 전일제 전담사는 16%, 나머지 84%는 시간제로 일한다.

지난 교섭에서 사측은 돌봄전담사 시간 확대 등 코로나 대책에 대한 답변도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9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초등돌봄교실 돌봄전담사 농성돌입 및 투쟁을 선포하며,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9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초등돌봄교실 돌봄전담사 농성돌입 및 투쟁을 선포하며,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도 ‘돌봄과 같은 대면 서비스는 코로나와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노동’이라며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학교비정규직인 초등돌봄전담사 역시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국 30만 명의 학생이 이용하는 돌봄교실도 법적 근거가 없긴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지난 5월, 17년째 법외 시설로 돼 있는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 법제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 운영의 책임을 교육감과 학교에 두는 것인데, 교육부는 이를 3일 만에 철회하고, 학교 공간에 지자체가 운영 주체가 되는 돌봄교실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돌봄교실은 교육청 주관이다. 서울에서도 중구를 제외한 모든 구가 교육청이 운영 주체다. 그러나 지자체가 운영 주체가 될 경우 재정문제로 인해 돌봄교실은 불법파견과 민간위탁을 낳을 것이란 게 노동자들의 지적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초등돌봄전담사들과 학부모, 학생들과의 논의도 없이 발표한 정부의 계획에 노동자들은 더 분노하고 있다.

‘학교급식도 교육’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돌봄’은 교육의 영역과 분리해서 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학교의 기능은 교실 수업을 넘어 급식, 돌봄, 교육복지로 확대돼야 한다”면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살려 방과후학교와 학교돌봄의 최소한 법적 근거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돌봄교실 업무는 초·중등교육법이나 시행령에 명시되지 않은 채 교육부 고시로 운영되며 법적 근거없이 행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법이 제정되면 학교장에 따라 천차만별인 종사자들의 배치기준, 돌봄교실 설치, 운영 지침 등이 마련된다.

▲ 삭발하는 대표자도, 삭발해 주는 동료도, 뒤에 팻말을 들고 있는 동료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삭발하는 대표자도, 삭발해 주는 동료도, 뒤에 팻말을 들고 있는 동료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시 삭발… 투쟁의 고삐 죌 수밖에 없다

전국 학비노조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전체 국회의원 및 보좌진까지 만나 면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교육공무직, 돌봄교실 법제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회의원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제 막 시작된 교섭. 교섭 초반이지만, 박미향 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 위원장과 서울·경기·인천 지부장은 삭발로 결의를 다졌다. 법제화를 쟁점화하고 투쟁의 고삐를 죌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삭발한 날(15일)은 교육감들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감사를 받는 날이다. 15일을 시작으로 다음 주까지 17개 교육청이 출석하며, 24일부터는 교육부 국감이 예정돼 있다. 이른 아침 삭발식과 기자회견을 한 이유도, 국감에 출석하는 교육감과 국회의원들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절함과 울분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얼굴을 비추는 의원, 교육감은 역시 없었다.

국정감사에서 다룰 비정규직 현안도 산적하다. 학교 급식실 배치기준 문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미설치와 산업안전 법정의무교육 미이행, 청소미화 노동자 휴게실 마련, 영어회화전문강사·초등스포츠강사·운동지도자 등 상시지속 업무임에도 십수년 째 기간제 계약을 반복해야 하는 고용위협 등에 대해 노동자와 민의를 대변하는 국정감사를 바라는 목소리도 빠질 수 없다.

삭발한 대표자들은 “집단교섭 승리와 총파업 투쟁을 승리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했다. “더 이상 머리를 깎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지막 투쟁이라 생각하겠다”, “학교 안에서 노동의 수고를 존중받으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차별없는 학교를 만드는 것에 전념하고 싶다”, “코로나로 인한 생계위협에 너무도 서러웠다. 임금인상보다,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요구가 꼭 받아들여지길 바란다”며 학비 노동자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 삭발을 마친 박미향 전국학비노조 위원장(오른쪽)을 동료가 안아주고 있다.
▲ 삭발을 마친 박미향 전국학비노조 위원장(오른쪽)을 동료가 안아주고 있다.

전국 학비노조를 비롯해 학비 연대회의는, 초·중등교육법과 지방교육자치법에 교육공무직(학교비정규직)과 초등돌봄교실의 법적 근거, 채용, 복무 등에 대한 기준 마련을 위한 10만 국민청원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30일 동안 10만 명 동의청원을 받아 국회 상임위에 회부하는 입법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자체 이관이 아닌, 학부모와 현장 돌봄전담사의 목소리를 담은 온종일돌봄체계 대안법안도 추진한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쟁의행위 결의도 마친 상태다. 학비 연대회의는 지난 9월 약 3주간 2020년 임단협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전국 약 10만여 명의 국공립 조합원이 참여해 ‘투표율 75.65%, 찬성률 83.54%’로 하반기 돌봄노동자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 투쟁을 힘차게 결의했다.

오는 24일, 서울·세종·창원·목포를 거점으로 권역별 차량시위(드라이브스루)와 온라인 랜선 집회로 ‘집단교섭 승리’ 총궐기투쟁을 벌인다. 11월 6일엔 돌봄노동자 1차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가을과 함께, 국민들에겐 ‘유령’이 아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유령’ 신분에서 벗어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차별없는 학교 만들기를 위한 한판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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