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히 보아라, 우리가 바로 평화다' 김수상 시인

북한 미사일 견제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온 나라를 강타했다.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드가 실은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미국의 전략일 뿐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 단위의 거액이 드는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정부는 여러 예정지를 고민하다가 뜬금없이 경북 성주를 지목했고 물 맑고 산 좋은 성주사람들은 내 나라 내 고향에서 갑작스런 ‘난민’이 됐다. 굳세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회유하기 위해 제3의 부지를 내놓았지만 성주사람들은 위대했다. 미 방산업체의 배를 키우는 '사드'는 성주를 포함한 한반도 어디에도 배치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사드배치 반대’, ‘성주가 대한민국이다’를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

현장언론 민플러스에서는 성주 사람들의 사드배치 반대투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 성주를 응원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싣는다. 두 번째 작품은 대구경북작가회의 김수상 시인이 보내왔다.[편집자]

 

똑똑히 보아라, 우리가 바로 평화다

 

                          김수상

 

밥을 먹을 때도 시를 쓸 때도 기승전결이 있다.

연애를 하거나 하물며 죽음을 맞이할 때도 기승전결이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거나 천둥이 칠 때도 마찬가지다.

기승전결은 서사다. 서사는 이야기다.

 

너는 기승전이 없이 왔다.

이야기가 없이 왔다.

무작정 왔다.

결론으로만 왔다.

통보로만 왔다.

 

기(起)는 뜻을 일으키고, 승(承)은 이어받아 전개하며,

전(轉)은 한 번 돌리어 변화를 주고, 결(結)은 마무리하는 것이다.

설득은 그렇게 하고 정치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너는 우리가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와서 손님처럼 대해주지 않는다고

행패를 부리며 오히려

우리를 불순하다고 몰아세운다.

 

옛사람 가야인의 무덤이 별처럼 돋아있는

별의 산 성산(星山)에 미사일이 온다고 통보하는 날,

참외밭 찜통하우스에서 참외를 따던 우리는

새까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천년의 바람이 아직도 놀고 있는 성밖숲의 왕버들은

분해서 잎을 떨었고 가야산의 여신도 고개를 돌렸다.

 

레이더가 오고 미사일이 오면

철조망이 쳐지고 전자파가 읍내를 뒤덮는다는데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엔

전자파가 수영장의 물처럼 흥건히 고여 있을 텐데

어쩌나, 정말 그러면 어쩌나

벌들도 떠난 들판엔 참외 꽃만 혼자서 시들어갈 텐데

성산의 고분 위의 별들도 더 이상 돋아나지 않을 것인데

 

어떤 것을 함부로 거칠게 다루면 그것은 천하게 되고

초대받은 손님처럼 대하면 그것은 귀하고 기품 있게 된다.

너희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함부로 대했다.

우리의 노동을 거칠게 대했다.

우리의 정갈한 밥상을 발로 차 엎었다.

밥상을 엎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죽는 어이없는 죽음을 수없이 보았다.

이 땅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법 없이도 가야산의 맑은 물처럼 살던 우리들은

군청의 앞마당으로 모여들어 촛불을 밝혔다.

교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 밀짚모자를 쓰고

땀에 젖은 수건을 목에 걸고

전쟁반대 사드반대, 사드배치 결사반대를 외쳤다.

우리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니고

우리는 종북이 아니고

우리는 전문시위꾼이 아니고

우리는 외부세력이 아니다.

 

우리는 기가 차서 뭉쳤고 억울해서 뭉친 사람들이다.

참외도 놀라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촛불을 들고 우리에게 옛날의 평화를 달라고 애원도 해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짐승의 말들을 한 것인지

너희들이 짐승인지 우리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다.

한꺼번에 머리를 민 사람이

별고을의 여인 11명을 포함하여 908명이나 되었다.

별고을의 푸른 하늘을 함께 이고 머리를 민 그날은

성밖숲의 왕버들도 숨을 죽이며 흐느끼고

미사일이 온다는 별의 산 성산도

식은땀을 흘리며 우리를 지켜보았다.

머리를 밀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속아온 것들도

한꺼번에 밀었다.

밀면서 우리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

콩이 메주가 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양의 탈을 쓴 이 늑대의 정부를 믿을 수 없다.

 

유림의 땅에서 머리를 민 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을 위해 머리를 민 것이 아니다.

우리는 건강문제를 따지는 전자파의 논쟁을 뛰어 넘고

외부세력이라는 분열책동을 뛰어넘어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열망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폭력을 반대하고

미사일을 반대하기 위하여 머리를 밀었다.

우리는 성주의 평화결사대다.

 

보았는가, 별고을 성주에서 날려 보내는 평화의 나비 떼들을.

 

이제 평화의 촛불은 김천에서도 구미에서도 대구에서도

평화를 열망하는 모든 곳에서 타오를 것이다.

폭정 같은 폭염의 여름이 가고

우리들 생계 같은 엄동설한의 겨울이 오더라도

우리는 기어이 촛불을 밝힐 것이다.

 

우리는 사드 덕분에 세계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성주의 사람들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자랑스러워 평화의 파란 리본을 만들었다.

군청 앞마당은 이제 평화나비광장이 되었고

파란 리본은 평화의 나비가 되었다.

우리 성주는 이제 성지가 되었다.

반전평화운동의 성스러운 땅이 되었다.

너희는 우리를 함부로 대했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평화의 채찍으로 매질하며

강철처럼 단련되고 있는 중이다.

성주가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이 성주가 되었다.

성주가 평화가 되었고 평화가 성주가 되었다.

똑똑히 보아라, 우리가 바로 평화다.

사드는 가고 평화는 오라!

전쟁은 가고 평화여 오라!

 

* 김수상 시인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아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성주읍 성산리에 작은 집터를 마련하고 귀농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사드가 들어온다고 해서 ‘사드배치철회 촛불문화제’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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