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여

▲ 6.15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
▲ 6.15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

6.15공동선언 20주년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악화일로에 서게 되었다. 민족전체가 기념과 축하에 앞서 남북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 앞에 서게 되는 이유이다. 질문은 북이 먼저 강하게 그리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던졌다.

그런데 남측은 아직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
남북문제에 관계했던 전문가와 정부여당측 상당수 인사들이 현재 북의 문제제기를 “북의 경제난”을 외부로 돌리려는 시도라거나, 김여정 제1부부장의 2인자로서의 존재감 과시과정과 결부하여 바라보는 상황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정세인식이 이러니 정확한 해답이 나올 수가 없다.
오히려 상황을 거꾸로 보아야 한다. 북은 지금 지난 5차전원회의에서 천명한 “정면돌파전”의 성과를 내적으로 더욱 공고히 하면서 남북관계, 북미관계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를 놓고 보아도 북의 자력갱생 노선은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제재야 원래 받던 것이고, 오히려 전세계는 코로나로 인한 격리와 봉쇄로 무너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북이 전단살포문제를 계기로 강하게 남북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군사적 수준에서 매우 첨예하게 제기하고 있는 형편에서도 예의 ‘북의 경제난설’이나 북의 주요인사에 대한 가십수준의 분석으로 상황을 대하고 있으니 뾰족한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이 기회에 선순환이니 악순환이니 하는 남북-북미 상호관계의 구도에 대한 인식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른 바 남북관계가 잘 풀려야 북미관계도 잘 풀리고, 북미관계가 잘 풀려야 남북관계도 풀린다는 선순환론에 입각한 한반도의 대결구도에 대한 인식이다.
남북-북미 선순환론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는 올해 2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6.15공동선언이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 2기는 대북관계를 전환적으로 개선할 페리 프로세스를 밟고 있었다. 미국은 4월에 북미고위급회담에서 일정한 합의를 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돌연 북은 북미회담의 속도를 급속히 늦추었다. 그리고 6월에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고 6.15공동선언이 탄생하였다. 사실 이때 미국은 남북간의 비밀회동을 통하여 정상회담을 합의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조명록 차수는 미국 워싱톤을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하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확약하는 역사적인 북미코뮤니케를 발표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약속한 바 있다. 남북-북미관계의 선순환이란 이런 것이다. 북미관계 개선의 조짐이 보일 때, 오히려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민족끼리’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을 때 선순환론은 의미가 있고 대미관계에서도 실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문재인 정부의 경우에 남북-북미관계는 전형적인 악순환관계로 전락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 희망에 찬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을 남북관계발전에서 실천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 합의문 조차도 미국의 대북전략에 복종시키고 말았다. 북미핵담판과 관련한 남북간 전략적 논의내용을 미국에 다 보고해주고, 남북간의 합의 사항은 미국에 일일이 승인을 받고서 실행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 상태에서 북은 남측이 북미관계에 끼어봐야 전략만 노출되고 방해만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때문에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북미관계에서 ‘촉진자‘니, ’중재자‘니 하면서 할 수 있는 역할도 없고, 북에서 원하지도 않는다. 이번에 남측에서 ’북미대화의 조속한 재개‘가 필요하다거나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언급을 두고, 남측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재차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중재자가 없어서가 아니라며 답은 정면돌파밖에 없으며, 북은 그 길로 가겠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영역에서 남은 것은 남북관계이다. 원래 남북관계라는 것은 외세의 간섭이나 방해없이 남과 북이 자기 민족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합의하고 결심해서 처리할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합의를 일일이 미국의 승인이나 대북제재를 가이드 라인으로 해서 진행하려고 하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20년전 6.15 공동선언 1조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한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대해서 다시금 되새겨 보아야할 시점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한미동맹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 북은 북미관계에서 정면돌파로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남은 한미관계에서 무엇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은 절대로 남북관계를 우리민족끼리 하라고 내버려두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목을 조르고 있다. 미국이 ’우리민족끼리‘를 방해하고 남측의 목을 조를 때, 가져야할 원칙이 ’민족자주‘이다. 4.27판문점 선언 1조 12항은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금 급속히 악화되는 남북관계 앞에서, 그리고 6.15 20주년을 맞이하여 누구나가 다 한 목소리로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외치고 있다.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판문점 선언, 9월평양공동선언을 확실하게 이행할 때에만 남북관계 악화를 방지하고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한갓 당위적인 원칙의 확인이거나 말로만 끝나는 공허한 주장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태인식을 정확히 하고 우리민족끼리, 민족자주 원칙을 구현하는데 방해자로 나서는 미국과 친미수구세력들의 저항에 맞붙어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각오가 없는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다른 불신만 낳을 뿐이다.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민족끼리‘, ’민족자주의 길‘로 가자고 요구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요구를 외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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