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에 12년째 묶여 있는 이주노동자들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12년째를 맞아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등 100여 개 이주·인권·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함께 ‘착취와 무권리의 고용허가제 12년,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이들 단체 관계자 25여 명이 모였다. 이주노동자 100만 시대가 됐지만 이들의 인권에 관한 한국 사회의 후진적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초기에 지적됐던 문제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현 제도상으론 이주노동자들이 심각한 인권침해와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더라도 사업장을 옮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노예와 다른 점이 ‘사업장을 떠날 수 있는 자유’라고 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노예란 절규가 나오는 이유다.

폐지된 듯 폐지 안 된 ‘해투 연수생’ 제도

1991년 11월 정부는 국내 산업현장의 인력난을 해소하려고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해투 연수생)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해투 연수생 제도는 ‘교육을 구실로 한 노동력 착취’란 비난을 샀다. 외국인노동자의 기술 및 산업연수란 원래 목적은 희석된 채 기업의 값싼 노동력 충원수단으로만 악용된 것이다. 연수생들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기에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회사는 이탈방지란 명목으로 연수생들의 여권, 외국인등록증, 은행통장 등 개인 소지품을 ‘보관’했다. 여러 문제가 드러나며 2007년 이 제도가 폐지됐다고 여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견에서 발언한 인도 출신 이주노동자 스리칸트씨는 지난해 기술 연수생에게 발급되는 ‘D-3 비자’를 받고 입국했다. 그는 김해의 ㄷ업체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며 월 300시간 넘게 일한 대가로 15만원의 ‘용돈’을 현금으로 지급받았다. 스리칸트씨가 고무사출기 작업 중 왼팔에 심한 화상을 입자 사측은 연수생에게 산재보험 적용을 해줄 수 없다며 법적 피해보상 없이 현금 500만원을 받고 인도로 강제 귀국할 것을 종용했다. 동료 피해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고발과 기소 결과, 현재 그는 산재를 인정받아 수술한 다음 통원치료 중이다.

▲ 인도 이주노동자 스리칸트씨가 산업재해로 화상을 입은 왼팔을 내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맹점

2004년 8월 시행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도 구멍이 크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를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비전문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라고 정의한다. 허용 기업은 중소 제조업(근로자 300인 미만, 혹은 자본금 80억원 이하), 농축산업, 어업(20톤 미만), 건설업, 서비스업(건설폐기물 처리업)이다.

고용허가제상 이주노동자는 업종 간 이동이 불가능하고, 사업장간 이동은 법에서 정한 사유에 한해 가능하며 비자가 허락하는 체류기간 최초 3년간 3회로 제한된다.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4대 보험과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근로시간 보호에서도 제외된다. 근로기준법 제63조는 근로시간과 휴식휴일 등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예외 근로자’를 정한 법조항으로 농어촌 지역 노동자들과 경비원, 물품감시원, 수위 등 감시직 노동자가 이에 속한다.

회견에서 발언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리후이씨는 충남 논산시에서 농업노동자로 일했다. 사용자는 비닐하우스 안에 가설된 컨테이너에 칸을 나눈 뒤 네팔 출신 남성 노동자들과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 등 1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를 기숙사로 사용하게 했다. 그리곤 쌀값, 전기값을 포함한 월세로 35만원을 최저임금 월급에서 선 공제했다. 리후이씨가 불만을 표시하자 월세를 50만원으로 올리며 “불만이면 나가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현재 리후이씨는 다른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용자가 이탈신고를 한 탓에 체류비자가 위태로운 상태다.

▲ 충남 논산에 있는 농축산업체의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 
▲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농축산업체의 이주노동자 기숙사 사진이다.

회견에서 조영관 변호사(민변)는 고용허가제의 대안으로 노동허가제를 제안했다. 노동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자유로운 형태의 근로계약 체결을 보장한다. 조 변호사는 또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일반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되 체류와 관련된 사항은 출입국관리법으로 정하려는 새로운 논의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현재 고용허가제 개선은 민변뿐 아니라 20대 국회에서도 동의하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사업장 이동의 제한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악화하는 핵심 요인이다. 회견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 노동권 개선을 위해 ‘출국 후’ 14일 이내 지급되는 퇴직금 제도의 개선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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