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삭발과 단식, 그리고 노동자들의 삭발과 단식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압박하며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다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뉴스 속에서 오늘(1일) 또 노동자들이 집단단식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6월 100여 명이 집단 삭발을 했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늘 청와대 앞에서 대규모 집단단식과 농성을 시작했다.

삭발과 단식, 그리고 거리농성을 하겠다는 선택.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고, 외치고 외쳐도 더 이상 달라지지 않기에 자신의 몸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내놓았고 이제 밥까지 굶기로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 삭발과 단식은 그랬다.

▲ 1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성실 교섭’ 정부와 교육감을 향해 ‘직접교섭’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집단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학교 비정규직(학비) 노동자들이 단식을 선택한 이유는, 공정임금제를 약속한 교육감, 자신들의 임금 결정 권한을 가진 교육부는 교섭에 나타나지 않고, 공정임금제는커녕 매년 자동적으로 인상되는 임금 인상률(1.8%)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라 이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된 만큼도 임금을 올려받지 못하는 처지 앞에 놓였다. 7월 초 총파업 이후 달라진 것이 없기에, 학비 노동자들은 오는 17~18일 다시 총파업을 앞두고 집단단식과 거리농성을 선택했다. 6월에 집단 삭발로 잘라낸 머리카락이 아직 자라기도 전이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법원의 불법파견에 따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오늘로 28일째 단식 중이다. 지난 7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단식농성장을 차리고 ‘법원 판결대로 고용노동부가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라’고 요구했던 그들이 오늘은 서울고용청 안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지난해 9월 농성장을 차리고 추석까지 보낸 장소다. 1년 후 다시 같은 곳에서 농성을 선택한 이유는, 어제(9월30일) 고용노동부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기아차 화성공장 불법파견에 대한 직접고용’을 명령했지만 내용은 대법원판결 기준대로가 아닌 1670명 중 860명에 대해서만 명령을 했기 때문이다. 7월과 9월 사이, 김수억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은 47일간 단식농성을 하다 병원으로 후송됐고, 그의 동료들은 여전히 단식 중이다. 1년 전 9월 외쳤던 요구는 지금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을 이어가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등 20여 명이 1일 “고용노동부의 직접고용 명령 정정과 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 2층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대법원 판결기준대로 해고자 전원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관 안에서의 농성도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대량해고를 하루 앞두고 지난 6월30일 오른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고공농성. 다음날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대량해고 됐고, 해고자만 1500여 명이다.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은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겠다는 이유를 대며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미뤘지만, 대법원판결 이후에도 해고자 전원 직접고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이강래 사장을 직접 만나러 갔지만 얼굴조차 마주하지 못한 채, 외부와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 본관에서 추석을 보냈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신청하고, 불법파견 철폐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단식과 농성 등으로 투쟁해왔던 시간, 그리고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투쟁해왔던 시간은 하루 이틀의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들뿐인가. 삼성에서 해고돼 24년 동안 복직 투쟁을 해오던 김용희 노동자는 결국 삼성그룹 사옥이 내려다보이는 강남역 사거리 고공농성을 시작했고, 창조컨설팅의 기획탄압에 노조가 파괴되고 부당해고까지 당한 영남대병원 노동자들은 병원의 70m 고공에 올랐다. 8일이면 고공농성 100일이 된다.

노동자들은 지금 정부 부처, 공공기관, 재벌기업, 그리고 지역 최고의 의료원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삭발과 단식, 농성, 그리고 하늘 감옥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 요구하고 요구하다, 결국 절박함으로 택한 선택이었다.

▲ 지난달 16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삭발했다. [사진 : 뉴시스]

그러나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단식과 삭발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지난달 1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삭발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위해 “제1야당의 대표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재인 정부에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그는 말했다. 같은 당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강효상·심재철 의원, 이주영 국회부의장 등도 삭발에 동참했고, 김석기·송석준·이만희·장석춘·최교일 의원 등 너도나도 릴레이 삭발을 이어갔다. 이학재 의원은 ‘조국 장관 사퇴’를 위해 단식 카드까지 꺼냈다.

“삭발·단식은 몸뚱어리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약자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투쟁방법”이라고 말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말대로, 노동자들에게 삭발과 단식은 ‘최후의 투쟁방법’으로써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도 그랬을까?

‘그렇다’는 말이 쉽게 나올 리 없다. 국회 의석수 110에 달하는 의회 권력을 가진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조국 장관 사퇴’ 투쟁을 위해,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항거’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국회 밖에서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삭발과 단식이라니...

노동자들에겐 ‘절박한’ 선택이, 제1야당 자유한국당에겐 ‘어떤 선택’이었을까. 농성과 삭발도 모자라 단식을 결심하며 절박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자유한국당의 단식과 삭발이 눈에 들어온다.

▲ 지난 6월17일 청와대 앞, 7월 총파업을 앞두고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집단 삭발.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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