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민플러스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동시에 은퇴 목사(향린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이기도 하며 교회 개혁과 사회 참여를 목표로 하는 목회자와 평신도 조직인 <예수살기>의 대표이기도 하다. 편집부의 요청에 의해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명성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세습 문제에 대해 소회(所懷)를 밝힌다.

직업의 종류에 따라 부모가 종사했던 직업을 자식이 이어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음식점의 경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일종의 비법이 있다. 그래서 ‘원조(元祖)’라는 간판이 붙은 음식점들이 제법 많다. 가끔 같은 메뉴인데 원조 간판이 달린 가게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경우가 있어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일제식민 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통 있는 음식점이나 가게들이 많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럽이나 일본 같은 경우는 삼백 년 이상, 10대를 넘어온 전통 있는 가게들이 지방마다 존재한다. 이런 경우 세습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장려가 된다.

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기득권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재벌 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수만 명이 일하는 대기업은 사기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기업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회사가 존폐의 어려움이 생기면 국가가 개입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사태를 해결해주는 경우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기업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 CEO는 경영 전문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경우 창업가의 2세 3세들이 CEO직을 독식(獨食)한다. 그러다가 형제간에 유산 다툼으로 법적 소송이 일기도 한다. 엊그제 발표된 언론을 보면 국민 상위 1%에 해당하는 20만 명이 평균 소유한 아파트는 7채인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두 배가 증가한 숫자라고 한다. 정부가 아파트를 아무리 많이 지어보았자 무주택자의 설움은 계속되고 있다. 어떤 개인은 천 채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는 어린아이들도 몇 채를 소유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본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국민 절반이 무주택자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제한하는 법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 국가가 아닌가?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 또한 이런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대형교회의 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교회는 공공성(公共性)이 무엇보다 소중한 원칙이다. 공공성이 무너지면 쉽게 이단화 된다. 기독교 제1(구약)성서에 보면 성전(聖殿) 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열두지파 중의 한 지파인 레위지파 사람들만 종사하도록 되어 있고 대제사장은 그중에서도 아론집안 출신들이 이어가도록 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목사 세습은 성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다른 열한 지파는 땅을 소유하였지만, 레위지파에게는 애초부터 땅을 분배해주지 않았다. 저들의 의식주는 열한 지파가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성전 봉사자들에게 땅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정신적 영역에서 백성을 지도하는 종교인이 재물까지 소유하게 되면 종교의 타락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세습이 문제가 된 것은 80년대 교회가 대형화되면서이다. 60년대 말 모기독교여자대학에서 장래 배우자의 직업 선호도를 설문 조사할 때, 목사의 순위는 16번째로 경찰과 이발사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90년대 같은 대학에서 조사할 때는 제3위까지 올라갔었다. 지금은 이런 설문조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있지만, 나로서는 그 순위가 궁금하다. 반기독교 정서로 인해 그 순위가 내려가긴 했겠지만,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전체를 놓고 보면 약 6만 개의 교회 중 재정 자립도가 있는 교회는 2,30% 정도이고 나머지는 평균 50명 미만의 교회로 그저 목사 사례비에 급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대부분의 농촌교회는 노인들만 몇 명 남아 있어 사멸(死滅) 직전으로 농촌 목사들은 부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한 동네에 대형마켓이 들어오면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잠식하듯이 대형교회 또한 새 신자는 별로 없고 작은 교회의 교인들이 수평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한 전체 기독교 신자는 줄고 있지만, 대형교회의 교인 숫자가 별로 줄지 않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쉽게 믿고 쉽게 구원받으려는 신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대형교회의 성장은 성장이 아닌 오히려 신앙의 퇴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습이 이루어지는 교회들은 1세대가 교회를 개척해서 성공한 경우이다. 2000년대까지는 세습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세습을 하는 목사의 이유는 간단하다. 외부에서 목사가 후임자로 오면 교회가 분열이 일어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있다. 젊은 후임목사가 부임하면 원로목사는 아예 교회를 떠나거나 아니면 조용히 있으면 좋은데, 대부분 간섭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서 아들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석조 건물로 유명한 C교회 같은 경우는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물려준 것을 공개적으로 후회하더니 급기야는 교인들이 아버지 원로목사파와 아들 담임목사파가 나뉘어 파벌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웃기지도 않다.

사실 세습으로 말하면 우리 집안이 원조(?)이다. 1970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전라남도 농촌교회에서 목회하시던 할아버지가 71세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지금은 목사의 은퇴 연령이 대부분 70세로 정해져 있지만, 당시에는 은퇴 연령이 정해져 있지 않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목사직을 계속 했다. 그러자 교회는 다른 농촌 지역에서 목회하시던 작은 아버지를 2대 담임목사로 모셨다. 필자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당시 유력한 교계 신문이 2면 전체에 걸쳐서 이 세습(?)을 교계의 아름다운 일로 자세하게 기사를 다룬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이 세습을 기득권의 이양(移讓)이라고 보지 않았다. 필자 또한 70년대 신학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목사직으로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밭농사법과 양계법을 필수과목으로 배웠다. 

그런데 70년대 산업화와 도시 밀집 아파트촌 시대를 맞아 대형교회들이 죽순처럼 생겨났다. 이제 겨우 130년의 선교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교회가 세계최대 50대 교회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90년대에는 오백년 역사가 있는 서구교회의 목사들조차 한국교회의 성장 기적을 배우기 위해 왔다. 그러나 그 영광도 잠시 남한 기독교인 숫자는 급속히 줄고 있으며 언론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목사들의 재정, 성문제가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예수는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사람은 하느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외쳤지만, 뭐가 그리 아까운지 소위 성공했다는 목사들은 자식들에게 교회를 세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회까지 그래서야 되겠느냐는 사회비판 여론이 일어났다. 그래서 2013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세습금지법을 만들어 사회 여론에 부응했다. 

그런데 세습금지법이 적용되자 세습을 위한 변칙 방법이 등장했다. 교인과 재정을 떼어 아들에게 지교회를 설립해주는 방법은 차라리 약과에 불과하고,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혹은 사위)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 세습 기법도 있고, 할아버지 목사가 아들 대를 건너뛰어 손자가 목회직을 승계하는 징검다리 세습도 있다. 기독교 언론 뉴스앤조이는 7월 말 기준 세습교회가 총 285곳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다. 내가 아는 한 감리교목사는 자신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러 변칙 방식을 종합하면 감리 교단에서만도 300개 교회가 넘는다고 말을 한다. 

지난 3년 동안 통합측 장로교단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된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교인등록 10만명)는 몇 년 전 경기 하남시에 새노래명성교회를 따로 설립하고 명성교회의 설립자인 김삼환 담임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내정했다. 아버지 김삼환목사가 2015년 은퇴하자 2017년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는 합병과 동시에 김하나 목사를 명성교회 위임목사로 청빙했다. 눈감고 아웅한 셈이다. 그러자 교단 안에서 위법 논란이 일었다. 작년 예장통합측 총회는 위헌 결정을 내리고 시정을 권고했었는데, 이번 총회에서 다시금 판결이 뒤집혀서 결국 인정을 하고 말았다. 해법인즉 아버지목사가 은퇴한지 5년이 지나면 아들목사를 청빙할 수 있다는 시행령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2021년 1월이면 세습이 공식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임시목사를 앉히고 배후에서 아버지목사가 활동하면 된다. 이제 명성교회는 법 위에 존재하는 교회가 되었다. 하느님은 에덴동산에 거주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과실을 다 먹되 선악과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건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올라서는 교만(hybris)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이었다. 바벨탑의 멸망은 하늘에까지 닿아보자고 하는 인간 교만에 대한 신의 심판이었다. 

개신교 법조인 약 500명으로 구성된 기독법률가회는 26일 입장문을 통해 “한국교회가 교회 세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졌으나 예장통합 총회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며 “이번 결정을 보며 한국교회가 이 세상을 썩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고 밝혔다. 신학대학생들은 촛불집회를 열고 “명성교회는 살리고 한국교회는 죽인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글쎄다. 명성교회를 살리는 길이 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70년대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로버트 슐러 목사가 담임하는 세계적인 초대형 Crystall Church(수정교회)가 있었다. 말 그대로 바닥과 천장을 제외하고 모든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평일에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았다. 슐러목사는 긍정적 사고에 기초한 번영설교(일명 ‘축복설교’)로 유명했고 라디오와 TV를 통해 미국신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교회 대형교회 목사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그 교회가 지금은 사라졌다. 가톨릭 성당으로 바뀌었다. 몰락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세습이 주 원인이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세습했다. 그런데 아들이 마음이 들지 않아 딸을 담임목사로 세습을 했다. 결국은 가족 불화와 소송으로 진입하더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말씀하셨다. 소금은 짠 맛으로 부패를 방지하고 빛은 어두운 곳을 비추어 악이 성행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런데 소금과 빛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소금은 제 몸을 녹여야 하고 빛은 제 몸을 태워야 한다. 여기에 교회의 헌신성이라고 하는 공공성의 원칙이 있다. 필자가 담임목사로 섬겼던 향린교회에는 교회 정관이 있다. 그중 목사장로 임기제가 있고, 담임목사의 경우는 7년 임기로 중임제이다. 정관 제정 당시 교회 세습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담임목사가 한 교회에서 너무 오래 머무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 14년으로 제한을 했다. 그러다 보니 필자는 만 63세에 향린교회에서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교단이 정한 자원은퇴 연령이 65세인지라 은퇴 아닌 은퇴목사로 2년을 지내야 했다. 사실 이런 개혁성 있는 정관을 갖고 있는 교회들이 상당수 있다.

끝으로 글을 마무리 하면서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필자의 머리에 하나의 생각이 퍼덕 스쳐지나간다. 세습을 행한 대형교회들은 백이면 백 신앙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이다. 설교 단상에서 북한을 독재정권으로 비난하면서 가장 자주 드는 예가 3대 세습이다. 그런데 명성교회 장로들은 작년 총회결정에 불복하는 입장문에서 “명성교회의 후임목사 청빙은 세습이 아닌, 성도들의 뜻을 모아 당회와 공동의회의 투표를 통한 민주적 결의를 거쳐 노회의 인준을 받은 적법한 절차”임을 강변했는데, 그렇다면 북한의 세습은 북한 주민들의 뜻을 모아 투표를 통한 민주적 결의가 아니었던가? 이거야말로 내로남불이다. 하여간 앞으로는 이런 교회에서 세습가지고 북한을 비난하는 일은 사라지겠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공공성 회복의 문제는 단지 교회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강남역 사거리 CCTV 좁은 철탑 위에는 삼성기업의 노조설립을 위해 평생을 투쟁해온 김용희님이 백일너머 농성 중에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불, 4만 불이 된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조직원으로 사회 공공성에 대한 인지도가 얼마나 높으냐에 달려 있다. 한 인간의 성숙도도 마찬가지이다. 높은 학력과 지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특히 약자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는 감수성과 사회 공인으로서의 자아 성찰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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