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745호실 이야기(6)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가 시작되자 국민들은 누구랄 것 없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혹자는 과도한 민족주의를 우려하는데, 일본대사관 앞 집회 현장이나 불매운동의 방식, 서울 중구청의 현수막 사건 등을 보면 이렇게 절제된 대응을 하는 시민을 가진 나라가 얼마나 될까 싶다. 저항하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합리를 가장한 지식인의 대중폄하가 더 아쉬운 요즘이다.

촛불 민중은 이번 기회에 잘못된 한일관계를 다시 쓰자고 한다.

국내적으로는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하지 못했고, 대외적으로도 분단 상황과 경제적, 군사적 이유로 일본에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촛불 민중은 이번 기회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고 한다. 이번 기회에 토착왜구 정치인들을 몰아내고 이번 기회에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폐기하자고 한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제조부품산업 부흥의 계기로 삼자고 하고, 경제학자들은 이번 기회에 대일 의존적 경제구조를 바로잡자고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정치인들도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국회의원에게 여론은 큰 힘이다. 법안발의도, 법안논의도 여론이 있어야 속도도 나고 성과가 난다. 7월 기준으로 국회에서 법안발의 건수는 2만 769건이며, 그중 1만 432건은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조차 거치지 못했다. 의원실에서 잠자는 발의되지 못한 법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많아진다. 우리 의원실만 해도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는 법안,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법안, 원자력 발전소에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 등이 책상 위에서 잠자고 있다. 이런 법안이나 정치적 주장은 어떤 사건이나 국민적 여론이 생기면 논의될 기회를 가진다.

김종훈 의원실은 이번 기회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결의안을 발의하자고 주장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일본의 대부업체들을 부각해 대부업의 부당성을 알리고, 한국콜마의 주식 12%를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자고 한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정치적 주장이지만, 이번 여론을 계기로 다시금 내놓는 이야기들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경제 상황이 비상해지자 이번 기회에 해서는 안 될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자 더불어민주당의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 52시간근로제 도입 시기를 유예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같은 당의 최운열 의원은 고소득 전문직에는 주 52시간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사실 이런 논의는 52시간 법안 추진 때부터 자유한국당이나 민주당 내에서 있던 주장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기업의 어려움이 주목받자 다시금 내놓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도 유사한 기조의 내용이 있다.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는 ‘반도체 소재부품 산업의 조속한 국산화를 위해 화학물질 생산 부분에 대해서는 환경, 노동제도의 유연화’를 건의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대기업 계열사에서 부품 등을 구매하는 것을 일감 몰아주기에서 제외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제침략을 기회 삼아 기업엔 규제를 풀어주고 노동자에겐 권리를 빼앗겠다는 관료들의 발상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일본기업의 물품 배송을 거부하고, 마트 노동자들은 일본제품의 안내를 거부하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가적 위기에 노동자들은 이렇게 맞서고 있는데 국민 여론을 모아 함께 위기에 대처해 나가야 할 정부·여당이 이번 기회에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는 조처를 하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선다는 것이 이재용을 독립투사로 묘사하고, 경제보복 조치로 힘든 기업을 돕겠다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결론 나서는 안 될 일이다. 촛불 민중이 이번 기회에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아베 운동의 아쉬움이 집권당을 향할 수도 있다.

그냥 이번 기회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나 폐기하자!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