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10)] 재벌체제개혁투쟁의 의미②

1. 다시 민의 과제로 넘어온 경제민주화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에서 제일 많이 외쳤던 구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구호는 “민주공화국”이었지만, 정작 시민들이 들고나온 손피켓에는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와 더불어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반값등록금”, “함께 살자” 등이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헌법논의와 관련해서 “제7공화국”론이 나오기도 하였다. 87년 6월 항쟁 이후 헌법 제119조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갔으나 유명무실했다. 그런데 IMF 이후 10년 만에 민중들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이슈를 구호로 외치고 있었고, 새로운 공화국이란 결국 다양한 영역에서 경제민주화가 실현된 공화국을 의미했다. 이 같은 양상은 2016년 박근혜 탄핵촛불에서도 재현되었다. 촛불민중들은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종속적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다양한 모순들, 수출주도 재벌중심 경체체제가 만들어낸 심각한 “헬조선”의 양상들에 대해 탄핵했던 것이다.
 
재벌체제개혁과 경제민주화 이슈는 지난 18대, 19대 대선, 19대, 20대 총선의 핵심이슈로 등장할 만큼 강력한 국민적 요구였다. 특히 2008년 금융공황으로 1980년대 이래 30년 동안 풍미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는 실패로 판명난 터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 신자유주의를 추종하고 자칭 “신자유주의 좌파”라고 불렀던 세력들도 신자유주의에 대해 침을 뱉고 돌아섰다. 

이렇게 놓고 보면 촛불항쟁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재벌체제개혁과 경제민주화정책을 완수하는 것은 민중의 절박한 요구이자 역사적 소명이고 시대사적 요청이다. 여건과 동력이 충분하지 못해 재벌체제개혁을 못한다고 하는 소리는 핑계에 불과하다. 지금은 자유한국당이 방해하니 총선승리 이후에 하겠다는 것도 안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총선 이후에는 대선 승리 이후에나 하겠다고 할 것 아닌가. 이처럼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그 계급적, 정책적 제한성으로 인해 이 역사적 과제를 수행하기에 버거워 보인다. 소득주도성장이 포용성장국가론이라는 거대자본의 시혜적 논리로 바뀌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체제에 손도 못 대고 있다. 경제관련 관료들은 노골적으로 친재벌정책을 쓰고 있다. 재벌체제개혁의 과제는 어쩔 수 없이 다시금 민중의 몫으로 넘어오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5월 24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재벌체제개혁특별위원회’ 설치를 의결했다. 재벌체제에 대한 민의 문제의식을 담은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다.

지난 시기를 반성해 보면 재벌문제, 재벌중심의 한국경제가 노동자 민중의 삶을 파괴하고 있었지만, 기간에 이 문제를 전면에 제기할 수는 없었다. 
재벌문제가 가진 복잡성을 국민들이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데다가 재벌의 성장침체와 한국경제의 성장침체를 하나로 보는 수구보수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벌개혁투쟁의 주체, 준비된 동력이 취약했다.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률은 낮으며,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임,단협에 매몰되어 있었다.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국정농단 세력을 감옥에 보냈지만, 국민들은 ‘아직 내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개혁이 지속되는 조건에서 경제개혁이 동반되어야 민주개혁을 완성할 수 있고, 국민들의 생활 처지를 바꿀 수 있으며,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진도 이룰 수 있다. 
전노협시절부터 현재까지 노동운동의 재벌개혁 투쟁은 언제나 핵심사업이었지만 관건은 재벌개혁투쟁의 동력과 주체문제였다.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노동조합 활동에 한정된 임금인상, 처우개선이 아니다. 이제 노동운동은 임,단협 현안투쟁을 넘어, 완전히 달라진 시대의 높이, 변화의 폭을 이끌 수 있는 노동운동, 진보운동으로 전진하는 것이 촛불의 명령이다. 

 


2. 을들의 경제민주화 동맹을 구축하자

민의 손으로 재벌체제개혁을 완수하려면 광장에서 강력한 재벌체제개혁운동을 전개하여야 하고,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갈 강력한 정치역량, 대중운동역량을 마련해야 한다. 재벌특혜동맹에 맞선 “을들의 경제민주화동맹” 구축이 절실한 이유이다.
경제민주화동맹은 촛불항쟁에서 등장한 다양한 계급별, 부문별, 계층별 요구를 단일한 <재벌체제개혁과 경제민주화> 전선으로 집중시키고 모아내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사상과 정견, 신앙과 처지를 넘어 재벌체제개혁속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고 확신하는 세력들을 다 모아내야 한다.

민주노총은 재벌체제개혁의 동력으로 <노동자와 민주노총>, <진보정당>, <을들의 연대>로 규정했다.

“재벌개혁 투쟁의 중심 동력은 노동자”이며, “노동자가 재벌중심의 경제체제에서 가장 고통받는 당사자이자 다수”라는 것이다. 재벌체제개혁투쟁의 핵심동력은 양대노총이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하여 “재벌개혁 투쟁은 단위사업장 투쟁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총자본에 맞서는 총노동 전선으로 대응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조를 조직하고 지원해야 하며, 재벌의 경영전략의 요체인 비정규직의 확대를 통한 정규직 포위와 고사전략을 무너뜨려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의 갈등하는 것을 지양하고 자본에 맞서 공동의 투쟁전선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민주노총이다.”라고 자기 역할을 설정하고 있다.

또한 재벌개혁투쟁은 구체적인 법제도 개혁을 동반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재벌개혁 정치세력, 정당>이 투쟁을 선도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제기했다. “진보정당은 매 시기 재벌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재벌책임론, 재벌개혁 요구의 계기를 제때 포착, 여론을 환기시키고 증폭시켜야 하며, 드러나지 않은 재벌의 문제점들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재벌개혁의 동기와 근거를 확대해야 한다”며, 정치세력, 진보정당들이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재벌체제개혁특위는 “재벌에 맞서는 을들의 동맹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매우 의미있는 결정이다. “재벌은 하청을 수탈하고, 골목상권을 장악해 중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재벌은 일자리 만들기를 멈춘 지 오래고, 재벌이 사회양극화와 불평등의 주범이라는 인식과 공감대가 폭넓게 확대되고 있다. ‘재벌책임론’ 아래 을들의 구체적 연대를 조직해야할 단계”라는 인식은 노동계급이 을들의 동맹을 구축하는 과제를 가시권에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최저임금과 같은 구체적 의제를 가지고 노동자와 다른 계급·계층의 조직적 연대와 공동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와 상인 간의 구체적 연대 틀을 조속히 구축하여 을들의 갈등이 아닌, 재벌에 맞선 ‘을들의 투쟁’ 전선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을들의 전쟁”에 매몰되지 않고 재벌체제개혁을 위한 단일투쟁전선으로 모아내겠다는 전환적 입장을 담고 있다. 종속적 신자유주의 체제, 헬조선이 만들어낸 “을들의 전쟁”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과 고령층, 알바직과 자영업자문제는 모두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민중분열전략의 파생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전체 민중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 을들의 경제민주화 동맹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방도로 될 것이다.

을들의 동맹에서 조직된 역량을 가진 양대노총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결정적이다. 양대노총에 소속된 주요 산별노조들은 그간 산업별로 경제민주화 동맹을 구축하고 오랫동안 투쟁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이제는 양대노총의 중앙차원의 지도아래 제조업의 구조조정 저지투쟁, 보건의료 민영화 반대투쟁, 전교조의 참교육 실현 투쟁, 사무금융의 금융민주화와 공공노조의 공공성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 서비스의 재벌갑질반대투쟁 등의 연대전선을 전체 재벌체제개혁, 경제민주화전선으로 모아내야 한다. 노동계급이 앞장서서 농민, 자영업자, 중소상공인, 시민사회진영, 여성, 청년들과 손잡고 최대의 경제민주화전선을 구축할 때에만 실질적으로 재벌체제를 개혁할 수 있는 조직된 동력을 만들 수 있다.

3. 아래로부터의 총궐기형 대중운동을 창출해야

민주노총은 지난 시기의 재벌체제개혁투쟁 방법면에서도 약점이 있었다고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의미있다. “재벌개혁은 대부분 법제도 개혁, 위로부터의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고, 아래로부터 재벌개혁투쟁은 캠페인성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평가가 그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투쟁은 임단협과 재벌개혁 구호를 함께 외치다, 임단협이 끝나면 재벌개혁투쟁도 중단되는 식”이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재벌개혁 투쟁이 임단협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첫째,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요구가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길은 재벌개혁에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둘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재벌개혁투쟁을 적극적으로 배치, 전개해야 한다. 셋째, 노조는 임단협이 끝나도 재벌개혁 투쟁을 계기별, 사건별로 지속해야 한다. 넷째, 산별노조의 재벌개혁 공동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세운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재벌체제개혁투쟁의 혁신방향을 정확히 잡은 것이라 하겠다.

민주노총 재벌체제개혁특위는 2019년에 재벌특혜동맹 세력과 전면전을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2019년 구체적인 투쟁목표는 ▲ 재벌투쟁 본격화 전면화 대중화 위한 체계 구축 ▲ 재벌투쟁 역량을 구축하고, 총노동–총자본 전선 구축 ▲ 재벌체제청산 투쟁전선으로 제 세력 결집  ▲ 대중적인 재벌체제청산 운동과 투쟁 조직으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서 ▲ 현장에서부터 재벌투쟁 역량을 구축하고, 이를 위한 조합원 교육과 선전사업, 공동행동과 실천을 일관되게 추진 ▲ 민중공동행동 재벌체제청산 특별위원회를 강화하고, 특위를 중심으로 현안대응 강화, 민중진영 공동 사업과 투쟁, 제 세력 결집, 전선 구축사업을 일관되게 진행 ▲ 2019년 최저임금 투쟁을 전면적인 재벌체제청산 투쟁으로, 재벌특혜동맹 세력과의 투쟁으로 진행 ▲ 각계각층의 재벌체제 청산 흐름을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을 중심으로 모아내고, 각계각층의 총의를 모아 국민적인 3대 요구(재벌특혜 중단, 재벌불법이익 환수, 재벌불법경영승계 처벌)로 하반기 국민운동과 투쟁을 발의 ▲ 2019년 투쟁에 기초해 2020년 정치적 격변기를 앞두고 재벌특혜동맹지지 세력과 재벌체제청산 세력간의 대결전선을 분명하게 형성하고, 압도적인 재벌체제청산 국민적 흐름을 구축한다고 그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그동안 경제이슈는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에 비해 민중들이 대중적으로 나서서 쟁점화하고 투쟁하기보다는 전문가들에게 위임하여 문제를 제기해 온 특징이 강했다. 반면 광장투쟁과 촛불의 장은 민중들의 집단지성을 실현하는 생동하는 학습의 장이기도 했다. 한국민중들은 SNS로 무장하고 제기된 이슈에 대해 실시간으로 집단학습하고 투쟁전술을 구사하는 위대한 민중으로 성장해왔다. 이제 그 힘이 ‘불가능하다’고 아예 제쳐놓았던 재벌체제개혁문제를 기어이 해결하는 위대한 힘으로, 촛불혁명 완성의 강력한 동력으로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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