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사태 250일… 농성장에서 만난 정현찬 가톨릭 농민회 회장

백남기 농민이 국가폭력에 쓰러져 사경을 헤맨 지 250일이다. 그러나 이 사태의 책임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 아니 진압 담당자들은 되레 승진했다.

백 농민이 활동했던 가톨릭농민회 정현찬 회장을 19일 오후 만났다. 정 회장과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백 농민의 모습이 궁금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에 있는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 농성장에서 그를 만났다.

- 백 농민과 알고 지낸 지는 얼마나 되셨나?

“한 20년 정도 됐다. 보통 가톨릭농민회원들은 전국농민회총연맹 활동도 병행한다. 나도 2002년부터 2년간 전농 의장을 한 뒤 고향에서 10년 넘게 지내다가 다시 주변의 요청으로 가농 회장을 맡고 있다. 백 농민도 과거 가농 부회장도 하고 지역 전농 조직에서 감사도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전농과 가농의 활동은 어떻게 다른지.

“전농이 주로 국가적인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구조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면 가농은 주로 생명농업운동을 하는 조직이다. 환경과 국민의 건강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농업에 맞서 특히 친환경 유기농 농업 활성화에 많은 힘을 쏟아 왔다. 백 농민도 돈 안 되는 밀농사를 지으며 우리밀 살리기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 백남기 농민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꼿꼿하고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흥도 많고 술도 잘 마시지만 한편으론 가정적인 면모도 있었다. 평소에 유머도 많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데, 뭐랄까 곡식만 심는 것이 아닌 사람을 심는다는 자세로 활동했던 분이라 할 수 있다.”

- 백 농민에게 이런저런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 많았다고 들었다.

“선거에 출마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군수, 국회의원, 심지어 도지사 출마 얘기까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래도 백 농민은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지역에서 농민들과 어울려 사는 것에 만족하셨던 분이다.”

▲ 사진 출처: 전국농민회총연맹 페이스북 페이지

-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모두가 물대포에 밀려 물러나는 상황인데 백 농민 홀로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아까 말했듯이 그는 불의를 보면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회가 점점 수세적이고 운동에 앞장서려 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나라도 앞장서서 줄 한번이라도 당겨야지’ 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 가족 분들이 많이 힘들 것 같다.

“큰 딸 도라지씨가 병원을 자주 들른다. 아들 두산씨는 농사를 짓느라 바쁘고 작은 딸 민주화씨는 알려진 대로 외국에 있으니 자주 올 수는 없다. 백 농민의 자제들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고 아버지의 행동이 과소평가되거나 폭력적으로 매도되는 것에 매우 마음 아파하고 있다.”

- 원내 야당들이 약속했던 ‘백남기 국회 청문회’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새누리당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청문회도 성사되기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 백 농민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회가 진상규명을 위해 나선 것인데 그것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야당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청원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 ‘백남기 사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 보는지.

“느슨했던 농민조직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더 많은 농민들이 농업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본다. 당장 올해 11월 민중총궐기에는 면 단위 농민조직까지 상경투쟁이 이뤄지도록 각 지역에서 힘쓰고 있다. 그리고 지하철 객실을 돌며 백 농민 사태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데 농업에 별 관심이 없던 서울시민들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호응해 주곤 한다. (총궐기 당시)3만이나 되는 농민들이 서울로 올라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가 언론에서 거의 부각이 안 됐는데 시민들이 ‘아 백 농민은 이런 요구를 하다가 저렇게 누워있구나’라고 많이 알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됐다.”

- 올해도 11월에 민중총궐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박근혜 대통령이 80kg에 17만원 하던 쌀값을 21만원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했는데 도리어 14만원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런데도 밥쌀을 계속 수입한다니 더 이상 농업이 말라죽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그리고 백 농민 사태에 대해 정치적 책임자가 사과하고 지휘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들이 이런 부분에 더 공감하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론들도 시위하는 쪽의 인권도 소중함을 알고 우리가 전달하려 한 메시지도 제대로 전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의 고통과 함께하는 언론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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