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한미동맹](12) 연재를 마치며

동아시아 질서가 또 다시 요동치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각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구한말의 격변기, 한국은 식민과 전쟁을 경험했다. 해방 직후의 격변기, 한국은 분단과 전쟁을 경험했다. 놀랍게도, 동아시아 질서가 요동치는 매 격변기에 한국의 선택은 미국이었다. 미국에 의지해 우리의 살길을 도모하고자 했던 노력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과거와 다른 선택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있다. 한미동맹,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저자]

1. 연재를 시작하며: 한국은 정상국가인가?
2.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홍장이 주도한 조선 최초의 근대조약
3. 고종,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 현혹되다
4. 러일전쟁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고종의 망상인가, 미국의 배신인가
5. 맥아더 포고령: 해방군인가 점령군인가
6. 국공내전: 일본과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다
7. 한국전쟁과 미국: “고맙게도 한국전쟁이 터져주었다”
8. 자발적 사대근성과 한미동맹의 실상: “독립국가가 아니군요”
9. 북한의 핵개발과 남북미 삼각관계: 동맹의 존재 이유를 묻다
10.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와 한미 동맹: 동맹, 딜레마에 빠지다
11. 쿼바디스 한미동맹: 굳건한 동맹은 더 이상 없다!
12. 연재를 마치며: '포스트 동맹시대' 무엇을 할것인가?

세 번의 좌절은 없다

청일전쟁, 을미사변, 아관파천, 거문도 사건, 러일전쟁 등 강대국의 발톱이 한반도를 향하고 있던 그 시절 고종을 위시한 조정의 위정자들에게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미국은 ‘영토적 야심’도 없었고, 다른 나라의 정사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약소국을 돕고 동양의 평화를 희구하였다. 구한말, 조선의 좌절은 잘못된 대미인식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해 서양 세력이 침투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였다. 서양 세력뿐이었던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열망하던 일본 역시 조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러일전쟁 시기 조선을 도와달라는 고종의 편지는 묵살되었다. 오히려 미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영미일 동맹’을 구축하고 했다. 조선을 돕기는커녕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확인되듯이 필리핀을 차지하기 위해 조선을 차지하려는 일본과 비밀 거래를 했다. 그렇게 조선은 식민과 전쟁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해방 직후, 많은 조선인들은 ‘해방군 미군’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들이 맞닥뜨린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다. 미군정은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계승했다. 임시정부, 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를 모두 부정했다. 친일파들을 앞세운 그들의 통치는 결국 분단과 전쟁으로 귀결되었다. 

동아시아는 또 한 번의 대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러시아의 동진정책과 일본의 우경화 노선은 구한말과 해방 직후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맞이하는 동아시아 질서의 구조적 변동기에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시기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두 번의 좌절을 경험했다. 아니 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미국을 ‘맹신’했고, 미국은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들의 이익을 좇아’ 행동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은 언제나 미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들이 우리의 이익을 도모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할 때이다. 미국이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로 다시 한 번 좌절을 경험할지 그게 아니면 미국은 그들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대미 인식,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할지를 말이다. 선택은 명료하다. 세 번의 좌절은 없어야 한다.

‘포스트-동맹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동맹의 시대는 끝났다. 북한(조선)과 미국이 적대관계에서 정상관계로 전환한다면 동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한반도 평화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조선)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상황이라면 동맹은 더더욱 위험하다. 남과 북의 사소한 군사적 충돌이 북미 사이의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 관계의 지속은 곧 남북 군사적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어떤 상황에서도 동맹이 그 효과를 발휘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포스트-동맹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포스트-동맹 시대’는 희망적이다. 북미 적대관계가 청산되는 과정이 지난 6.12북미정상회담으로 시작되었고, 남과 북 역시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20년이 넘는 좌절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식민과 전쟁, 전쟁과 분단으로 점철되어 왔던, 암울했던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열리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포스트-동맹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 또 다시 우리에게 찾아온 동아시아 구조적 변동기에 두 번 다시 좌절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앞에 놓인 막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맺어왔던 미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는 인식에는 많이들 동의하지만 미국이 우방이 아니라는 인식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러시아, 일본과 똑같은 ‘외국’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이익보다 우리의 이익을 우선시할 리는 만무하다. 미국은 다를 것이라는 대미 인식에서 탈피하여 미국도 다른 ‘외국’과 똑같다는 인식을 가졌을 때 ‘포스트-동맹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식의 지평이 확립될 것이다. 

다음으로 남과 북의 협력과 단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일체의 시도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을 앞둔 현 상황에서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논리는 대북 제재이다. 대북 제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모두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 제재를 추구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민족의 협력과 단합을 저지하려는 데 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발전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의 발전 동력은 민족의 단합된 힘이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에서 우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믿을 것은 우리 민족이며 평화와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단결에 있다. 오직 민족의 단결만이 지난 시기의 아픔과 좌절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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