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피해자 이야기① 택배기사 이진성씨

“‘요주의 인물’, ‘모난 돌’, ‘노조 출범 1호 해고자’ 그들은 저를 이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재취업이 안 된다고 했어요.”

“이게 말로만 듣던 ‘블랙리스트’냐고 물어봤어요. 근데 ‘그건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똑 부러지게 얘기를 하지 않아요.”

CJ대한통운 경주터미널에서 택배기사로 일해 온 이진성씨는 지난해 4월3일 해고를 당했다. “그 후 재취업에 대해 논의를 하기도 했어요. 공식적으론 아니고. 회사(CJ대한통운)에선 ‘블랙리스트 같은 건 없다’고 말하니까요.” 그러나 아직까지 해고자 신세다. 십수 년을 택배기사로 일하다가 해고가 되고, 근근이 일하던 중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한 달이 훌쩍 지났다.

▲ 점심시간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1인 팻말 시위를 하는 이진성 씨 [사진 : 김영욱 기자]

“노동조합 활동, 그 이유 말고는 없다”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다는 것. 한마디로 그들 눈에는 제가 ‘모난 돌’이었겠죠.” 아무리 곱씹어 봐도 해고된 이유가 그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게 없단다. 

지난해 1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이 출범했다. 한 해 전인 2016년 10월 ‘택배기사 권리 찾기’ 움직임이 활발하던 때에 이씨가 일하던 CJ대한통운 경주터미널에서도 대리점 점장이 택배기사들에게 수수료를 과도하게 공제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며 싸웠다. “노조 출범 전에 대리점장이 집에까지 찾아와서는 ‘다 들어 줄테니 노조는 하지마라’는 얘기까지 했어요.” 노조에 가입하고 동료들과 출범식에 다녀왔다. 그리고 택배노조 경주지회가 설립된 다음날인 4월3일 계약이 해지되며 해고를 당했다. 

해고 후 17개월 동안 재취업이 막혔다. 코드(사번) 발급이 안 돼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을 했다. “동료들이 짐(택배물량)을 받으면 자기 물량에서 일정 부분 저한테 떼어줬습니다. 생활비 벌이를 할 수 있도록 저를 배려해 준 거죠. 그게 또 말처럼 쉬운 건 아닙니다. 초창기엔 회사에서 그것조차도 못하게 했어요. 제가 가면 경찰을 부르고….” 일을 하면서 인간으로서 비참함을 느낄 때도 있단다. “동료들이 다 짐을 싣고 나가고 난 후 내 차를 대서 내 몫으로 남겨진 짐을 싣고 나올 때의 그 심정, 그 때 본사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들… 견디기 힘들었어요. 담담해지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지금도 그 눈빛을 생각하면 굉장히 힘듭니다.”

비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를 위해서 짐을 나눠준 동료들한테, 혹시나 내가 문제가 생기면 고스란히 피해가 그 친구들한테 갈 수밖에 없으니까….” 더 신경 써서 일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한 곳 배송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1시간 남짓, 그런데 2시간이 걸린다. “고객이 없으면 두 번, 세 번을 가서 고객 손에 쥐어주고 나야 안심이 된다”는 거다. 물량을 나눠준 동료에게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 육체적 힘듦보다 더 힘든 건 ‘나와 내 동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했다. “술 한잔 마시다보면 직장 얘기, 일 얘기 하고 그러는데, 저 같은 경우 쉽게 대화에 끼질 못하잖아요. 동료들도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술값 계산할 때도 동료들은 내가 술값을 내지 않도록 나를 배려해주지만, 나 스스로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해 가더라구요….” 자기 잘못도 아니고 동료들 잘못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서서히 동료들과 멀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1년 반이 넘는 해고자 생활이 그랬다. 

CJ대한통운의 블랙리스트 ‘코드’ 관리…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

이씨가 말하는 코드는 CJ대한통운에서 내주는 사번이다. 택배기사가 A라는 대리점에서 일하고 싶다면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 대리점장이 CJ대한통운에 채용 의사를 알린다. 그럼 CJ대한통운이 코드(사번)을 발급해 주는 형태다. 반대로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대리점장은 CJ대한통운에 퇴사를 알리고 사번을 없애달라고 한다. “일을 그만두고 나가더라도 앞의 배송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책임 추궁, 손실관계 계산을 위해 사번을 바로 지우진 않아요. 전산시스템상 1년 전에 퇴사한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 해고당시 (2017년)4월3일 오전 7시에 확인해보니 바로 없는 사번으로 나왔습니다.” 사번을 요청하는 건 대리점장이 하는 거지만 실질적인 사번 관리는 100% CJ대한통운에서 한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회사(CJ대한통운)가 개입하지 않고, 회사가 직접적으로 관리하지 않고서는 대리점이 사번을 어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말이다. 

“(동료들 사번으로)일 하는 거 다 알면서 너무한 거 아니냐, 나도 정상적으로 일 좀 하자”라고 여러차례 말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노조 출범 후 1호 해고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도저히 안 된다”는 말뿐이었다. 이씨는 코드(사번) 발급이 막혀 있는 이유가 CJ대한통운에서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또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내가 CJ대한통운 블랙리스트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2016년 말 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용산 동부이천동 터미널에서 일하던 택배기사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이씨와 같은 처지가 됐다. 다른 터미널에서 동료의 코드로 일을 하거나, 코드(사번) 발급이 미뤄지자 아예 다른 택배회사로 직장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블랙리스트로 찍혀 해고된 기사 중에 CJ대한통운 내에서 사번을 재발급 받아서 정상적으로 배송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CJ대한통운이 직접 사용자”

지난해 11월 택배노조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았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에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하며 지난달 10일 CJ대한통운 본사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이씨도 이 곳에서 한 달이 넘도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아내에게 “(지금 하는 것도)할만 해, 똑같은 일인데… 지금까지 십수 년을 해왔던 일인데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지만 농성에 들어가면 오래도록 집을 비워야 했다.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당신한테 얘기는 못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CJ라는, 재벌이라는 거대 괴물집단은 선처를 기대할만한 집단이 아닌 것 같다. 이젠 내가 빼앗겼던 것 내 손으로 찾아와야 겠다”고 하자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 다 하고, 당신 서럽게 했던 나쁜 놈들 혼내주고 와!”  

택배노조는 지난 1월10일 ‘진짜 사장인 CJ대한통운과 직접 교섭하겠다’면서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계약관계에 있는 대리점과 이야기 하라”는 것. 

택배노동자들이 CJ대한통운이 교섭의 직접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CJ대한통운에 종속된 대리점이라는, CJ대한통운이 사용자로 느껴지는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언론에서 주목받은 그대로다. “CJ대한통운 현장(터미널)의 모든 재산, 설비가 다 CJ 돈으로 만들어졌고, CJ가 몇 시까지 출근하라고 요구해요. 내 개인 돈으로 산 차를 CJ가 강제로 도색을 하라고 시키는가 하면 CJ유니폼도 강매하구요. 얼마 전까진 배송기사를 모아놓고 본사 지시사항을 전달하기도 했어요. 배송기사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도 매깁니다.” 서류상에만 직접 계약관계가 아닐 뿐이지 모든 것을 CJ대한통운이 통제하고, 관리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게 직접적인 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코드(사번) 발급을 거부해 블랙리스트들의 재취업을 막는 것 역시 CJ대한통운이 하고 있는 거라고 이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저는 피해자입니다. 우리 얘기를 들어주세요”

농성의 일상은 본사 앞에서 아침 출근시간, 점심시간, 저녁 퇴근시간 1인 팻말 시위를 하고, 오후엔 청와대와 서울고용노동청을 찾아 선전전을 하며 CJ대한통운의 부당노동행위를 알리고 직접교섭의 요구를 전달하고 있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아침 본사 앞. “직원이 오르내릴 때 미끄러질까봐 연신 계단을 쓸고 닦고 하는데, 바로 코앞에서 사람이 비를 맞고 몇 시간을 서 있는데도 말 한 번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출근해서 일하고, 점심 먹고, 저녁에 퇴근하는 타인의 일상을 보면서 화도 난단다. “내 일상은 이게 뭔지. 동료들과 멀어지고 가족들과 떨어져서 이 낯선 서울 땅에서, 천막 안에서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되는지…. CJ가 가해자고 저는 피해자입니다. 이게 제 잘못입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밤에 잠을 못자요 정말로.” 지난 달 추석연휴에도, 아내 생일에도 경주에 내려가지 못했다. 다음달 결혼기념일도, 내년 1월 군에서 제대하는 큰 아들도 집에서 반겨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왜 나의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빼앗아 갔는지, 나의 생활을 그 이전으로 돌려달라는 게 무리한 요구도 아닌데…’ 이 씨가 CJ대한통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거다. “교섭이라는 것도 대화거든요. 대화라는 건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할 때 가능한 거예요. 근데 대화테이블에서조차 우릴 인정하지 않는 건 우리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고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겠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상생’하지 말고, 내 얘기를 좀 들어주세요, 우리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CJ대한통운이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씨는 이렇게 얘기를 맺었다.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 흐름에서 내 식구와 남의 식구,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 이런 개념으로 노동자를 갈라치기 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는 부당노동행위는 없어져야 하고, 처벌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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