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노조, 중소마트·독립법인마트 가입… ‘50만 마트노동자 산별노조’ 본격 돌입

국내 ‘빅3’ 대형마트(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에서 각각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활동해 오던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으로 뭉쳤다. 

흔히 ‘마트노조’라고 하면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마트노조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의 마트에서 일하는 누구에게나 노조 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겠다”고 선포했다. 대형마트 직영 노동자만이 아니라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도, 그리고 지역 곳곳의 동네 중소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위해 나선 것. 

마트노조는 지난해 “50만 마트노동자의 희망이 되겠다”면서 마트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하고 있는 하청‧파견‧용역 노동자까지 포괄해 마트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산업별 노조로서 출범을 알렸다. 

그래서 춘천지역의 중소마트인 ‘벨몽드마트’ 노동자들도 가입했다. 춘천시에서 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벨몽드마트의 노동자들은 지난 4월 마트노조에 가입한 뒤 8월에 회사와 ‘임금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노동조합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에 온 마트노조 벨몽드마트지회 간부들(김병혁 지회장·이진혁 부지회장·박옥서 사무장·이학수 홍보부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대형마트에도 있고, 중소마트에도 있다… 최저임금 무력화 꼼수·고강도 노동

지회 간부는 모두 5명. “교육을 열심히 받아야 할 사람을 교육부장으로 선출했는데 정작 오늘 교육에는 못 왔네요.(웃음)” 갓 노동조합을 만든 신생 노조답게(?) 활기찬 대화들이 오간다. 

“노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노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먼저 나서는 것에 주춤했었죠.” 그런데 “노조를 만들고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마트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중소마트 노조가 마트노조에 가입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마트노조의 문을 두드렸더니 ‘가능’했다. 이미 독립법인 마트로 있는 성담유통, 부방유통 등이 마트노조에 소속돼 있었다. 

대형마트 안에서 벌어지는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꼼수, 인력 충원 없이 계속되는 고강도 노동은 중소마트인 벨몽드마트 노동자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회사는 작년 상여금을 월할로 나눠 임금에 포함시켰어요. 2021년엔 주 52시간제를 적용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신규 채용은 없이 근무시간만 줄어들어 일은 더 많아졌죠.” 김병혁 지회장이 입을 떼자 “그뿐만이 아니”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장의 실태가 쏟아져 나온다. 

벨몽드 노동자들은 마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 업무처럼 하고 있다. “본점 매장이 300평 정도 되는데 통로도 좁고, 설비도 낙후됐어요. 시설관리부분 업무까지 직원들이 다 합니다.” 매장 형광등도 교체하고 청소도 하고, 빗물도 퍼내고, 건물관리까지… 매장 안의 일은 물론이고 직접 배달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담당업무 구분 없이 여러 가지의 일을 ‘자기 회사를 돌보는 사장’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동량에 비해 처우는 열악하다. 상여금을 월급에 포함시켜 실질임금을 줄이는가 하면, 직원휴게실·탈의실조차 변변치 않다는 것. “반말하는 건 기본이고 ‘우리 직원’이라는 생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상명하복에 고압적인 지시, 폭언, 듣기 불편한 언어들까지….” 경영진이 직원에게 보이는 태도 역시 말이 아니다. 쌓이고 쌓인 부당한 처우에 더해, 퇴근시간 뒤에 있는 ‘무급 의무교육’에 대한 불만이 기폭제가 돼 노조를 만들었다. 

두 달 만에 60명이 모였다

노조 준비 두 달 만에 조합원이 빨리 늘었다. 5개 매장에서 일하는 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는 90여 명,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파트타임까지 모두 140여 명의 노동자 가운데 60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점장, 과장, 계산원, 파트타임까지 조합원이 됐다. “매장 내 허드렛일과 배달, 매장관리까지, 일의 빈틈이 생기면 주업무와는 관계없이 모두가 메워야 했던 노동조건이 직원들을 노동조합으로 뭉치게 만든 것 같아요.” 

▲ 벨몽드마트 전경 [사진 : 마트노조]

“회사와 직원 사이 신뢰와 소통이 전혀 없었으니, 회사는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조차 알지 못했어요.” 이진혁 부지회장이 노조 설립 당시를 떠올렸다. 직원들의 불만에 관심조차 없었던 회사를 상대로 노조설립을 알리고 교섭요구 공문을 보냈다. 10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면서 노조 사무실이 생겼고, 노조 전임활동도 보장받았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직원들을 무시하는 행동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직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것. “직원들의 요구에도 회사는 변하지 않았고, 결국 견디다 못한 직원들이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합원들이)노조에 먼저 제안하고 문의를 해옵니다.” 노조 설립-단체교섭-교섭체결 5개월 동안 이뤄진 변화다. 

“노조하고 달라졌다”… 마트 최초 ‘감정노동수당’ 도입

마트노조는 첫 번째 임단협을 마친 벨몽드마트지회의 큰 성과로 “마트 최초로 ‘감정노동수당’을 도입한 것”을 꼽았다. 서비스노동자들의 심각한 ‘감정노동’은 벨몽드마트에도 존재했다. 지역의 작은 마트 직원들을 향한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와 차별적인 시선, 지나친 감정표현 등에 시달렸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 계산된 물품을 상자에 담아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점심식사 시간이 돼 직원이 보이지 않으면 ‘언제부터 벨몽드가 고객을 이렇게 대했느냐’며 화를 내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계산대 옆에 서서 물건을 자신에게 가져다 달라고 지시하고 계산만 하는 고객도 있어요.” 이런 감정노동을 차단하고 보호해주는 관리자도 없을뿐더러 대응매뉴얼도 없던 매장이었다. 올해 첫 임단협에서 ‘감정노동수당’을 도입, 계산원부터 지급키로 하고 대상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노조하면서 감정노동수당도 만들었고, 휴게실 확충, 공휴일 유급휴일도 확대하기로 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첫 임단협 결과에 100% 만족하진 않아요. 최저임금 꼼수 없는 임금인상과 ‘주52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충원도 있어야 합니다”. 지회 임원들이 결심을 내놓자 “임단협에서 보장받은 직원휴게실을 올해 안에 잘 만들어야 해요”, “더 많은 조합원을 모아 올해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요구안을 준비해야죠.” 간부들도 결의를 다지고 있다. 

▲ 마트노조 벨몽드마트지회 임원·간부들. 이학수 홍보부장, 박옥서 사무장, 김병혁 지회장, 이진혁 부지회장(왼쪽부터).

“가야 할 목표가 생겼어요”

그리고 가야 할 목표도 생겼다. 벨몽트마트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벨몽드 안에 동원F&B, 청정원, 오뚜기 등 협력업체가 있습니다. 마트 운영이 어렵다는 핑계로 업체에서 주어진 물품 진열·관리 등의 일만 하는 게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이 아닌 벨몽드의 직원처럼 일하고 있어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부당한 노동행위를 막기 위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나서 해결하고 바꿔 갈 수 있도록, 협력업체 직원들도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결심이다. “노조 만들면 마트가 망한다는 소린 말도 안 된다”며 노동조합 하면서 달라진 모습들, 달라질 모습들을 협력업체 직원들도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벨몽드마트 안에만 머물러 있는 목표는 아니다. 눈을 지역으로 돌린다. “지역의 작은 마트들엔 최저임금도 못 받고,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중소마트도 노조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조합원의 이익뿐만 아니라 지역의 군소마트 노동자들을 위해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강원도 춘천, 지역 중소마트로는 처음으로 마트노조에 가입한 벨몽드마트지회는 ‘마트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마트산업노조로 뭉치면 더 큰 힘이 된다’는 확신에 찬 모습이다. “마트노동자들의 노조가 많이 생기고 노조활동 하는 게 더 당연시되면 마트노동자들의 삶은 더 나아질 거예요.” 

대형마트엔 식품업체, 화장품업체, 의류업체 등 다양한 업체들이 협력업체로 입점해 있다. 화장품업체인 ‘아모레’ 노동자들은 이미 마트노조에 가입했다. 또 벨몽드마트 뿐 아니라, 독립법인으로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부방유통(이마트 안양점), 성담유통(이마트 시화점)에도 노동조합이 있다. 마트노조는 출범하며 선언한 ‘50만 마트노동자의 희망’이 되기 위해, 대형마트 직영 노동자만이 아닌 협력업체, 판촉, 행사, 시설, 용역업체 노동자, 그리고 중소마트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산업별 노동조합’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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