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민플러스-조선신보-Web통일평론 주최 8.15 73주년 공동토론회 2박3일

서울에서 38℃ 폭염을 뚫고 도쿄로 향했다. 8일 나리타 공항은 13호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20℃의 선선한 날씨로 우리 일행을 맞았다. 잘게 뿌리는 비바람과 함께 이곳 날씨를 통째로 서울로 옮기고플 정도였다. 

공항에서 우리일행을 마중나온 사람은? 민플러스에 평양사진을 연재해 남쪽에 이름이 알려진 ‘평양이 왔다’의 조선신보사 평양특파원 로금순 기자. 모두 마치 아이돌을 만나는 팬이 된 듯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민플러스 조헌정 이사장님과 일행들이 옳습니까?” 금순 기자(‘로 기자’로 불리기를 싫어했다. 로 기자란 말이 ‘늙은 기자’란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서다)는 북한(조선) 말투와 일본식 억양이 섞여 듣기가 처음엔 묘했다. 그러나 이미 연예인급인 금순 기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떼지 못한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폭우를 헤쳐 1시간 남짓 이동, ‘도쿄조선중고급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인근에서 버스를 멈추고 잠시 기다려야 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조선학교는 지금 여름방학 중입니다.” 그럼 학생들을 만나지 못한단 걸까? 

“방학이지만 여러 (방문단)선생들을 위해 예술소조 학생들이 등교를 했습니다” 태풍에, 그것도 방학 중에 학생들을 나오게 만들었음을 알게 된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없습니다(부담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조국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자기가 먼저 나서는 민족애가 넘치는 학생들입니다.” 잠시뒤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곤 금순 기자의 말 뜻을 실감할 수 있었다. 

▲ 도쿄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과의 기념사진 [사진 : 조선신보 로금순 기자]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신길웅 교장선생님이 우리일행을 맞아주었다. 그는 남쪽에서 흔히 생각하는 교장선생과는 아주 많이 달라 보였다. 이 학교 출신으로 40년 넘게 교원생활을 해온 동포2세 신 교장은 우리가 앉을 책상과 의자를 직접 나르는가하면, 영상을 틀고 학생들 공연에서 생기는 사소한 문제까지 일일이 돌봐주었다. 그 어디서도 학교장이란 행세나 권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신 교장은 1949년생, 우리 나이로 71세였다. 

“재일조선인 민족교육은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 인류력사의 기적입니다. 3세가 4세에게 모국어를 배워주고, 4세가 모국어를 읽고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만(뿐)입니다.” 신 교장의 자랑은 정당하다. 

중국 조선족이 220만에 이르고, 미국엔 142만명의 동포가 있지만 민족교육을 하는 학교는 1곳도 없다. 더구나 2세만 돼도 모국어를 구사하는 게 서툴다. 그런데 이들은 4세가 모국어를 사용한다. ‘기적’이란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 태풍이 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일행을 위해 등교해 준 조선학교 학생들
▲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무용소조의 공연

고급(등)학교 ‘민족악기소조’가 해금으로 ‘능수버들’을 연주했다. 합창부는 ‘고향의 봄’과 ‘아리랑’을 불렀다. 무용소조는 조선여성을 형상한 부채춤 ‘나비’를 공연했다.

고등학생 동아리 수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최상급 공연이었다. 학생들 ‘학예회’ 정도를 염두에 뒀던 우리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쩍 벌어져 말을 잊을 정도였다. 이후 교장선생님의 즉석 제안으로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됐지만 16명 일행 전원은 한동안 질문을 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남쪽 아이돌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합창부 학생은 “레드벨벳”이라고 답했다. 지난 4월 방북공연을 보며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한충목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는 “남쪽의 국보1호는 남대문이고, 북쪽의 국보1호는 평양성이다. 나는 우리민족의 국보1호는 단연코 이곳 ‘조선학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큰 박수와 공감을 얻었다. 

▲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있는 한충목 4.27연구원 원장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소학교 53, 중학교 32, 고등학교 10, 대학 1곳)를 무상교육 대상에서 제외해 교원의 임금은 물론 학교부지 세금까지 학생들의 수업료로 충당해야 하는 고충을 전해 듣곤 일본 정부의 정치경제적 탄압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 학부모들에게도 교육비가 포함된 각종 세금을 거둬가면서도 유독 조선학교에 대해서만 교육비 지원을 거부하는 실상은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모국어와 민족역사, 민족의 얼을 지켜온 조선학교에 아무런 도움을 준 적이 없으며,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에 항의 한번 하지 않았다. 모진 탄압과 역경 속에서도 제 힘으로 60년 넘게 민족교육을 지켜온 동포들에게 저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아울러 조선학교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온 지난날이 몹시 부끄러웠다. 

▲ 환영만찬에서 함께 웃고 있는 조헌정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장과 리정만 조선신보사 사장. 

동포가 운영하는 아카바네 프라자 호텔에 짐을 풀고 조선신보사 리정만 사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 리 사장은 재일조선인상공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다 지난달 조선신보사 사장으로 부임했다. 리 사장은 환영사에서 “역사적인 4.27판문점선언이 민플러스와 조선신보사간의 뜻깊은 공동토론회를 성사시켰다”면서 “판문점선언 이행에서 민플러스를 비롯한 민족언론사들이 역사적 소임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환영 만찬엔 최관익 주필과 김지영 편집국장을 비롯해 조선신보사 기자 및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김 편집국장은 지난 1989년에 입사해 92년부터 지난해까지 평양지국에서 근무했다. 최관익 주필은 지난 6월까지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 환영만찬에서 김장호 민프러스 편집국장(왼쪽)과 담소를 나누는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가운데)

조헌정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장은 “겨우 창립 2년된 새내기 언론사를 73년 역사를 가진 조선신보사가 초청해주고 공동토론회까지 열어준데 대해 사의”를 표하곤 “본시 80살 할아버지와 2돌 손자가 말이 가장 잘 통한다”고 말해 만찬장을 한바탕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 환영만찬을 마치고 찍은 조선신보사와 우리 일행의 기념사진 [사진 : 조선신보 로금순 기자]

극진한 환영에 감격한 우리일행은 숙소인 아카바네호텔 인근에서 금순 기자와 함께 동포가 운영하는 불고기식당 ‘백두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신보는 동포가 경영하는 가게를 지면광고했다. 그러나 일본 극우단체가 광고에 나온 가게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여 최근엔 광고를 못 한다고 금순 기자는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금순 기자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라는 북한(조선)노래를 개사해 “지새지 말아다오~ 아름다운 아카바네의 밤아~”를 불러 다음날 토론회 등 일정을 생각해 과음을 자제시켰다.

▲ 민플러스와 조선신보의 20~30대 기자들끼리 거리에서 

다음날 조선신보사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오찬 후 공동토론회장인 도쿄 분쿄쿠민센터 인근 공원에서 두 언론사 기자들은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특히 20~30대 기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40대인 필자는 그 자리에 끼지 못해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시간 이후 그들은 틈만나면 서로만나 웃고 떠들기 일쑤였다.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는 진심 부럽지 않았다. 

▲ 공동토론회를 마치고 관계자들과 함께 찍은 기념촬영 [사진 : 조선신보 로금순 기자]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총련 도쿄본부 회원들과 한통련을 비롯한 6.15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소속 동포 200여명이 참석했다. 

리정만 사장에 이어 조헌정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6.15일본위 손형근 의장이 축사했다.

리정만 사장은 “4.27판문점선언과 6.12북미합의로 마련된 오늘의 격동적인 정세는 5천년 민족사에 일찍이 없었던 융성번영의 새 전기가 펼쳐지는 역사적인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조헌정 이사장은 “해외 여행중에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이렇게 묻는다. 북쪽에서 왔냐? 남쪽에서 왔냐? 그럴 때마다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그들의 물음에는 조국이 분단돼 대립하는데 너는 지금 뭐하고 있냐는 조롱이 담겼기 때문이다.”면서 “일본과 미 제국주의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세계 평화의 주도국이 되자”고 강조했다.

김지영 조선신보 편집국장이 ‘새로운 세계질서와 4.27시대의 개막’을 주제로 발제했고, ‘4.27시대 자주통일운동의 과제’를 한충목 4.27시대연구원 원장을 대신해 심재환 담쟁이 이사가 발제했다. 이어 강이룩 조선신보 편집부국장, 김장호 민플러스 편집국장, 송세일 6.15일본위 대표의원,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이 4.27판문점선언 이행 의지를 피력했다. 진행은 공동주최를 한 Web통일평론 최석룡 편집장이 맡았다. 

이어진 환송만찬에서 공동토론회를 지켜본 한 총련 관계자는 “4.27판문점선언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했다”며 “불과 8개월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에 펼쳐졌다”고 감격해 했다.

다음날 귀국하는 우리일행을 공항까지 바래다준 금순 기자의 새심한 배려로 2박3일의 매 순간이 알차게 채워졌다. 전날 새벽까지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선보인 금순 기자의 노래 실력이 생각나 조선학교에서 어떤 소조에서 활동했는지를 물었다. “농구부입니다.” 참고로 금순 기자는 도쿄조선중고급학교 출신이다. 그녀의 노래 실력은 상상에 맡긴다. 

▲ 바쁜 일정과 사진촬영 때문에 로금순 기자(가운데, 오른쪽에서 5번째)와 사진찍기가 쉽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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