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종 저 <거대한 뿌리, 그리고 김일성 만세>(2018, 도서출판 말)

이장수 민플러스 운영위원이 매달 한 번씩 신간 서적에 대한 서평을 보내주기로 했다. 첫 번째 순서는 김영종 작가의 소설 <거대한 뿌리, 그리고 김일성 만세> 개정판이다.[편집자]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은 ‘언론의 자유’다. 언론의 자유는 단순히 “언론사의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외부에 공개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사실 ‘처벌받지 않는’은 소극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서 정부와 정치권에서부터 학계와 주권자 대부분이 모든 사람의 “말할 자유”, “표현할 자유”를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옹호하며 지키려고 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언론의 자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을까?

한국에서 ‘저항시의 상징’으로 인정받는 시인 중 한 명이 김수영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김일성 만세’를 인정하는 데 있다”는 시를 썼다. “김일성 만세”는 북에서 ‘영도자’, ‘지도자’로 인정받는 김일성을 남에서도 인정할 수 있는 ‘자유’다. 그런 주장이 아무런 제약 없이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것이 ‘언론의 자유’일 것이다. 35년간 한반도를 강제 지배했던 일본의 주장이 언론에 여과 없이 나오듯이….

1960년 한국의 언론사와 출판사는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김수영의 시를 외면했다. 3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이 선언에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았다. 서로가 상대방의 존재와 체제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평화번영을 위해 손을 맞잡은” 셈이다.

이제 “김일성 만세”는 한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을까? 모두가 느끼듯이 아직 불안하다. 정부도, 국회도, 사법부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판문점선언’과 비슷한 남북간 합의 문서는 여러 번 존재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남북간에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상대방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고 대화하고 합의한다.

그렇지만 개인이, 또는 소규모 단체나 정당은 ‘국가보안법’과 행정‧입법‧사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아니 청와대도, 여당도, 법원도 눈치를 본다. 언론사도 눈치를 봐야 한다. 따라서 개인들은 얼마나 권력과 주변의 눈치를 봐야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전히 “김일성 만세”를 외치면 ‘또라이’로 취급받거나 검찰의 기소와 판사의 판결로 감옥에 갇힐 수 있다.

도대체 21세기 지구상에서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김태형은 <트라우마 한국사회>(2013 서해문집)에서 이같은 상황을 한국사회 전체가 분단 70년 동안 ‘분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인은 누구나 분단으로 인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거대한 뿌리, 그리고 김일성 만세>는 그것에 관한 일종의 증상보고서다. ‘분단 트라우마’라는 병(病)이 뼛속까지 스며있는 등장인물 각각의 행동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이다.

<거대한 뿌리, 그리고 김일성 만세>는 2013년 12월에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그리고 김일성 만세>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정권을 잡은 지 1년 뒤였다. 한국사회는 온통 ‘종북몰이’로 서슬 퍼런 분위기였고 속으로는 썩어문드러지기 시작했다.

출판사 사장은 처음 이 책을 발견한 뒤 재출간을 노려왔다. 그런데 2018년 불현듯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연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열린 것이다. 절호의 기회였다. 출판사 사장은 개정판 제목을 살짝 부드럽게 하려 했는데, 저자인 김영종 작가의 뜻대로 '김수영'을 빼니 “더 도발적인 느낌”이 되어버렸다.

주인공 은명기는 비평가다. 은명기는 대선 직후 ‘박근혜 부정선거’를 화제 삼아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었다. 공주형은 “진보매체가 좋아하는,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최근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을 찍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친구이고 김병관은 출판사 사장이다.

은명기가 극도로 싫어하는 대상은 ‘매끄러운’ 느낌을 주는 지식인, 예술가들이다. 그것은 “실제로는 울퉁불퉁해야 하는데, ‘매끄러워도 너무 매끄러운’ 로지스틱 함수”, “‘괴기스럽게 매끄러운’ 공주형의 목소리” 그리고 “매끄러운 흑비단 뱀”이다.

매끄러운 것들에 화간 난 은명기는 술김에 ‘김일성 만세’를 외치고 공주형은 그런 은명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때마침 술집에 들어온 뱀장사가 엉겁결에 같이 ‘만세’를 따라 부른다. 그리고 그렇게 외치는 순간 술자리에 함께한 지식인들은 책 표지를 보고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피하고, 외면하며, 위선을 보인다.

이처럼 사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존경을 받던 사진작가도 분단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다. 몇 년 전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에 대한 ‘종북몰이’에 야당과 진보매체, 그리고 소위 지식인들과 ‘좌파’들이 침묵하거나 동조한 것처럼….

진보든 보수든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분단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상상력과 창조적인 것들을 가로막는다. 상식도 공감도 연대도 한 순간에 무너진다. ‘헬조선’에 대한 해체도, ‘적폐세력’ 청산도 여의치 않다.

그런데 주인공인 은명기 역시 ‘분단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술집 손님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보이자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하더니 경찰서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한다.

공주형은 한 술 더 뜬다.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은명기를 보면서 공주형은 자신이 찍은 사진이 대박을 터트릴 ‘문제작’이라며 흐뭇해한다.

<거대한 뿌리, 그리고 김일성 만세>에는 ‘분단 트라우마’에 질척거리는 지식인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김영종 작가는 ‘흑비단 뱀’을 통해 ‘분단 트라우마’가 해체될 가능성을 내비친다. 소설 속 ‘흑비단 뱀’도 분단이 해체되는 때를 알고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서로간의 합의가 과거처럼 쉽게 ‘무효화’되지 않고 있다. 삐걱거리기는, 하지만 북미간, 남북간 대화와 합의 이행이 이어지고 있다. 남북 사이에는 체육교류와 문화교류, 그리고 민간교류도 조금씩 늘어나는 상황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분단체제를 종식시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목전에 와있는 것이다. 분단이 해체되고 평화와 번영의 봄, 통일의 봄이 오고 있다.

하지만 껍데기가 아닌 진정으로 한반도의 분단이 해체되고 평화와 통일이 오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부터 걷어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사는 민중들에게는 ‘거대한 뿌리’가 있기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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