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치인이 노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해결책은 제각각이다. 

촛불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기대로 현장이 들썩인다. 그러나 늘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만 하다. 왜일까? 

노동자의 힘 없이는 제대로 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힘 없이는 촛불 정부의 노동개혁도 힘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종훈이 ‘현장’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택배노동자 노동조합을 결성하다  

2017년 11월2일 고용노동부는 택배기사들에게 노동조합 설립증을 교부했다. 당시 500여 명이 가입한 택배연대노조는 9월부터 고용노동청에 노조설립을 신고하고 설립허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택배기사가 ▲지정된 구역에서 ▲사용자측이 정한 배송절차와 요금에 따라 ▲지정된 화물을 배송하는 등 업무 내용이 사용자측에 의해 결정되는 점을 고려해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했다. 함께 투쟁하고 있던 대리기사노조의 경우 설립허가증이 반려되었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겐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안에서 화물연대로 조직된 택배노동조합과 서비스연맹으로 가입하려는 택배연대노동조합 간의 조직문제가 불거졌다. 이제 결성된 택배연대노동조합의 이런저런 도움 요청이 있었지만, 민주노총의 질서와 체계를 존중해야 할 나로서는 난망한 상황이었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택배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는 함께해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도 어려웠다. 

7시간 분류작업은 공짜노동? 

오래된 경험이지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과 회사측과 교섭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회사측은 합법적으로 결성되었다고 해도 노동조합을 쉽게 인정하고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는 계약관계가 복잡해 본사가 교섭에 자발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한번은 진통이 있을 것이라 예견되었다. 

6월24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택배 분류작업을 ‘공짜노동’으로 규정하고 분류작업을 거부하는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최장 7시간에 달하는 분류작업이 배송료에 포함되는지가 논란이 되어왔다.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운송료에 포함 안 된 ‘공짜노동’이라며 거부하자 본사와 대리점 연합회에서는 대체배송으로 맞섰다. 조합원들의 분류작업 거부를 계약위반으로 간주하고 본사가 직접 대체인력을 써서 배송을 시작한 것이다. 

매일같이 현장에서는 마찰이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조합원이 많은 부산, 경남, 울산의 경우는 택배 대란이 일어났다. 대체배송 자체가 계약위반이라며 노동조합에서는 대체배송을 담당하는 본사 직원들을 아파트 앞, 도롯가에서 막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해 조합원에게 테이저건을 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택배 대란을 막기 위해 나서다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택배 사태가 장기화되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기 힘든 상황이었다. 회사측도 대체배송비용과 계약해지가 속출하면서 피해액이 커져갔고, 노동자들도 운임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해 생계문제가 생겼다. 3주차에 접어들자 대리점연합회와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파업투쟁을 벌인다. 

파업 이틀째, 파국을 막아야겠다는 심정으로 CJ대한통운 차동호 부사장, 김치홍 상무를 직접 만났다. 다행히도 CJ대한통운도 현 사태를 해결해야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물류산업 전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부사장은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사회적 문제로 되는 택배노동자의 처우문제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사업장에서는 분류작업에 대한 시설투자와 자동화로 작업시간을 상당히 단축했다면서, 앞으로도 분류작업 개선을 위해서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사업주의 입장에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CJ대한통운측의 이야기도 일정 이해되었다. 

두 시간 가까이 택배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해도 깊어졌다. 그러나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는 현 사태는 일단 정리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택배노조는 현장에 복귀하고 회사측은 대체배송을 중단할 것 ▲배송시간 등 노조에서 제기한 문제는 앞으로 노사간 신의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논의할 것, 두 가지를 함께 풀어가자고 제안했다. 회사쪽에서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중재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CJ대한통운측과의 합의는 당사자간의 합의는 아니었다. 나는 노동조합을 설득해 현장에 복귀해 대화로 해결하도록 설득해야 했고, 부사장은 대리점연합회에 대체배송 중단과 조합원들에게 물량을 줄 것을 요청해야 했다. 

노동조합은 합의안을 수용했지만, 대리점연합회는 당사자가 아닌데 무슨 권한으로 합의를 한 거냐며 반발했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물량을 줄 수 없다며 다음날까지 대체배송은 중단되지 않았다. 또 하루가 그렇게 지나고 우여곡절 끝에 택배 대란은 일단락되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투쟁 과정에서 느꼈지만 택배노동자들에겐 유독 많은 국민들이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 택배를 받아본 사람은 그 마음을 안다. 우리는 저녁 9시 이후까지 택배를 나르고,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더운 날에는 땀에 젖으며 일하는 택배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번 중재로 급한 불은 껐지만, 분류작업과 배송시간 등 노사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일들은 그대로 남았다. 노사가 신의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대화에 임하기로 한 만큼 조속히 해결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본사와 대리점연합회가 택배노조를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대화하기를 바란다. 회사가 망하라는 노동자는 없는 법이다. 신의를 전제로 이야기 나눈다면 노동조합도 충분히 회사 입장을 이해할 것이다. 

물론 택배노동자의 처우개선 문제는 노사에게만 맡겨질 문제가 아니다. 물류산업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과 투자도 필요하다. 이 부분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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