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 경제사상과 시카고학파 경제사상의 평화공존?

국내의 소득주도 성장론과 혁신성장론에는 민간 대기업 및 대기업집단의 실물투자‧혁신투자‧일 자리 창출자 역할이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고 있다.

국내의 소득주도성장론 이론가‧학자들은 "한국에서는 주주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단기성과주의(short-termism)의 폐해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대기업들에서 '실물투자의 부진' 현상,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1. 
주상영 교수 등은 한국경제의 총수요에서 부족한 분야는 수출(순수출)과 투자‧실물투자‧고정자산 형성이 아니라, 오직 소비‧개인소비 분야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한국경제에서 실물투자는 충분하다"고 주장하면서 대기업‧재벌그룹의 기업지배구조 개혁 방향으로 '주주민주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지난 8년간의 부동산‧건설 거품을 제외할 때(실제 그 거품이 꺼지고 있는데), 과연 실물투자(고정자산의 일부인 건물건축도 일부 포함)가 한국경제에서 충분할까? 더구나 4대 재벌그룹을 제외한 대다수 대기업‧상장기업들에서 설비투자‧R&D투자‧미래성장투자가 지극히 부진한 게 현실인데, 이런 모습은 눈에 안 들어오는 걸까? 

2. 
나아가 주상영 교수 등은 "상장 대기업들이 현금배당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그래야만 주식 투자자(= 직장인?)들의 소득이 더욱 늘어나고, 그래서 소비‧내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조금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외국인 투자자를 제외할 때, 국내 주식투자 현금배당 액수의 95%가 전 인구의 1%도 안되는 최상위 부유층‧투자자들에게 귀속된다. 그리고 이들은 그 현금배당을 소비‧내수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소비+또 다른 재테크'에 지출한다. 

3. 
게다가 주상영 교수 등은 "주주민주주의‧주주자본주의 방향의 재벌개혁‧경제민주화를 더욱 강
화할 경우 자본생산성(기업‧투자 수익성)이 높아지는 등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미국‧영국발 세계 금융위기 발발 이후 시카고학파의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은 매우 신랄하게 비판받았다. 그런데 한국의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그 '효율적 시장 가설'을 논거로 재벌개혁‧경제민주화와 관치금융 해체‧경제민주화를 주장한다. 실제 그들이 쓴 논문을 보면 재벌‧금융 이슈에 관한한 시카고학파 저자들의 논문을 주로 인용한다. 

산업은행‧국책은행을 통한 부실 대기업(대우조선, 한국GM 등) 구조조정을 '관치금융'이라고 비판하면서, "대기업 구조조정은 '시장원리'[= 자유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래야만 '자본생산성이 높아지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시장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4. 
주상영 교수 등은 한국 경제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실물투자의 부진'(총수요의 부진 원인 중 하나)이 아니라, '실물투자의 비효율성'(재벌그룹 총수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인한)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재벌그룹 내에서의 일감 몰아주기(편법적 경영권 상속 수단)를 처벌해야 하는 것은 맞다. 대중소 기업간 상생 등의 정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기업‧투자의 효율성‧수익성'을 높이면 한국경제가 직면한 제반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는가? 

보다 근본적 경제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제적 버전의 오리지널 소득‧임금주도성장론은 국내의 소득주도성장론과 사뭇 다르다. 나의 주장은 (그리고 장하준의 그것 역시)국제 버전의 오리지널 소득‧임금주도성장론과 부합한다. 

여기서는 주주자본주의, 즉 금융주도 자본주의(카지노 자본주의)와 그 일환인 단기수익주의(short-termism), 그로 인한 실물투자‧혁신투자 침체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인식된다. 

국제적 임금주도‧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의 하나로 주주자본주의‧주주민주주의를 지적하면서, 월스트리트(Wall-Street)자본주의, 즉 주주자본주의로 인해 민간 기업들에서 실물투자‧혁신투자와 좋은 일자리 투자가 약화되었고, 그것이 저임금 일자리의 만연에 기여하였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들은 ‘글로벌 뉴딜(Global New Deal)’ 차원에서 주주자본주의를 포함하는 금융주도 자본주의에 대한 국제적 공동 규제를 이루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국제적 임금‧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수미일관된' 케인스학파이다. 오리지널 케인스의 관점이 모든 측면에 녹아있다. 스티글리츠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이 입장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이에 반해 국내의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의 다수는 (1) 임금과 사회복지(개인의 소득‧소비)+국가재정에 관해 말할 때는 케인스 학파이고, (2) 기업+금융(투자)에 대해 말할 때는 시카고학파이다. 

국내 버전 소득주도성장론 속에서는 케인스 경제사상과 시카고학파 경제사상이 평화공존하고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런 자가당착-자기모순적인 경제사상을 가지고 어떻게 한국경제가 직면한 심각한 현실적 난관들을 돌파할 수 있을까? 

기업+금융(투자)에 관해서도 (시카고학파의 이론‧관점이 아니라)오리지널 케인스 사상의 입장에 서서 한국 재벌‧대기업+금융‧투자의 문제를 푸는 해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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