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장르 넘어서 문화콘텐츠로 부활하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사랑했지만’, ‘변해가네’, ‘그날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거리에서’,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신기하게도 그의 노래는 제목만 모아놓아도 문장이 되고 이야기가 나온다. 가사만 봐도 노래가 들리고 표정이 보인다. 아무래도 인간 보편의 정서가 그의 노래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의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을 때도 TV에 자주 등장하는 가수들처럼 떠들썩하지 않았다. 들으면 언제나 좋고 우연히 들으면 더 좋은 그런 노래였다. 아픈 사람에게는 위로를 주고 슬픈 사람에게는 힘이 됐으며 우울한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게 해줬다. 그의 노래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용히 스며드는 노래였지만 그가 떠났을 때 그를 사랑하는 대중들의 충격은 제법 컸다.

그의 부재는 영화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으로 분한 송강호 대사를 통해서도 아프게 다가왔다. 그의 노래는 비민주적이었던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의 숨구멍이었다. 그는 연합동아리 노래패인 ‘연합메아리’에서 노래를 불렀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간판 가수로도 활약했다. 시대의 부조리에 맞선 각종 집회현장에서 노래 했다. 87년 6월 대학로에서 그가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노래와 삶, 기쁨과 슬픔, 자유와 외로움이 진득하게 녹아들어 있는 그의 목소리는 ‘슬픈데 힐링이 되고 기쁘기에 더 없이 기쁜 그런 느낌’을 줬다. 20세기, 세기말의 정서를 가진 그는 떠났지만, 21세기 초 대한민국에는 그의 노래와 정서가 문화콘텐츠로 조용히 떠오르고 있다. 

 

* 전시 -<김광석을보다展; 만나다·듣다·그리다>

김광석이 떠난 지 20주기를 맞아 기획된 <김광석을보다展; 만나다·듣다·그리다>는 김광석의 발자취를 추억하는 전시다. 지난 4월1일부터 이달 26일까지 3개월간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 뮤지션을 소재로 한 최초의 음악전시인 <김광석을보다展; 만나다·듣다·그리다>는 총 8개 섹션으로 나눠져 있다. 음악의 시각화라는 독특한 발상이 포인트인 이 전시는 김광석 음악을 연대기 순으로 풀어내고 그의 꿈과 삶,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난 악보, 일기, 5집 앨범의 트랙을 짜던 메모, 통기타 등 유품을 만날 수 있으며 그의 노래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도 볼 수 있다.

신화로 남은 1001번째 콘서트실과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청음실, 그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오디오 가이드와 김광석을 기리는 많은 아티스트들과 팬들이 헌정한 작품 등 김광석과의 추억거리들이 준비돼 있다.

전시 막바지 지점에는 김광석이 운영했던 ‘고리카페’가 그대로 재현돼 있으며, 노래하는 김광석 모형이 생전의 그를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석 달 동안 3만 여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간 <김광석을보다展; 만나다·듣다·그리다>는 지방 순회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그의 실제 목소리가 전시 관람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매주 금요일, 김광석의 벗들이 이야기하며 노래하는 '토크콘서트'도 진행되는 등 김광석이라는 대중가수를 전시콘텐츠화 했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 뮤지컬 -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날들, 디셈버, 그여름 동물원

 

김광석은 뮤지컬 소재로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 그의 주옥같은 노래와 그가 부른 노래 가사는 최고의 스토리텔링을 끌어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또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교원노조 활동으로 해직된 아버지와 군대에서 유명을 달리한 형, 80년대 노래패 활동 등등 현대역사의 흐름과 시대상들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고향인 대구에서 초연하고 서울 대학로로 진출해 ‘김광석 붐’을 일으킨 주역, ‘故 김광석이 부른 명곡으로 만든 최초의 어쿠스틱 뮤지컬’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소극장용 주크박스 뮤지컬의 모범사례가 됐다. 아울러 대형기획사 작품으로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던 뮤지컬 ‘그날들’과 아이돌스타인 김준수를 전면에 내세우고 박건형 등이 주연한 뮤지컬 ‘디셈버’, 김광석과 동물원의 활동을 배경으로 한 ‘그여름, 동물원’ 등도 있다. 한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짝뚱 뮤지컬까지 나오고 타이틀 상표등록과 저작권문제 등 소란스런 부분이 있을 만큼 김광석과 그의 노래는 뮤지컬계에서는 나름의 블루오션이다.

 

* 김광석으로 콘텐츠 거리 조성 -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김광석거리

2010년 대구 방천시장에는 ‘김광석 거리'(행정명 : 김광석다시그리기길)가 생겼다. 재래시장 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방천시장이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예술과의 결합을 추진했었는데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은 두 번째 프로젝트였다. 여러 예술가들이 방천시장 활성화에 대해 고민하던 중, 대봉동에서 잠시 살았던 김광석을 기억해낸 한 사람의 제안에 의해 미술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김광석 거리로 명명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그저 여느 벽화골목과 똑같은 거리였는데 김광석을 좋아하던 근처 식당주인이 식당 메뉴를 김광석 노래로 정하고 늘 그의 노래를 틀면서 김광석거리 마니아들이 속속 생겼고 소위 ’아는 사람들‘만의 명소가 됐다.

그러던 중 2012년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김광석거리 끝자리에 있는 떼아트르 분도에서 초연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연 기획사인 LP스토리(대표 이금구)는 서울에서 시작하려던 당초 계획을 접고 대구 초연을 통해 ‘가수 김광석’의 발자취를 뮤지컬의 정체성과 결합시킨다는 생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구 공연을 기획했다.

당시 대구시와 대구 중구청, 대구의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김광석거리와 김광석뮤지컬을 대구의 문화콘텐츠화 하자고 제안했으나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극중에 김광석거리의 영상을 삽입하고 김광석 추억을 끄집어냄으로써 ‘김광석거리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이제 김광석거리는 연인원 84만 명이 오는 대표적인 관광거리로 거듭났다.

하지만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김광석거리는 점점 상업화에 노출되고 있다. 방천시장 상인들과 초창기부터 거리를 조성하는데 앞장서온 예술가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형편이며 소비적인 상점들만 거리를 메우고 있어 김광석이 추구해온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의 지역지에 기고한 한 칼럼에는 예술거리로 조성된 김광석거리의 풍경을 그린 대목이 나오는데 지금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어떤 상점에는 기타가 걸려있고, 어떤 상점에는 화구들이 진열돼 있고, 어떤 상점은 갤러리를 겸한 화실이 되고, 어떤 상점은 김광석의 캐릭터로 만든 아기자기 기념품들이 가득하고, 작은 소품을 직접 배우고 만들어가기도 하는 목공소도 있고, 거리좌판에는 직접 만든 수공예품이 즐비하고, 어떤 곳에서는 수제쿠키를 굽고, 어떤 곳에서는 김광석 같은 가수지망생들이 노래를 배우고, 물건창고를 개조해 만든 소극장에서는 김광석뮤지컬을 연습하고..., 그야말로 방천시장이 예술시장, 문화시장(culture fair, culture market)으로 변모하는 상상이지요.’ 칼럼 속의 김광석거리는 정말 요원한 걸까?

 

* 홀로그램 - ‘청춘 그 빛나는 김광석’

미래창조과학부와 대구시가 고(故) 김광석의 생전 모습을 3차원 입체영상인 홀로그램으로 재현해 만든 콘텐츠다.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노래하는 생전의 김광석 그대로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3곡이 불린다. 지난 6월 10일 대구 대봉동 방천시장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끝에 있는 떼아뜨르 분도에서는 김광석 노래공연이 막을 올렸다. 실제의 김광석이 아닌 홀로그램 김광석이다. 타이틀은 ‘청춘, 그 빛나는 김광석.’

'김광석 홀로그램 콘서트’ 제작 주관처인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은 김광석이 살아온 듯 감동을 느낀다며 많은 사람들이 홀로그램 공연을 보기 위해 김광석거리를 찾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구시는 매주 목·금요일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시간 마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1시간 마다 홀로그램 공연 ‘청춘 그 빛나는 김광석’ 을 무료로 운영한다.

이처럼 사후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김광석과 그의 노래가 문화콘텐츠로 부상하는 이유에 대해 한 문화콘텐츠 전문가는 “외국에도 비틀즈나 존 레논,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잭슨, 아바 등을 문화콘텐츠로 활용했고 우리나라에도 가수 배호와 작곡가 이영훈 등이 문화콘텐츠로 잠시 선보이기도 했으나 김광석만큼은 아니었다”며 김광석이 특히 문화콘텐츠로 부상되는 것은 "그의 노래가 주는 보편적 정서도 있겠지만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지내온 사람들이 콘텐츠를 구매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세대인 40~50대로, 어느 정도 경제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상업적 잣대에서 개발되는 문화콘텐츠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며 김광석의 노래와 정신을 살리는 초심으로 접근한다면 그 수명은 오래 지속될 거라고 말했다.

20세기말 90년대 사람들을 노래로 다독여준 김광석. 그와 그의 노래가 21세기 초, 복잡다단한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문화콘텐츠로 돌아온 것은 상당히 반갑고 기쁘다. 하지만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꿈꾸던 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콘텐츠는 지양했으면 한다. 그가 떠난 후에도 그의 빈자리는 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채우고 있으니. 그의 노래는 해탈이었고 그래서 지금 시대와 장르를 넘어 문화콘텐츠로 부활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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