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한반도 전문가… “사드, 북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견제용”

알렉산더 워렌쵸프(Alexander Vorontsov) 러시아군사과학아카데미 교수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다. 지난 1979년 김일성종합대학에 교환학생으로 평양에 머물렀고, 2002년엔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에서 제2비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또 1987년엔 통역사로 한국을 방문해 러시아의 88서울올림픽 참가 문제를 결정하는데 외교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오랜 세월 남과 북을 오가며 외교 일선에서도 활동해 온 그가 지난 14~17일 진행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를 18일 오후 만났다.[편집자]
▲알렉산더 워렌쵸프(Alexander Vorontsov) 러시아군사과학아카데미 교수를 지난 19일 고려대 생활도서관에서 만났다.

“미국의 상시적인 핵위협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고,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대화하지 않으면서 핵억지력 강화가 (북한의)유일한 생존전략이 됐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북한의 현재 모습과 체제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북한 정권교체, 또는 북한을 지도 위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정책으로 가고 있다. 미국이 이 정책을 버리지 않는 한 코리아 평화체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이 아니라 코리아로 번역해달라고 강조한 워렌쵸프 교수는 우리말에 능통했지만 꼭 통역을 사용했다. 분단 코리아의 현실을 감안해 남과 북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중간 중간 통역을 우리말로 교정하기도 했다.

“코리아가 주변국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만, 평화와 통일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국 코리아 자신”이라고 강조한 워렌쵸프 교수. 그와 인터뷰는 러시아가 본 코리아가 아니라 코리아 스스로 코리아의 운명문제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 역사학자라고 들었다. 코리아와 러시아의 관계사를 간략히 짚어 달라.

“러시아와 코리아의 첫 국가관계는 1884년 러시아공사관으로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하면서 부터다. 이후 러시아는 단 한번도 코리아에 해를 가한 적이 없다. 1866년 프랑스는 병인양요를, 1871년 미국은 신미양요를 일으켰다. 중국과 일본이 코리아를 서로 지배하기 위해 일으킨 청일전쟁 때도 러시아는 참전하지 않았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은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지만, 러시아군은 약속대로 3년 후 철군했다.”

- 한국에선 해방 직후 소련이 북한에 식민정권을 세웠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다.

“완전히 왜곡됐다. 1945년 해방전후 시기 이북지역에 남아있는 일본군의 계속적인 저항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당시 소련)군은 1500여명이나 희생되었다. 얄타회담과 포츠담선언에도 이 내용은 기록돼 있다. 38선 이북에 세워진 사회주의 정권은 북코리아 인민들의 자주적인 의사가 반영된 정부이다. 러시아는 관여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정권과 체제가 많이 바뀌었지만 주변국들이 스스로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러시아의)국익이라는 것은 일관된 외교정책이다.”

-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는 어디인가.

“미국이다. 1868년 제네럴셔먼호가 대동강으로 침범했고, 100년 후인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이 있었다. 코리아전쟁(6.25사변)에도 참전했다. 이처럼 코리아와 미국의 역사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였다. 지금도 남 코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군사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나라의 동맹도 군사주권을 넘겨준 동맹은 없다. 그래서 남 코리아가 자주적인 국가인지 의심스럽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다른 나라에게 있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문제가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보는 이유다.”

- 코리아의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입장은 어떻게 보는지.

"수사적(레토릭)으로는 모두 통일을 바란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많다. 일본은 코리아의 분단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다. 38선은 코리아가 아니라 전범국가인 일본에 그어졌어야 했다. 코리아 전쟁 때는 군수물자를 팔아 일본경제를 완전히 일으켰다. 지금도 북 코리아를 핑계로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다. 미국은 남 코리아를 군사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최근 사드 배치 논란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북 코리아의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남 코리아에 사드 배치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드의 능력은 코리아반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북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가스 송유관이 코리아반도까지 연결된다면 큰 국익이 된다."

- 북한 핵보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나.

"NPT(핵확산금지조약)을 체결한 당사국인 러시아는 원칙적으로 북 코리아의 핵보유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북 코리아가 핵무기를 가지려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핵보유는 북 코리아의 안전과 직결돼있다. 미국은 상시적으로 북 코리아를 핵으로 위협해 왔다. 핵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은 핵보유밖에 없다. 안보가 불안한 북 코리아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오바마 행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대화없는 제재만 가하고 있다. 따라서 북 코리아의 핵 억지력은 (그들 입장에서)유일한 생존전략이다."

-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화협정은 53년 체결한 정전협정의 종전선언이 포함됨으로 러시아가 당사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평화체제를 만드는데 러시아가 배제될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남 코리아도 빠져야 한다. 과거의 구도를 생각하기보다는 현실에 맞는 합리적인 틀을 짤 필요가 있다. 코리아의 군사적 충돌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 코리아다. 그러나 평화체제를 구조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주변국 즉 6자(남, 북, 미, 중, 러, 일) 틀이 있어야 한다. 북미간에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6자가 보장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가장 핵심적으로는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북 코리아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북 코리아의 현재 모습과 체제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현재 미국이 세계에 펼치고 있는 정책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적대국가의 정권교체를 추진하고, 안될 경우 지도 위에서 지워버린다. 미국의 정치권에서 적대정책을 폐기하고 북 코리아와 대화를 통한 공존전략으로 나간다면 당장이라도 평화체제는 가능하다고 본다.”

-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뒤 취해진 UN의 대북재제에 러시아도 참여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공위성)은 기술적인 차원과 정치적인 차원이 분리되기 때문에, 이것은 딜레마다. 모든 나라가 자유로운 우주개발 권리가 국제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북 코리아에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도 이것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것이 핵탄두 운반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러시아는 지난 2월 북 코리아의 인공위성을 미사일이라고 표현했다. 그 전까지는 인공위성이라고 했다. 이것에 대해 러시아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되었고, 나 역시 비판했다. 웹사이트에서 나중에 (인공위성으로)수정했다. 하지만 이것은 비공식으로 남아있다. 현재 러시아 정부는 핵실험과 연동하여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 조선노동당 7차 당대회를 지켜본 소감은.

“역사적으로는 36년만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 북 코리아는 당대회를 통해 좀 더 전통적인 정치체제로 돌아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국가기관은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군은 국방, 당은 정치, 국가는 경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표현을 통해 정치기구로서 당의 역할을 되살렸다. 과거 군을 강조한 선군정치에서 좀 더 균형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당대회가 가능 하다고 판단한 것 자체가 과거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선군정치는 미국의 군사 위협에 대항해 군대의 역할을 높인 특수한 정치형태로 본다면, 지금은 좀더 정상적인 정치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보는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선언이라기보다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표현되는 북 코리아의 현실이 반영된 자신감으로 보인다.”

- 최근에도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아는데 직접 본 북한의 모습은 어떤지.

"과거 러시아도 그랬는데, 북 코리아는 지금까지 서방언론에 의해 악마화돼 왔다. 실제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당시 평양 시내에 불이 켜진 곳은 주체사상탑과 금수산기념궁전뿐이었다. 2000년 이후 발전을 거듭해 왔고, 최근 ‘건설붐’이 일면서 엄청난 건물들이 들어섰다. 거리는 태양광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 김책공업대 교수아파트는 4인가족 62평을 무상으로 공급했다. 초등학생들이 테블릿PC로 수업을 받고, 스텐포드대 학자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것도 보았다. 토지 경작면적이 적어 식량을 완전히 자급자족하지는 못하지만 부족분은 수입을 통해 ‘먹는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 7차 당대회때 북을 처음 방문한 러시아 기자는 실제 평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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