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중동 정세분석] 1. 미국 대 러시아, 중동에서 지위가 바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핵합의 파기로 중동 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일각에선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내놓고 있다. 현 중동 정세의 원인과 본질, 그리고 앞으로의 추이를 전망해 보는 손정목 민플러스 편집운영위원의 심층 분석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차례] 1. 미국 대 러시아, 중동에서 지위가 바뀌다, 2. 이란핵합의 파기, 미국패권의 추락이다, 3. 통합과 분열의 마지막 고비 맞은 시리아전쟁 

중동의 혼란과 전쟁위험의 고조

7년을 끌어온 시리아전쟁이 IS테러집단의 패퇴로 종결돼 가는 상황에서 중동은 안정을 찾기는커녕 외려 혼란과 더 큰 전쟁위험이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거짓 선전을 명분으로 영국, 프랑스와 함께 시리아를 폭격하더니 시리아 북부 쿠르드 지역 인근에 병력과 장비를 확충하고 있다. 또 지난 8일 국제적 합의였던 이란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 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 핵합의의 근간을 흔들어 이란과의 긴장을 크게 고조시켰다. 그리고 14일 동부 알쿠드스(예루살렘)로 미 대사관 이전을 강행해 팔레스타인을 결정적으로 자극했고, 이스라엘은 이들에 대한 야만적인 대규모 학살을 자행해 중동정세 전반을 심대한 위기국면으로 몰아넣었다. 이같은 긴장고조에 안토니오 쿠테헤스 (Antonio Guterres) 유엔(UN) 사무총장은 영국 BBC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중동 발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이 사상 최고에 달했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현재 중동전역을 혼란과 전쟁위험으로 몰아가는 주된 세력은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폭적 지지에 의거해 팔레스타인 민중을 야수적으로 학살하고, 시리아의 주요 시설을 여러 차례 공격한 것은 물론, 시리아 내 이란군을 살상해 전쟁 위험을 의도적으로 높이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추동으로 이스라엘과 화해를 도모하고 시리아 파병을 추진하는 한편 예멘을 침공해 3년째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화해를 추동해 시리아, 이란과의 대결전선을 강화하고 있다.

이렇듯 중동전역이 불가마 끓듯 폭발의 증기를 뿜어내게 된 직접적 요인은 ▲미국의 이란핵합의 이탈 ▲시리아 영토 내 불법적인 미국, 프랑스군 등 외국군대 및 군사장비의 확대배치 ▲미국의 의도적인 알쿠드스(예루살렘)로의 대사관 이전이다. 모두 미국의 전략 실행의 결과다. 세 가지 요인은 각각 분리된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얽혀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내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America First)’세력과 기존의 미국 패권을 추구하는 군산복합체 중심 ‘세계주의(Globalism)’세력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대결, 그리고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이해의 일치와 대립,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의 야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동 정세의 악화를 막는 요인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이란, 터키, 시리아의 연대강화다. 러시아는 시리아 평화회담을 주도하고, 이란은 핵합의 위기와 이스라엘의 도발에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해 사태 악화를 막고 있다. 중동의 자주와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들의 힘이 강해져 더 큰 전쟁으로 비화를 적어도 현재까지는 막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동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미국과 러시아의 중동에서 지위와 역할, 지향과 요구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 지난 10일(현지시각)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상공으로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다. 사진은 시리아 정부가 운영하는 시리아중앙군미디어(SCMM)이 제공했다.[사진 : 뉴시스]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종언

지난 3월 미국의 대표적 외교정책연구기관인 미외교협회(CFR)의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 회장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죽음(Liberal World Order, R.I.P.)”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전후 70년간 미국주도 ‘자유주의 세계질서’ 형성과 미국 외교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대표적 주류세력인 록펠러 계열의 싱크탱크가 이제 자신들이 만든 미국 패권체제가 끝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발표의 핵심은 ‘전후 70년간 세계를 지탱해온 3개의 구성요소―자유주의, 보편주의, 질서 자체의 보존―가 소련 붕괴 후 25년 만에 근본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유럽 ​​등에서의 민족주의 부활과 러시아, 중국, 터키 등에서의 권위주의 정권의 강화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이었던 질서가 무너지고, 각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가진 질서가 병존하는(다극형의) 세계 체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TPP(환태형양경제공동체협정) 이탈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이란핵합의 이탈 위협, 일방적인 철강‧알루미늄 관세부과를 비롯한 무역전쟁 강화, 나토 및 여타 동맹관계의 근본적 의문 제기, 파리기후협정 탈퇴 등 미국 우선주의가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약화시키고 있다.’ ‘70년 이상 수행했던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는 미국의 결정은 이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해와 수단의 부족으로 그 자체로 생존할 수 없다. 그 결과 세계는 덜 자유롭고, 덜 번영되고, 덜 평화적으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미국 주류세력이 내놓은 자국 패권의 임종을 알리는 선언이다. 또 어쩔 수없이 세계 각 지역에서 발흥하는 새로운 지역질서를 미국이 통제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비문(悲文)이기도 하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1년 이상에 걸쳐 보여준 일련의 국제적 합의, 협정으로 부터의 이탈과 동맹관계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때로 거칠고 즉흥적으로 보이고, 또 한편으론 호전적으로 보여도 실상은 미국주도 ‘패권질서’의 포기라고 미국 주류세력은 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거듭 “수십 년간 세계의 치안을 유지하는데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기를 점점 더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의 역대 정권이 세계질서 유지를 위해 과도한 힘과 비용을 사용해 오히려 미국 자체가 약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이를 거둬들여 미국의 산업과 군사력을 다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존 국제적 관례나 규범, 협정 등은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또 다른 미국 예외주의이자 보호주의로의 귀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란핵합의 이탈이나 알쿠드스로 대사관 이전 등은 미국이 중동 문제의 조정자, 중재자로서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지난 15일 사입 에레카트 팔레스타인 수석협상가는 AP통신에 “미국은 더 이상 파트너나 중개인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구시대를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있다. 미국 내에는 여전히 미국 주도의 패권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강하게 남아있다.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다. 이들은 짧게는 부시, 오바마 정부 16년간 권력의 중추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 미국 패권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 각지의 긴장을 고조시켜 무기를 팔고, 이권을 챙겨온 세력이다. 이들이 중심이 돼 지난 1월 발표한 2018년 미국국방전략은 기존의 반테러전이 중심이 아니라 러시아, 중국을 주대상으로 한 장기전쟁전략(long term strategy)이다. 이에 의거한 중동전략은 러시아,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시리아에서 반IS 테러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중동 신냉전 전략으로 항구적인 갈등과 전쟁, 미군의 장기주둔전략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철군을 선언하자 군산복합체 세력은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거짓선전을 조작해 이해를 같이하는 영국, 프랑스군과 함께 시리아에 대한 최초의 연합군사공격을 가해 미군철수를 연기시켰다.

이렇듯 중동정세를 혼란과 긴장고조로 이끌고 있는 주된 요인은 미국이고, 이들 양대 지배세력의 엇갈린 이해관계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란 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의 지역 대결구도를 완화하는 뛰어난 조정능력을 보여주면서 더 큰 전쟁을 막는 중동의 중재자, 조정자로서 역할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 중동 안정화의 중재자

현재 중동 정세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의 공식 요청으로 지난 2015년 9월 시리아전쟁에 참전해 불과 1년여 만에 발흥하던 IS를 꺾고 결정적 승기를 잡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듬해 10월 시리아 최대도시인 알레포 전투의 승리는 시리아 전쟁의 형세를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이 장면은 미국이 5년간 IS를 물리친다고 불법적으로 시리아 영토에 들어와 전쟁을 벌였지만 오히려 IS세력이 더 확대 강화된 것과 대조를 이뤘다. 세계는 누가 진정 IS를 물리치려 했는지 알게 됐다.

아울러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6년 7월 발생한 터키의 친미쿠데타를 막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어 터키와 극적으로 화해했다. 이후 러시아 주도로 시리아평화회담인 아스타나(Astana) 회담을 이란, 터키와 함께 개최해 시리아 전쟁 종결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이 회담은 시리아 안에 안전지대를 설치해 IS 등 테러집단을 제외한 반군의 퇴로를 열어줘 영토 회복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국정연설에서 최신의 핵무기를 공개해 러시아 적대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 등 NATO에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어떤 미사일방어망(MD)도 뚫는다는 극초음속 미사일 ‘아방가드르‘,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맛’, 핵추진 순항미사일, 핵추진 드론 등 최첨단 핵무기 공개는 서방과 중동 내 친미국가들이 가슴을 졸이게 했다. 이미 시리아 전쟁에서 보여준 뛰어난 첨단무력에 더해진 이번 발표로 서방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렇듯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가 보인 시리아 등 중동 각국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태도는 친미일변도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이 지난해 10월 사상 처음 러시아를 방문하게 추동했고, 이스라엘의 벤자민 네탄야후 총리 역시 지난 1월에 이어 이달 9일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시리아,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한 이스라엘의 입장과 러시아의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는 러시아가 지금의 중동 정세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중동 정세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이란, 터키, 시리아, 레바논 헤즈블라 연합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연합세력의 대결이 양대 축을 이뤄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영국, 프랑스는 시리아 문제에 대해선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지만 이란핵합의 파기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자체 석유와 가스 수출에 대항하는 입장이고, 이스라엘은 이란, 시리아와 대결에서 어떡해서든 러시아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그 와중에 터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은 중동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더욱 위태롭게 만들 전망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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