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삼성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 촉구

▲ 사진 : 뉴시스

“지난 11년 동안 삼성에서 320명의 직업병 피해 제보자가 있었고,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삼성은 산재 인정 소송에서 유해물질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법에 의해 모든 사업장에서 공개하고 있는 작업환경 측정결과를 영업비밀, 국가기밀로 둔갑시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6일 삼성 전 부문 계열사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조하기 운동’ 돌입을 선포하면서 “삼성이 저지른 온갖 범죄와 잘못을 바로잡는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삼성의 범죄와 잘못 가운데 삼성에서 발생한 ‘직업병’에도 주목했다. 

최근 6000여 건에 달하는 노조파괴 문건이 발견돼 삼성그룹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이 ‘산업재해’ 판정에 필요한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더 큰 지탄을 받고 있다.

삼성, ‘작업환경 측정결과’ 공개 거부 

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신청하려면 노동자 또는 유족이 ‘질병과 업무의 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를 요청할 때마다 삼성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해 왔다. 

‘작업환경 측정(산업안전보건법 제2조5항)’이란 작업환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해당 근로자 또는 작업장에 대해 사업주가 측정계획을 수립한 뒤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한 노동자의 유족이 삼성에 작업환경 측정결과 정보공개를 요청하자 삼성이 거부했고 이에 유족은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은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산업재해 노동자나 유족,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 나아가 사업장 인근 지역주민의 안전권과 보건권을 위해 필요한 정보이므로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삼성은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국민권익위는 지난 3월27일 이를 받아들였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마찬가지. 산자부는 ‘보고서 내용에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됐는지 확인해 달라’는 삼성의 요청에 지난달 17일 ‘보고서에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됐다’고 결정했다. 

“‘영업비밀’ ‘국가 핵심기술’ 들어있지 않다”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116명은 8일 성명을 내 “삼성이 주장하는 ‘영업비밀’, ‘국가 핵심기술’은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 들어있지 않으며, 이것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직업환경의학과는 1995년부터 시작된 근로자건강진단, 사업장 보건관리, 근로자건강센터와 업무상 질병 판정, 환경성 질환 평가 등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분과다. 이들은 노동자 안전권 보장과 업무로 인한 질병 예방을 위해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기본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의사회는 먼저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건강의 보호를 위한 알권리가 존중돼야 한다”며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는, 사업주가 작업환경의 문제를 점검·개선하는 과정의 기록이며, 고용노동부가 이를 점검·지도하기 위한 자료인 동시에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질, 노출위험, 관리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이들은 “작업환경 측정을 실시하는 목적이 ‘유해인자로부터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라며 “그 측정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고 고용노동부에 보고해야 하며 노동자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말하는 ‘고유한 영업비밀’, 산자부가 수용한 ‘국가 핵심기술’이 보고서에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의사회는 “보고서에는 고유한 생산기술의 비밀이라 할 만한 설비의 모델명이나 숫자, 구체적인 배치와 공정의 흐름, 자동화 수준 등을 알 수 있는 정보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하는 한편 “작업환경 측정은 이미 외부업체에 의해 진행돼, 삼성이 아닌 다른 전문가에게 작업장의 배치와 화학물질의 내용, 사용량 등이 공개돼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삼성 이외의 많은 기업이 이 보고서 전체를 노동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면서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삼성의 보고서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또 “영업비밀,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이라 해도 유해한 요인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노동자 자신과 지역사회 주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재차 강조하며 기업의 역할을 언급했다. 의사회는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의 일부 내용이 영업비밀이라면, 기업이 영업비밀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입증하고, 기밀로 유지할 경우에도 노동자나 시민의 안전보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기업 스스로 증명하거나, 발생 가능한 문제를 예측하고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끝으로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기업활동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소홀히 하고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 이들은 “사업주가 정보제공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경우 해당 노동자의 산재를 승인하도록 해야 하며, 산업안전보건법 등 제도개선을 통해 영업비밀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강화하고, 산재 입증책임을 노동자가 갖는 산재보상보험제도 역시 개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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