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1일 오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회사의 인적 구조조정 계획 철회와 울산시의 적극적인 중재를 촉구하며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조선업이 나아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25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오늘 현대중공업노조는 이와 관련해 임시대의원대회를 연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5일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군산을 비롯해 울산동구 등 6개 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한 가운데 나온 터라 의혹마저 제기된다. STX노동조합이 사실상 500여명 해고에 준하는 가혹한 자구책을 수용하고서야 겨우 법정관리를 면한 직후이다 보니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호타이어 해외매각은 결국 막지 못했고, 한국지엠의 갑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 아래서 일방적 구조조정이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도록 놔둬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양한 사회적 힘을 총동원하여 외국대기업이나 재벌기업이 일방적 구조조정, 대규모 희망퇴직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외자본과 재벌기업들에게 특권만 누릴 것이 아니라 국내경제, 지역경제, 일자리 등에 대한 강한 사회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해야 한다.

최근 진행되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먹튀자본과 재벌적폐세력의 탐욕의 산물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정부지원금 빨아먹기에 이골이 난 지엠자본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손도 안대고 코 푸는 식으로 문재인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먹으려고 시작한 것이 군산공장 폐쇄이고, 한국지엠 철수협박이다. 현대중공업 권오갑 사장이 담화문을 통해 “회사 체질개선 마무리 단계, 더 이상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한 것이 지난 2015년 6월1일이다. 그런데 아무 구조조정 사유가 없는 2018년 4월3일 사무기술직 400명에다 생산기술직 2000명을 구조조정 하겠다고 나섰으니 어찌된 일인가? 최근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삼아 정기선 3세 경영체계를 완비해온 현대중공업이 이제 전원 비정규직 생산체계로 다가오는 조선호황기를 맞이하려고 선제적 구조조정을 발표한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사회적 책임감이라고는 눈꼽 만치도 없는 갑질 중의 상(上)갑질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에게는 여론의 질타와 더불어 정부 지원축소 등 징벌적 조치도 취해야 한다.

재벌세력의 구조조정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공간을 이용하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을 무력화하는 방향에서 진행된다는 점이 심각하다. 때문에 정부도 경각심을 가지고 무분별한 구조조정을 적폐청산과 경제대개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현대중공업의 이번 구조조정 계획은 문재인 정부가 ‘향후 4년간 조선업에서 적절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조선산업발전전략을 악용한 것이다. 구조조정은 단순히 비용절감 차원에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업에서 정규직 노동시장을 해체하고 비정규직 노동시장만 남기자는 것이다. 결국 정규직은 거의 소멸하고 비정규직만 남게 되고, 전체 노동자임금의 하향평준화가 진행되면서 전체노동자 임금총량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정책을 흔들고, 소득주도 성장동력을 잠식하게 된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정책,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산업정책, 구조조정과 연계해 입안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지엠, 금호타이어, STX조선 등 최근 구조조정 사업장이 모두 산업은행 책임과 연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산업정책, 구조조정정책, 4차산업 영역에서는 시장논리, 심지어 신자유주의 논리에 흠뻑 젖어있는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다. 최근 소득주도성장론 자체가 후퇴하는 듯한 양상마저 보인다. 정규직을 대량해고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고용하면 된다는 식의 일자리 정책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시작에 불과하다. 구조조정이나 4차산업 공간을 이용하여 코너에 몰린 삼성 등 재벌의 총체적 반격이 시작될 것이며, 알게 모르게 여기에 동조하는 관료들이 늘어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발밑에서 자라나는 이런 독버섯을 경계하고 미리부터 그 싹을 잘라내야 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투쟁과 교섭을 더욱 강력하게 진행해야 한다.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해온 재벌대기업들이 구조조정문제만 터지면 노동자들을 죄인 다루듯 하면서 고통을 전가시키고 대량해고를 자행해온 행태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일방적 구조조정은 제조업에서 숙련을 약화시키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이러한 노동배제적 일방적 구조조정 행태가 촛불항쟁을 지나온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왜 항쟁 속에서 꽃피어난 민주주의가 재벌 앞에서 멈춰서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 당사자의 직접행동만큼 강한 힘은 없다. 대량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이 촛불정신이다.

재벌의 구조조정은 고용을 줄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노조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이다. 구조조정 관련 노사대화라는 것도 어떤 방법으로 죽을 것인지를 정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노동이 배제된 일방적 구조조정을 막고 대량해고에 저항하는 것은 당사자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투쟁이거니와 그 저지를 통하여 전체 노동자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 저지투쟁이 해당 당사자에게만 맡겨지면서 각개격파 당하고 있는 점이다. 금속노조, 민주노총 등 상급조직들은 현장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더욱 과감하게 연대전선, 정치전선으로 묶어세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투쟁은 더욱 필요하다. 또한 조선해양에 대한 투자가 경영자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인적 구조조정 역시 노사가 함께 결정해야 할 경영상의 문제이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굳게 단결하여 투쟁할 때에만 재벌과 정부를 대화와 교섭자리에 끌고 올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로 자리에 앉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노동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