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 겉과속 - 2018년 3월21일

1. 우물에서 숭늉찾기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정상회담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상받을 ‘꿈’부터 꾸는 것이다. 그야말로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물론 노벨평화상의 이력을 보면 이런 예측을 하는 것이 그다지 무리한 일은 아니다. 헨리 키신저(1973)도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미하일 고르바초프(1990)에게도 준 상이고, 14대 달라이 라마(1989)도 받은 상이니 도널드 트럼프에게 주지 못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상은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조짐을 보이던 때에는 앞장에 섰던 레흐 바웬사(1983)에게 주었다. 북핵문제를 미국의 의도대로 부풀리는데 기여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모하마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에게 수여하기도 했으며(2005),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한껏 부각시키던 때에는 류 사오보를 수상자로 결정한 바 있다(2010). 이런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미국, 서구의 정치공세와 이념공세의 한 축을 담당해온 상이라는 평이 지나친 말은 아니다.

웃기는 수상자는 더 많다. 단지 ‘핵없는 지구’를 주창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버락 오바마(2009)를 수상자로 뽑기도 했다. 그것도 미국 대통령으로 현직에 있을 때 상을 주었는데 오바마가 뻔뻔스럽게 상을 받으러 간 것은 물론이다. 그래도 헨리 키신저에게는 공동수상자인 베트남의 레 득 토가 수상을 거부하자 시상식에 가지 않았으며 그 후 상을 반납하겠다고 하는 염치는 있었다.

상이라는 게 수상자를 정하는 사람들의 주관과 이해관계가 작용하기 마련이니 다른 목적과 의도가 개입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 상의 권위는 상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노벨평화상의 경우 장 앙리 뒤낭(초대 1901), 알베르트 슈바이처(1952), 넬슨 만델라(1992)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물론 ‘왜 저런 사람이 이 상을 받았을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예는 훨씬 더 많다.

노벨평화상과 같은 이름 있는 상을 만들려고 여러 나라에서 이런 저런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상을 수락하는 유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태우정권이 만들었던 ‘서울평화상’이 대표적인 물건이었다. 이런 상들과 달리 노벨평화상은 나름대로 ‘권위’를 누리고 있는 상이다.

그러니 비록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환영분위기가 높고 기대가 크지만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 거라는 예측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임은 분명하다. 물론 아돌프 히틀러도 노벨평화상 수상대상자로 거론된 적이 있었으니 못할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DPR Korea와 대화를 하겠다고 한다고,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미국이 개과천선하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우리 민족의 친구, 한반도평화의 화신으로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대결의 방식과 내용, 그 단계가 극단적인 군사대결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전쟁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위기가 완화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미국의 침략과 지배 본성이 초래하는 위험을 완전히 없애려면 멀고 험한 길을 더 가야 한다. 트럼프에게는 평화상과 같은 당근이 아니라 적대와 침략의 헛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채찍질이 더 필요하다.

▲ 지난해 12월 한국 공군 F-15K 전투기와 미국 B-1B 전략폭격기 등이 편대를 이뤄 한반도 상공에서 비행훈련을 했다.[사진 뉴시스]

2. 긴 칼이나 단도나 둘 다 강도의 흉기

미국은 키리졸브(KR)와 독수리(FE) 연습을 4월1일부터 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3월20일 한미 양국의 당국자는 한미군사훈련을 예년과 비슷한 규모로 하겠다는 언론 브리핑을 하였다. 키리졸브 연습은 4월 중순부터 2주 동안, 실제 병력이 투입되는 야외 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은 4월1일부터 한 달 동안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은 예사로운 군사훈련이 아니다. 미국은 몇 년전부터 이 군사훈련이 북을 선제공격하는 전쟁도발연습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선전하고 있다. 올해에는 핵항공모함 등 이른바 전략자산을 동원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북의 특정 지역을 상정한 대규모 상륙훈련을 재개하겠다고 하였으며, 북의 지휘부 제거작전을 중심에 놓고 훈련을 벌인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아무리 약하게 만들고 내용을 순화해도 전쟁연습은 전쟁연습이며 상대에 대한 적대적 도발행위이다. 그런데 전쟁중, 교전중인 상태가 아닌데도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대규모 전쟁연습을 하겠다고 하는 사례를 찾아 보기 힘들다. 이는 대화와 협상에 의한 해결에 뜻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행위이며, 대화합의 자체를 파기하는 것으로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식과 이치로 따지자면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고 그 합의가 관계개선에 의한 평화적 해결의 길로 가겠다는 뜻이므로 상대에 대한 적대적 행위와 조치들은 철회되거나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대화 상대에 대해 지켜야 하는 기본 예절이다.

물론 미국 사람들은 원래 예절이라는 것을 잘모르는 부류다. 그러니 제재철회 등의 예의바른 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빨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어 효력없는 제재라도 붙들어 있어야 협상탁자에 올려놓을 물건이 있는 딱한 사정이다. 그래서 ‘대화를 하더라도 더 강한 제제와 압박을 하겠다’는 허장성세를 부리는 꼴은 당분간 눈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연습은 안될 일이다. 무엇보다 회담개최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이를 이용하여 못된 짓을 벌이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무엇보다 관계개선과 대화를 환영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염원, 주권을 짓밟는 짓이다.

어떤 이들은 ‘북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예년수준으로 하는 것은 양해했다’고 하며 한미군사훈련 실시가 정상회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소리다. 그것이 사실이라 하여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 처지’를 양해받은 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상회담에 부담이 될까 걱정하며 한미군사훈련실시를 애써 외면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주권국가의 국민이 취할 바가 아니다. 더구나 이런 자세는 오히려 정상회담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며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성과조차 백지로 만들 수 있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축소했건 확장했건 군사훈련은 상대에 대한 가장 도발적인 적대행위다. 긴 칼을 들었건 짧은 칼로 바꿔 잡았건 강도짓이라는 데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정상회담 개최를 환영하고, 더 큰 성과가 이뤄지기를 촉구하는 활동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박한 일, 통일운동진영과 평화애호세력이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미국의 전쟁연습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해마다. 그것도 한해에 여러번씩 한반도를 전쟁위기속으로 몰아넣은 미국의 전쟁연습을 우리 손으로 막을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벌이려는 미국의 전쟁연습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이 시대적 사명앞에 뒷걸음질 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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