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게 전쟁범죄 사죄촉구... 제2의 독립운동하는 느낌

“가수가 된 느낌이예요!”

공연을 위해 난생처음 핀마이크를 차는 청소년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무대가 있는 정발장군 동상 주변은 각기 공연을 연습하는 사람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간만에 북적거렸다. 공연 리허설을 마친 친구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흐른다. 조금만 짬이 나면 서로 안무를 맞추고, 맡은 파트의 가사를 흥얼거린다. 마침내 무대에 올라간 친구들은 노래 반주가 나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무를 맞추고 노래를 부른다. 마치 요즘 아이돌처럼 말이다.

“3.1절은 그전엔 그냥 쉬는 날이었죠.”

“3.1운동이요? 사실 그저그런 느낌이었어요. 책 속의 역사?” 

지루한 역사교과서 안의 한 단락이었던 3.1만세운동, 새학기 시작하기 전 ‘그냥 쉬는 날’이었던 3.1절이 조금은 특별한 날이 된 것은 2016년 3월1일부터다. 2년 전 반일평화대회 <천 개의 의자>에서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건립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 해말, 촛불의 힘으로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서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3월1일은 그 소녀상 옆에 반드시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자고 호소했다. 

“그런데 소녀상 건립하고, 강제징용노동 역사를 알게 되면서 오늘 같은 날 일제강점기 때 고생하신 분들이 더 생각나고, (그분들을)기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제징용 피해자나 가족 분들을 실제로 뵙고 보니, (‘위안부’나 강제징용이) 진짜 피부로 와닿는 역사인 거예요. (독립운동도)내 가까운 사람들이 겪은 일 같고...”

‘와닿는 역사’가 된 3.1절, 반일평화대회를 맞아 청소년들은 공연을 준비했다. 청소년만의 끼로 강제징용 문제를 잘 표현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회를 앞둔 며칠 전, 엄선된(?) 친구들과 멘토가 모여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 준비는 쉽지 않았다. 요즘 노래를 하자니, 대부분 나이대 참가자들의 호응이 별로 일 것 같고, 예전 노래를 하자니 아는 게 없다. 겨우 곡을 선정하고 개사에 들어갔다. 개사를 하면서 강제징용 역사에 대해 더 공부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몰아쳐 안무연습을 하다보니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단다.

3월1일 정발장군 동상에서는 반일평화대회 <천 개의 함성>이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파기,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예전의 3.1절이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날이 되었다. 다시 독립운동하는 기분마저 든다. 독립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99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의 식민범죄 사죄를 요구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청소년들도 알고 있다. 친일파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만 독립운동가 후손은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아직도 수요일마다 거리에 나와서 일본의 사죄를 외친다. 강제징용 문제는 공론화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게 친일파 나라라는 증거 아닌가요?” 한 친구의 말이 가슴아프게 들린다. 

“고3이라서 공연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3.1만큼은 우리가 꾸준히 기억하고, 함께 기념해야 하는 날인 것 같아 함께 준비했어요.” 

“개사가 막막할 줄 알았는데, 다같이 하니까 되더라구요. 생각보다 우리의 뜻이 잘 담긴 것 같아 좋았어요.” 

공연은 무사히 마쳤다. 무대를 내려오는 친구들의 얼굴이 밝다. 큰 숙제를 마치고 한시름 덜은 것이다. 공연에서 또래 청소년들에게 강제징용 역사를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발언한 친구에게 왜 3.1대회에 참가하는지 물어봤더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일본은 아직 사죄하지 않았잖아요. 아직 청산되지 못한 역사인데, 우리가 미래세대로서 책임감을 가지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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