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러시아의 최대 언론인 ‘러시아투데이(RT)’는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서 유명 자산관리사의 말을 인용, “비트코인이 올해 안에 5만 달러에 이를 것이고, 그 급등락은 자연스런 것”이라는 보도했다. 반면 미국의 블룸버그(Bloomberg)통신은 독일은행(Deutsche Bank) 수석 자산관리전문가의 말을 인용, “암호화폐 투자자는 그것의 높은 변동성, 가격조작 가능성, 데이터 손실과 도난 등”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두 기사의 공통점은 암호화폐 거래시장이 지극히 투기적이란 거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2일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의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7800달러까지 떨어졌고 한국도 800만원 이하로 급락하였다. 하루 만에 세계 암호화폐 시가 총액이 1100억 달러(약 120조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최근 한달간 급등락을 통해 증발한 규모는 4295억 달러(약 455조원)에 달한다.

이렇듯 지금의 암호화폐 거래 시장은 투기적, 아니 투기판 자체다. 여러 종류의 시장 가운데 오직 화폐 유통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곳은 암호화폐 시장이 유일하다. 채권이나 주식시장에 투기 성격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각각은 담보물이나 기업 가치라는 실물에 뒷받침되고, 인위적으로 가격조작을 한 세력에는 엄한 규제와 처벌이 따른다. 반면 암호화폐는 그 가치를 받쳐줄 어떤 실물도 없는데도 24시간 운영되는 세계적인 거래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는’ 도박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닥터 둠(Dr. Doom. 비관적 경제전문가)’이라 불리는 미국 뉴욕주립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지난 2일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말 비트코인 가격이 2만 달러(2000만원)에 이른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거품”이자 “모든 거품의 어머니(mother of all bubbles)”라고 경고하곤 “지난 10년간 블록체인(block chain) 기술로 나온 유일한 쓰임새가 암호화폐라면, 이것은 사기”라고 강력히 비판하였다. 각국 정부가 규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다.

▲사진 : 뉴시스

그럼에도 일부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은, 암호화폐가 차세대 기술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데 거기에 지나친 규제를 가하는 것은 신기술 발전을 억누르는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일각에선 암호화폐의 출현은 기존 중앙집중화된 금융시스템을 배경으로 소수 금융자본가들 손에 장악돼 있던 금융질서가 무너지고 탈중앙집중화된 개인간 직접거래(P2P) 방식의 새로운 금융질서 출현을 알리는 혁명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암호화페 거래소를 폐지하거나 지나치게 규제하는 건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 발전에 장애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암호화폐 투자(투기)에 대한 사회의 강력한 규제는 여기에 희망을 건 상당수 청년들의 꿈과 바람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들린다.

반면 여기에는 이런 거래가 불로소득을 정당화하고 한탕주의를 만연시키는 것은 물론 절대 다수 노동자 서민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란 데 대한 반성은 없다. 물론 많은 2~30대 청년이 카드빚을 내고 지인들 돈을 빌리면서까지 이 거래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실제 투자액은 전체 규모에 견주면 극히 일부다. 거액을 움직이는 세력은 소수의 다단계 폰지사기단이나 재벌, 금융세력이다. 대외적으로는 탈중앙집중화라고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거래를 주도하는 세력은 역설적이게도 중앙집중화된 월가의 금융자본이다. 국내에서는 1500억원에 달하는 다단계 암호화폐 사기단이 적발되고, 미국에서도 암호화폐 테더를 이용한 비트코인 시세조작혐의가 적발되었다. 비트코인 거래에서 4%의 소유자가 전체거래의 97%를 차지하고, 10대 암호화폐 채굴기업이 90%를 과점한다는 언론보도는 암호화폐 거래의 실제주역이 누구인가를 웅변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탈중앙집중화을 가능케 할지 모르나 이를 이용하는 사회적 힘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실현가능성은 요원하다.

주지하듯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화폐가 되려면 전 사회적으로 지불수단, 교환수단, 가치저장수단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더불어 국가 신용으로 그 가치를 받쳐줘야 한다. 지금처럼 금으로 바꿀 수 없는 불환지폐가 화폐로 인정받는 유일한 담보는 국가 보증 외에는 없다. 어떤 암호화폐도 시중에 물건하나 제대로 살 수 없는 현실과 국가 보증 없이 민간이 임의로 신기술을 앞세워 만든 암호화폐는 화폐가 될 수 없다. 이는 화폐라는 이미지로 포장된 상품일 뿐이다. 어느 나라도 화폐발행과 운영을 민간에 맡기지 않는다. 또 국가화폐와 민간화폐를 병행하는 나라도 없다. 러시아투데이(RT)는 지난달 24일 “미 연준은 암호화페가 통화정책에 개입하게 놔둘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서는 (암호화폐를)죽여야만 한다. 그래서 암호화폐의 양은 고정적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암호화폐가 국가의 재정,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때는 없앨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쉽게 하려고 발행량을 고정해놨다는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비트코인의 발행량은 2100만개다. 이와 관련해 국제결제은행(BIS)의 수장 어거스틴 카스텐스(Agustin Carstens)는 지난 6일 “현재 암호화폐는 거품과 폰지사기, 환경적 재앙의 조합”이라고 비판하고 “만약 중앙은행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암호화폐는 기존 금융시스템과 더욱 연결될 것이고 금융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돈세탁과 불법 상속, 자산의 불법 해외유출 창구로서 암호화폐 거래시장이 이용되는 것을 계속 놔두면 기존 금융시스템과 더 연결이 강화돼 금융안정을 껠 수 있다는 얘기다. 재정통화정책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가 규제를 더 강화하고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에 이른 배경이다.

국가암호화폐의 등장이 예고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아무런 실물가치가 없는 암호화폐가 어떻게 새로운 화폐시장처럼 급부상해 전 세계에 광풍을 몰아왔는가이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용인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단지 투기꾼의 장난이라고만 볼 수 없다. 암호화폐 거래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암호화폐 공개(ICO) 및 거래를 허용하고, 지난달에는 비트코인 선물거래소까지 개설해 암호화폐 폭등의 주된 환경을 제공하였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대척점에 서서 미국이 취한 모든 암호화폐 대책을 거부하였다. ICO를 불법화하고, 거래소를 폐지한 다음 모든 암호화폐 웹사이트를 아예 차단하였다. 암호화폐가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암호화폐 관련 대책이 두 나라의 재정통화전략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 역시 재정통화전략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 이렇게 암호화폐는 단순히 민간차원의 거래시장으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좀 더 살펴보면 이런 흐름은 국가암호화폐 출현과 관련되어 있다.

▲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설치된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각종 가상화폐 가격 정보가 표시되고 있다.[사진 : 뉴시스]

미국 CNBC는 지난해 9월 국제결제은행(BIS)의 “모든 중앙은행은 궁극적으로 자체의 암호화폐(디지탈통화) 제조를 결정해야할지 모른다”는 분기별보고서 내용을 보도하였다. 국가암호화폐의 필요성을 공론화한 것이다. 국가암호화폐란 문자 그대로 국가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현재의 현금체계를 대체할 디지털화폐를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금 없는 세상을 뜻한다. 거대한 화폐개혁이다. 이런 조치가 시행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장점은 익명성이 보장된 돈세탁이나 뇌물 주고받기 등 부정한 거래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또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을 매개로 한 거래도 대폭 줄어든다. 반면 모든 개인과 기업은 현금 대신 자기 전자지갑에 표시된 디지털 금액을 받게 될 거고, 은행을 매개하지 않는 직접거래(p2p)가 보편화된다. 그렇지만 개인의 모든 거래는 예외 없이 국가암호화폐 블록체인망에 기록된다. 정부가 개인과 기업의 모든 자산과 거래를 손금 들여다보듯 할 수 있다. 이는 탈중앙이 아니라 되레 고도화된 정부 중심의 금융체계가 세워진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국가암호화폐 발행을 공식화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스웨덴, 이스라엘, 네덜란드, 캐나다, 핀란드, 에스토니아, 스위스 그리고 영국, 호주 등이다. 특히 중국, 러시아, 캐나다, 영국은 자국의 암호화폐를 금본위제에 의거해 준비하고 있고, 베네수엘라는 자국 석유에 기반한 암호화폐를 이달 20일부터 3월19일 사이에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미 크립토위안(crypto-yuan) 시범운영까지 마쳤고, 조만간 석유선물시장에서 금본위 위안화 결제를 시행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만이 아니라 주변 유라시아경제연합국가들(EAEU: 아르메니아,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 공통된 금본위 암호화폐 사용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이 발표한 암호화폐 ‘로열민트골드(RMG. Royal Mint Gold)’는 영국 왕립조폐국 금고에 보관된 금의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기록한 것으로 1RMG는 금 1g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이제 달러 대신 금에 기반한 디지털화폐가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호주 역시 귀금속에 기반한 국가암호화폐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달러 기축체제에 대한 결정적 타격이다. 미국의 영원한 우방이라는 영국마저 달러 기반을 버리고 금본위에 의거한 새 화폐발행을 준비하는 것은 달러 기축체제가 근본적 한계에 도달했음을 가리킨다.

미국 페드코인(Fedcoin) 그리고 디지털 양적완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달러의 양적완화 조치는 죽어가던 월가 금융체제를 연명시켰지만 과도한 달러 남발에 따른 초인플레이션 우려는 제2의 금융위기설을 낳고 있다. 지난달 세계경제포럼에서는 “10년간 누적된 과도한 유동성과 자산버블, 금융 불균형이 조만간 터질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또 한 번의 붕괴를 겪게 될 것이다”, “모든 시장지표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의 위기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경고가 쏟아져 나왔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 회의 모습.[사진 : 뉴시스]

미국은 제2의 금융위기를 예방하고 달러 기축체제를 유지하려고 이른바 ‘페드코인(Fedcoin)’이란 국가암호화폐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12월 <비트코인은 크다. 그러나 페드코인은 더 크다(Bitcoin is big. But fedcoin is bigger)>란 제목의 기사에서 “비트코인의 급증하는 가치는 미국이 보증하는 암호화폐―일명 페드코인의 발행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경제관리를 위해 보다 강력한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페드코인이 시행되면 경기부양을 위한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쉬워지고, 또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 교수의 유명한 ‘헬리콥터 현금(helicopter cash)’이론처럼 개개인의 전자지갑에 1000달러씩을 쉽게 넣어줄 수 있게 된다. 기존 양적완화는 달러가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금융시장에만 머물렀지만 국가암호화폐가 도입되면 간단한 전자 입력만으로 개인에게 지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양적완화를 더 확대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포춘(Fortune)지 역시 지난해 12월 <연방이 비트코인 스타일의 통화를 필요로 하는 5가지 이유 (5 Reasons the Fed Needs a Bitcoin-Style Currency)>란 제목의 기사에서 첫째 이유로 금융위기 당시 취했던 채권담보 양적완화조치가 특별히 빠르거나 효과적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리곤 “연준이 블록체인 기반의 자금공급을 대신 한다면 보다 직접적으로 경기를 자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춘은 이어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거래시스템 ▲범죄적 자금은닉의 어려움 ▲마이너스 금리 시행의 용이 ▲현금 없는 디지털세상 실현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은 개인과 기업 자산의 완벽한 파악과 관리를 바탕으로 디지털 양적완화조치를 계속하기 위해 국가암호화폐 페드코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포춘은 그 시기를 “가까운 미래, 어느 날”이라고 했다.

이러고 보면 현재 여러 종류의 암호화폐는 어쩌면 국가암호화폐 출현을 위한 실험과정일 수 있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Sputnik)’는 지난달 20일 <비트코인은 ‘미 정보국의 프로젝트’(Bitcoin is a ‘Project of US Intelligence’, Kaspersky Lab Co-Founder Claims)>란 기사를 보도햇고, 미국의 인터넷언론 ‘더 미디엄(The medium)’은 지난해 11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공식 구성원인 예탁결제원(DTCC. The Depository Trust & Clearing Corp.)이 비트코인 투자회사인 디지털통화그룹(Digital Currency Group, DCG) 등과 함께 이더리움, 리플, 크라켄 등 상당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고 알렸다. 미 연준이 회원기업을 통해 암호화폐 개발 및 유통과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다(“central bank funding at its roots.”). 사실 암호화폐가 모두 같은 기능을 갖는 건 아니다. 비트코인이 은행을 매개하지 않는 개인간 직접거래를 실험했다면, 리플은 전 세계 은행들간의 결제를 싸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종의 프로토콜이다. 미국은 국가암호화폐가 필요로 하는 여러 기능과 민간 적응과정을 민간 암호화폐들을 통해 실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의 암호화폐 거래소는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유지될 것이다.

세계에는 이렇듯 금본위에 기반한 국가암호화폐와 달러체제 유지를 위한 부채(채권)기반 국가암호화폐가 각각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위에 있는 달러 기축체제를 지속하려고 한계에 이른 양적완화를 보다 쉽게 확대하게끔 디지털방식으로 전환하려는 것 같다(이에 대한 평가는 다음으로 미룬다). 반면 중‧러로 대표되는 신흥 경제강국들은 달러패권을 끝내고 새로운 국제적 통화체계 수립으로 가는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듯하다. 지난해 9월 열린 9차 브릭스 정상회의는 “불공정한 국제금융제도를 개혁하고 기축통화제의 과도한 지배를 극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금본위 국가암호화폐의 연이은 발표는 그 일환으로 보인다. 이것은 세계가 정치군사적 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다극화의 길에 들어섰음을 말한다. 아마 우리는 스웨덴 발표처럼 5년 안에 세상의 전환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 과정이 부디 인류의 이성과 민중의 지혜로 평화적으로 진행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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