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뉴시스

2018년도 최저임금 7530원이 적용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99대1의 초양극화 사회, 중산층 몰락, 청년실업, 인구절벽 등 이른바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사회에서 "최저임금이 1만원은 돼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실체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고, 각종 재벌 갑질이 사회 문제로 되면서 최저임금 인상은 더 탄력을 받았다.

촛불항쟁 이후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대통령 후보들이 너나없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으니 사실 최저임금 1만원 논쟁은 끝난 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독일 등 해외의 경험도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최저임금이 소득을 증대시키고 성장을 촉진하는 임금 주도, 소득 주도 성장의 촉매체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 순진한 것이었음이 1월을 경과하며 분명해졌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기업이 이미 상여금, 식대 등을 최저임금에 산입하고 있고, 일은 그대로인데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의 편법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 사실상 임금을 삭감하고 있다. 말이 최저임금 7530원이지 사실상 그 어떤 인상효과도 거두지 못할 상황들이 속출하고 있다. 밥상차려놓고 숟가락 뺏는 짓이다.

그럼에도 재벌과 수구정당, 적폐언론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못 살겠다고 비명을 지르며 아예 판을 뒤집어엎자고 나오고 있다. 최저임금 때문에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물가가 오르며, 자영업자들이 혼자 밤을 새며 장사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들이 언제 한 번 자영업자의 이익을 대변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중소 자영업자 보호 관련법을 앞장서서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자유한국당이고, 멀쩡히 장사 잘 하고 있는 자영업자를 내쫓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앞장서는 게 이들 기득권층이었다.

문제는 정부가 여기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대변하며 최저임금 정책을 안착시켜야 할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부터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느니, “정기상여금, 교통비, 중식비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 소신”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하더니, 이젠 아예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최저임금 문제를 새로운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제넘은 제안까지 하고 있다.

어수봉 위원장이 황교안 국무총리 시절 정부추천 공익위원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한다. 지난해 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올해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확정할 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촛불항쟁의 파고에 눈치를 살폈을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실현하는데서 중립이란 없다. 중립을 지키는 최저임금위원장도 필요 없다. 어수봉 위원장이 최저임금 무력화 시도에 앞장서는 행태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사퇴하는 게 순리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무력화 기도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벌써 정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조절론이 불거지고 있고 대통령도 흔들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한 번 살펴보자. 지난 2014년 재벌 대기업 지원금은 무려 126조 원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연구개발, 비과세감면, 공공조달, 정책자금 등 현금 지원만 그렇다. 여기에다 환율방어를 통해 수출 대기업에게 몰아준 국민 혈세가 매년 수조원이다.

지원금 4조원 정도로는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안착할 수 없다. 구체적인 전달체계도 아직 미비하다. 각종 지원책을 더욱 보완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재벌개혁에 나서야 한다. 재벌이 양보해야 하며,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경제체질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최저임금 정책을 특정 계층만을 대상으로 한 고립적인 시혜정책으로 볼 게 아니라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거대한 경제 혁신정책으로 봐야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최저임금 1만원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점이다. 99대1의 초양극화 사회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한 뼘 대기도 평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정책에서 후퇴하면 경제정책 모두에서 후퇴하게 된다. 그러면 민심은 동요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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