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사상 백문백답9

문 : 앞에서 사회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 관료제를 폐지하고 자치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사회주의 국가가 소비에트 민주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인민 민주주의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또 두 가지는 서로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까?. 언젠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 때문에 떠들썩했는데 그것도 함께 설명해 주세요.

답 :

1) 부르주아 독재

이제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어떻게 해서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의 독재에 기여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부르주아 독재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라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은 이웃나라 일본을 보십시오.

일본은 전후 지금까지 70년간 자민당이 정권을 유지해왔습니다. 그 중간 한두 번 바뀐 것은 그저 체제에 양념을 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두 번 바뀌었다는 게 자민당에서 떨어져 나온 분파일 뿐입니다. 이게 자민당 독재가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어디 일본만 그런가요? 서구 민주주의 가운데 일본과 같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전쟁 이후 70년간 정권은 거의 대부분 부르주아 보수파가 장악했습니다. 68혁명 이후 70년대에 걸쳐 서구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10년 정도 부르주아 민주파가 정권을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보수파 독재의 역사에 끼어든 막간극에 불과했습니다.

스웨덴 등 북구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했습니다만, 이곳에서 사회민주당은 이미 체제 내화하여 부르주아 정당이 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최근 영국의 블레어 정권이나 미국의 클린턴 정권은 신자유주의 아래 민주파가 보수화된 결과 이루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2) 지역 단위의 선거

전후 서구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부르주아 독재 그것도 대개는 부르주아 보수파의 독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저 인물만 바뀌었고 지배계급은 여전하죠.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는 보통 민주주의이고 공산당조차 합법화되어 있는 자유주의 체제입니다. 이런 체제에서 부르주아 독재, 보수파의 독재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대표성의 위기라는 문제를 제시했습니다. 부르주아 계급독재의 이면이 바로 대표성의 위기이죠.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형식 자체를 다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철학자, 사회학자는 이런 계급독재, 대표성의 위기를 여러 가지로 설명해 왔습니다. 혹자는 투표율이 낮은 데(유권자의 무관심) 원인을 찾기도 하고, 혹자(참여 민주주의자)는 간접 민주주의라는 형식에 원인을 두기도 합니다. 또 혹자(비판철학파)는 대중의 의식이 물화되어서 부르주아 계급의 사탕발림에 넘어갔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정당 정치의 왜곡에 원인을 두기도 합니다.

대표성의 위기, 즉 부르주아 독재의 원인에 관해서는 한 명의 이론가마다 한 개의 이론이 있다고 할 정도로 무수한 이론이 제기됩니다. 소비에트 민주주의 형식과 비교해 보면 바로 이 점, 즉 지역 대변 체제라는 것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데, 아무도 지역을 대변하는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마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은폐하고 일부러 주변적인 문제점만 건드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체 지역이란 무엇입니까? 각 지역에는 공장도 있고 농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이는 부차적인 의미밖에 가지지 않습니다. 지역이란 무엇보다도 소비의 영역입니다. 여기에는 가정이 있고, 시장이 있고, 병원과 학교가 있고 카페가 있습니다. 사람도 주로 여기에 있죠. 반면 생산기관이 있는 곳은 도시의 주변이며 시골이고, 가게도 카페도 없고 그저 아스팔트에 굴뚝뿐입니다.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아요.

우리나라 창원이나 안산이라는 곳을 가보면 소비 지역과 생산 지역이 꼭 반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 차이는 지나가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생산기관에서 개인은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활동합니다. 그러나 지역에서 각 개인은 원자화되어 흩어져서 존재합니다. 집단으로 행동할 때도 그저 군중일 뿐이죠.

3) 명망가

그런데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지역을 단위로 합니다만, 모두 주소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 그 지역이란 소비 지역에 한정됩니다. 아무도 공장이나 논밭에 주소지를 설정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결국 소비 지역을 단위로 하여 소비 지역을 대변하는 의원을 뽑는 선거가 되죠. 

그래서 지역을 단위로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항상 생산보다는 소비가 선거의 이유가 됩니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대표적인 이슈를 보면 잘 이해할 겁니다. 그 모든 이슈는 주권자를 소비자로 보는 가운데 나온 이슈입니다. 복지, 집값, 교통, 생활시설 등. 반면 생산의 문제는 거의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소비 지역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 흩어진 개인을 묶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명망가이죠. 따라서 명망을 지닌 사람이 주로 당선됩니다. 변호사, 학자, 언론인 등이 주요 대변인으로 차출되는 이유가 이 명망 때문이죠.

반면 노동자 농민이 각 생산단위에서 아무리 헌신적으로 일했고 대표성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그는 지역에 가면 그저 한 명의 소비자에 불과하니 당선되기 힘들죠. 우리나라에서 소위 운동권이라도 이런 명망을 지니지 않으면 당선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30년간 민주주의 실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지역을 단위로 선거를 치른다면 부르주아 명망가가 항상 당선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역을 단위로 한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부르주아 명망가를 당선시키니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곧 부르주아 독재의 기관인 셈이죠.

4) 프롤레타리아 독재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현실을 이해한다면 왜 사회주의 국가가 지역이 아니라 계급 계층을 대변하는 체제, 즉 소비에트 체제가 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입니다.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소비의 지역이 아니라, 생산의 단위를 기준으로 선거를 합니다. 대의원은 항상 공장, 농장, 학교, 병사 등을 대변하죠. 이런 경우 대의원은 그 생산단위에 가장 헌신적으로 일해 온 사람이 당선되죠.

더구나 이런 경우 사회적인 이슈는 항상 생산의 문제가 됩니다.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어느 정도 분배하는가가 선거의 기본 문제가 됩니다. 반면 생활, 복지, 편의 등은 선거의 이슈에서 거리가 멀어지죠.

여기에서 대중은 평소에 후보가 된 대의원의 성품과 능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왔기에 그 대중의 눈을 누구도 속일 수 없지요. 이런 구조 속에서는 설혹 사회적 명망을 가진 자가 후보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를 지지하는 조직이 없는 한 당선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평소 노총이나 조합 등에서 활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금방 이해할 겁니다. 물론 여기서도 서로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경쟁하는 어느 편으로 권력이 넘어가더라도 전체적으로 계급의 독재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치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인물이 바뀌더라도 계급은 동일하듯이 말이죠.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이처럼 생산의 단위를 기준으로 대의원을 뽑는 체제라는 점이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되는 근거입니다. 이런 형식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게 되죠.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일당 독재라 합니다. 공산당밖에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나 소비에트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공산당 후보만 출마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은 금지되었지만 각종 단체가 자기의 대표를 출마시킬 수 있고 개인도 독자적으로 출마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거라도 항상 일정한 불확실성이 존재하죠.

그런데도 공산당이 혁명 이후 80년간(소련의 경우) 지속적으로 정권을 장악하여 프롤레타리아 정권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된 데에는 소비에트 민주주의라는 형식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계급독재의 체제이죠.

5)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한계

그런데 우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계급독재로 파악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비에트 민주주의 역시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모든 고정된 것은 썩어가게 마련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형식인 소비에트 민주주의도 일정한 단계에서는 역사를 추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사회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데 소비에트 체제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소비에트 체제도 한계를 드러냈죠.

다른 경우는 제쳐 놓고 두 가지 경우에 그런 체제는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그런 체제는 식민지 해방 투쟁이 벌어진 중국이나 한국에서 많은 폐해를 끼쳤습니다. 그리고 60년대 이후 서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장 육체노동자를 대신하여 새로운 지식인 노동자가 등장하자 노골적으로 그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문제점은 다음번에 인민민주주의를 다룰 때 살펴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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