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조선) 예술단을 환영하며

▲ 삼지연악단의 연주 모습. [사진 연합뉴스TV 동영상 갈무리]

남북은 지난 15일 예술단 관련 실무회의를 갖고 남측 공연을 확정했다. 세상은 온통 낯선 삼지연관현악단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가지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는 만남이 통일의 시작이고, 그 가교는 문화예술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십여 년간 남북 문화교류 사업 현장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140명으로 구성된 북측의 삼지연관현악단이 내한하고, 그 구성은 80명의 연주단과 노래와 춤을 담당하는 예술가 60명으로 구성이 된다는 것이다. 공연은 민요와 세계 명곡으로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보충설명으로 삼지연관현악단은 2000년대 말 창단되었다는 것이 확인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 발표를 기초로 합리적인 추론을 해보자. 일단 삼지연이라는 명칭은 당장 삼지연악단을 떠올리게 하고, 특히 2009년 창단이 되었으니 더욱 심증이 가며, 특히 팝스오케스트라의 성격이 강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1차적 판단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의문은 여전하다. 삼지연악단은 일단 50명 정도의 악단으로 영문명이 “Samjiyon Band of Mansudae Art Troupe”이다. 즉 삼지연은 밴드이고 80명의 관현악 편성과 노래와 춤을 실연하려면 당연히 만수대예술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 북측 국립중앙예술단의 편재와 단체별 미션 등을 고려할 때 주체예술의 본보기 예술단체로까지 불리며, 한국 방문과 일본 순회공연 등 가장 많은 대외공연 경험이 있는 만수대예술단과 삼지연악단이 주축이 되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는 그렇다면 이번 남북회담에서 당연히 북측 최고의 지휘자 중에 한명인 만수대예술단의 김일진 단장이나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윤이상관현악단 출신인 삼지연악단의 김호윤 지휘자가 나왔어야 한다. 북측의 일반적인 공연 제작시스템으로 볼 때 공연 구성, 특히 연목(repertory)과 출연자의 결정은 해당 단체의 창작기획실 회의를 통해 초안이 만들어지며, 이때 회의에 참가한 창작자인 지휘자와 책임 안무가, 기악부 책임자, 연출가 등이 초안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단장의 의견이나 지침이 적극적으로 반영이 된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만수대예술단과 삼지연악단의 관계자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의문은 왜 굳이 관현악단이라고 한 것일까? 북측의 공연단체는 중앙단체의 경우 교향악단(관현악단)과 예술단, 가극단, 합창단으로 구별되며 당연히 구성과 성격이 다르다. 

연주와 노래와 춤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단일 단체는 가극단(opera troupe)이 아니라면 당연히 예술단(art troupe)이어야 한다. 140명의 구성 중 60명이나 되는 인원이 같이 움직인다면 이는 명칭상 예술단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쉽게 국가행사를 위해 급조된 프로젝트 공연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회담장에 나온 면면이 예상 외였다. 최고사령부 직속의 공훈국가합창단의 윤범주와 김순호, 자매 예술단인 모란봉악단의 현송월과 안정호가 나온 것이다. 특히 두 단체는 속칭 ‘궁중예술단’이라 칭할 정도로 대우와 급이 높은 예술단이고, 주지하다시피 현송월 단장은 현재 북측 문화예술계 최고의 실세 중 한 명이니 말이다. 

그래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로 모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의 최고 예술단으로 “만수대 정신”의 전형이자 “맏아들예술단체”라고 불리며 여성기악중주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삼지연악단을 탄생시킨 만수대예술단이 아니라, 김정은 로동당 위원장 시대의 “만리마의 기수”인 공훈합창단과 모란봉악단을 기본으로 예술단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모란봉악단과 쌍두마차로 알려진 청봉악단을 품고 있는 왕재산예술단의 무용수를 추가하면 140명의 구성은 완성이 되고, 이럴 경우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이 이번 공연의 공식 단체이자 신생단체인 삼지연관현악단의 단장으로 오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실제 공훈국가합창단, 모란봉악단, 왕재산예술단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북측 전역을 돌며 합동공연을 개최한 바 있었다. 연주와 노래, 춤이 모두 있는 음악무용종합공연 형식으로 열린 이 공연에 대해서 로동신문은 “주체음악예술의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한 만리마 시대의 빛나는 성공작”이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여기서 삼지연이라는 단체 명칭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문화예술 외적인 정치적 이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삼지연은 백두산과 관련된 지명으로 항일혁명투쟁을 연상케 하는 상징의 하나이다. 즉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번 공연단이 가지고 있는 위상과 정치적 함의가 담긴 것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군인 신분인 공훈국가합창단이나 모란봉악단이 가진 거부감을 희석하며 남남갈등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의도하고...

물론 이는 제한적인 정보에 기초한 나름의 해석이고 그래서 당연히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틀려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평화와 화해의 사절로 북측의 예술단이 방문공연을 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북측만의 독특한 연주편성인 ‘민족배합관현악’ 연주가, 북측만의 독특한 발성인 ‘민성’으로 부르는 노래가, 세계를 제패했던 최승희의 후예들의 ‘조선춤’이 지금의 대립과 위기 국면에 분명한 훈풍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삼지연관현악단의 정체나 성격이 아니라 공연 내용일 것이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통일 분위기에 맞고 남북이 잘 아는 민요와 세계 명곡으로 구성한다”는 가이드 라인만 나온 상황이라 사실 이 부분이 더욱 궁금하다. 결국 이 지점에서 방한 결과와 평가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은하수관현악단의 파리 공연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소개된 곡은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윤범주 지휘)와 ‘비날론 삼천리’(안정호 작곡), 관현악 ‘매혹’(서정가요 편곡),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생상스 작곡),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 ‘닐리리야’(경기민요), 관현악 ‘신아우’(함경도 민요) 그리고 남측에서도 널리 연주하고 있는 북측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환상곡’이다. 

‘그네뛰는 처녀’는 1957년 창작된 가요를 은하수관현악단의 장조일 단장이 편곡한 민요풍 작품이며, ‘비날론 삼천리’는 북측이 발명에 성공한 화학섬유를 소재로 한 민요풍 작품이고, 관현악 ‘매혹’은 지도자에 대한 흠모의 정을 노래하는 작품이고, ‘신아우’는 1962년 김지현이 편곡한 ‘혁명을 위하여’를 재형상화한 작품이다. 즉 민요와 세계적인 명곡이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이 당시 인솔단장이 바로 이번 회담의 책임자로 나온 권혁봉 국장이다.

결국 이번 방문공연의 성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그 공연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 있을 것이다. 70년 넘게 달라진 체제 속에서 살아온 역사와 북측이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와 의사결정 과정 및 ‘음악정치’로 대변되는 그들의 음악환경 등을 고려해서 남과 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념적 잣대가 아닌 예술적 완성도와 그로 인해 공연이 주는 순수한 감동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그 속에서 동질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나아가는 노둣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수대 정신이든지, 만리마의 기수든지 이번 평창의 ‘특별한’ 공연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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