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사상 백문백답8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노동자-병사 소비에트 회의 모습. [사진출처 : 위키미디어]

문 : 앞에서 사회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 관료제를 폐지하고 자치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사회주의 국가가 소비에트 민주주의라고 하기도 하고 인민 민주주의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또 두 가지는 서로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까?. 언젠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 때문에 떠들썩했는데 그것도 함께 설명해 주세요.

답 :

1) 직접 민주주의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레닌이 러시아 혁명 중에 자발적으로 생겨난 소비에트를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기관으로 인정하면서 소비에트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소비에트가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인가요? 레닌은 소비에트 속에서 정말 무엇을 본 것일까요? 그게 의문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소비에트라는 말은 러시아 말입니다. 평의회는 항상 군중대회를 전제로 합니다. 군중이 대회 그 자리에서 직접 평의회 대표를 뽑았죠. 그래서 소비에트란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한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부르주아 사회는 대의(代議) 민주주의를 택한다면 사회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장은 얼마간 사실이기도 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대의 민주주의라도 대의원의 숫자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 국회가 수백 명 정도라면 저쪽 인민대의원은 수천 명 수준이죠. 대의원 가운데 다시 상임 대의원을 뽑을 정도입니다. 상임 대의원 수준이 되면 우리 국회의원 수준의 규모가 됩니다.

그러나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단순히 직접 민주제 형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대의원의 숫자가 많다고 직접 민주주의는 아니니까요. 소비에트 민주주의 역시 대의원으로 이루어진 간접 민주주의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부 논자 가운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대의원의 기만에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체보다는 자기 지역을, 자기 지역보다는 자기 개인을 대변하는 데 그친다는 비판이죠. 그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등장합니다.

최근 참여를 부르짖고 광장을 강조하는 경향이 그렇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한 형태로 긍정적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닐 것이며(그 문제점은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죠)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직접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소비에트 민주주의도 간접적인 대의 민주주의임에 틀림없습니다.

2) 소비에트는 자치의 확대인가?

그렇다면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다는 말인지 더욱 궁금해지겠죠? 소비에트를 자치기관으로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소비에트에서 의원은 소환 가능합니다. 대의원에게는 우리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특권도 부여되지 않습니다. 봉급은 노동자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또 이런 소비에트 국가는 행정과 입법, 사법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입법기관 밑에 행정위원회, 사법위원회, 군사위원회 등이 있고 입법기관의 구성원인 대의원이 대부분 직접 이런 일을 담당합니다. 물론 하부에 전문 관료들이 있습니다만 상부는 대의원이 직접 담당하죠.

이런 면에서 본다면 소비에트는 자치기관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입법과, 사법, 행정이 통일되어 있다는 이유로 소비에트를 독재기구로 평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이고 입법과 사법, 행정은 서로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만을 고집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삼권분립 체제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정말 3권이 분립되어 있는가, 정당을 통해 3권이 오히려 통합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사법의 독립이란 실제로는 사회 엘리트, 보수파에게 특혜를 베푼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나아가 소비에트처럼 3권이 통일되어 있다고 해서 이게 독재기구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 3권의 통합은 인민을 대변하는 입법의 산하에 이루어집니다. 행정부 독재와는 다르죠. 인민이 독재한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요?

더구나 소비에트에서 3권이 입법부 아래 통합된 것은 독재를 실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치 기관의 성격을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민을 대변하는 대의원이 단순히 법만 만들지 않고 이 법을 직접 실행하고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다. 방점이 책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소비에트에 자치적 특성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게 사회주의 국가의 한 가지 특성이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자치라는 성격이 소비에트라는 독특한 대의방식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소비에트 국가의 형식적 특징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형식에 관한한 <러시아 혁명사>를 쓴 E.H 카에서 인용된 다음과 같은 글이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지역적 조직과 지역적 연방주의가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문제를 해결하는 근거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우리 연방은 지역적인 여러 정부나 국가의 동맹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제조직의 연방이다. 그것은 국가권력이라는 지역적 물신 위에서가 아니라 러시아 공화국 노동계급의 진정한 이익 위에서 수립되어지는 것이다.”

이 글은 1918년 4월 이미 세워진 소비에트 정부의 헌법을 기초하는 기초위원회에서 라이스너의 발언입니다. 이 구절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지역적 정부의 동맹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제조직의 연방이라는 표현입니다. 쉽게 말해서 새로운 국가는 노동자, 농민, 병사 등 사회의 각 계급계층 집단의 대표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익히 경험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대의원은 항상 한 지역을 대변합니다. 무슨 무슨 지역의 국회의원이죠. 그러나 소비에트 민주주의에서 대의원은 항상 무슨 조합, 무슨 공장, 무슨 농장, 무슨 학교, 무슨 군부대의 대변자가 됩니다.

4) 계급독재의 의미

그런데 왜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달리 지역이 아니라 계급과 계층을 단위로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소비에트 민주주의 국가를 이해하는 단서는 이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과 연결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 독재라는 말을 사회주의자는 거리낌 없이 주장합니다. 스탈린은 1918년 헌법위원회에서 헌법초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합니다.

“러시아 사회주의연방 소비에트공화국의 헌법은 현재의 과도기를 위해 계획되고, 그 주요 목적은 부르주아의 완전한 분쇄,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착취의 폐지, 계급 분열이나 국가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 확립을 위해 도시 및 농촌의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의 독재를 강력한 전 러시아 소비에트 권력의 형태로 수립하는 것이다.”

스탈린은 소비에트가 프롤레타리아와 빈농(노농 동맹)의 독재라고 주장합니다. 독재라니까 당장 거부감부터 듭니다. 잘 들어보면 꼭 그렇게 거부반응을 보일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독재는 개인의 독재요, 행정부의 독재입니다. 그러나 계급 독재라고 한다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계급의 독재가 무슨 뜻인가를 생각해보죠. 우선 수단이라는 의미가 있겠죠. 부르주아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수단이고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위한 수단입니다. 이때는 국가가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 수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떤 국가가 어느 계급을 위한 수단이 되려면 그 계급이 그 국가를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이든 선거 체제입니다.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됩니다. 정권을 담당하는 인물은 바뀌더라도 그 인물이 속하는 계급은(또는 인물이 추구하는 목표는) 여전히 동일해야 비로소 지속적으로 한 계급이 국가를 장악할 수 있게 됩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출신이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지반을 제공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가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국가가 그 계급을 위한 수단이 됩니다. 계급독재란 따라서 단순히 계급적 목적의 수단이라는 말을 넘어서서 그 계급 출신이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스탈린이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의 독재라는 의미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는 단지 소비에트가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런 말을 넘어서 소비에트라는 민주주의 형식이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이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유롭게 선거하더라도 항상 이길 수 있는 민주주의 형식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대체 소비에트 민주주의 형식이 어떤 것이기에 프롤레타리아가 선거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또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형식이 어떤 것이어서 항상 부르주아가 장악하고 부르주아 독재기구가 되는 것인가요? 이미 이야기가 길어졌으니 그건 다음으로 미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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