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민주노총 사회세력화’ 주장을 비판한다

‘직선2기’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향후 민주노조운동의 진로를 두고 ‘정치세력화’ 주장과 '사회세력화’ 주장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준모 마트노조 교육선전국장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관점에서 ‘사회세력화’ 주장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와 싣는다. 현장언론 민플러스는 민주노총 임원선거가 왕성한 토론 속에서 바람직한 진로를 찾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기고를 소개한다. 반론은 언제든 환영한다.[편집자]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가 한창이다. 촛불혁명 이후 노동운동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택하고 지도부를 새롭게 선출한다는 점에서 그 파장과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국민적 투쟁으로 이전보다 민주적 권리가 확장되었고, 동시에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모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의 선거. 이 선거는 그리 머지않아 민주노총의 미래를 크게 결정했던 계기로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 심상치 않은 주장이 등장했다.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와 진보대통합은 ‘실패’했고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세력화’를 하자는 주장이다. 

사회세력화를 주장하는 세력의 ‘현재의 민주노총이 촛불혁명 이후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주도할 체력이 없다’는 진단,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성을 확보하기에는 조직력이 부족하다’는 진단, 민주노총 강령에 명시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기 위한 명확한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는 진단에 대해서 필자는 충분히 동의한다. 

▲ 서울 청와대 앞 '노동적폐 청산' 결의대회. [사진 뉴시스]

하지만 ‘진보대통합이 불가능하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입장과 그렇기 때문에 ‘사회세력화를 앞세우자’는 입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조직된 노동자와 민중이 하나의 진보정당으로 단결하여 정치혁명을 통해 전진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있는가? 혁명에 성공한 그 어느 나라에 이것 말고 다른 길이 있었나? 물론 ‘대체 언제 되겠느냐’고 곧장 되물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과 불가능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개인적으로 ‘사회세력화’ 주장을 살펴보면서 일제 강점기 ‘실력양성론’이 떠오른다. 실력양성론은 무자비한 통치로 민중을 짓밟고 있는 일본과의 직접적 싸움을 ‘일단’ 피하고, 일본이 허용하는 틀 내에서 실력을 키워 향후를 도모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당면한 독립이라는 과제를 후일로 미루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의 침략이론인 사회진화론, 문명개화 지상론 등을 합리화시켜주었을 뿐이다. 

촛불혁명 직후 노동자 민중의 직접정치에 대한 요구를 미루고, 노동계급 세력 형성을 먼저 하자? 보다 확장된 정치적 진출을 요구하는 국민적 지향이 분출하는 시대에? 안타깝게도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대중조직에 민심이 모일 리 없다. 

노동자들이 정치적 진출을 유예하는 공백만큼 보수개혁정당이 그 자리를 빼곡히 채우게 될 우려가 크다. 우리의 망설임만큼 진보정당의 단결과 정치세력화는 늦춰질 뿐이다.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노동자들은 우직하게 정도를 걸어야 한다. 힘들 때 지키라고 있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UA젠센(전국섬유화학식품유통서비스일반노동조합동맹, 조합원 172만명)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교류사업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일본의 민주노총 격인 '렌고'는 조합원이 670만 명이다.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8%에 달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가가 일본의 노동운동가보다 훨씬 치열하고 헌신적으로 투쟁하고 있는데도 결과가 사뭇 다르다.

개인적으로 그 원인을 자본주의 모순과 더불어 세계 유일의 분단모순에서 찾는다. 분단모순 속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낙인을 찍고 노동조합을 불온한 세력으로 왜곡시키는 것이 너무나 편리하고, 또 강력한 힘을 가진다. 왜곡된 인식을 극복해도 ‘무서워서’ 노동조합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는 그만큼 어려운 조건에서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조건에 처한 만큼 우리는 시대를 정면으로, 더 예리하게 주시하고 현 상황을 극복할 진보적 노동운동을 개척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서 준비해야 한다. 

▲ 창당 1년만에 제1야당으로 올라선 포데모스 [사진 포데모스 홈페이지 캡쳐]

그래도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성공한 사례들을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최근의 반신자유주의 투쟁 속에서 건설되는 정당들은 고전적 정파 정당의 틀을 뛰어넘어 광장의 대중투쟁, 노동자 민중의 직접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과거의 정파 질서를 뛰어넘어 새로운 노동자 정당의 모델을 만들어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스의 정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경우, 노동자들이 반신자유주의 총파업 속에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집권까지 이룩했다. 또한 스페인의 정당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는 창당 1년 만에 파란을 일으키며 제1야당으로 등극했다. 

조합원을 믿고 촛불항쟁의 광장의 열기를 민주노총이 주도하여 노동자 민중의 직접정치, 새로운 정치혁명의 길을 열지 않는다면 무슨 방법으로 사회세력화를 한다는 것인가. 

‘진보대통합이 불가능하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현재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진보대통합과 정치세력화를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조합원의 변화 발전에 대한 믿음’을 찾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먹은 이유도 이러한 인식에 대한 반발이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세력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진보대통합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2016년 정책 대의원대회, 2017년 정기 대의원대회를 거론한다. 개인적으로도 기대를 안고 참관했다가 실망한 경험이 있어서 결과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되지도 않을 정치세력화 논의를 했다’고 비관적인 결론부터 찾지는 않는다. 현재의 민주노총 집행부가 조합원의 의사와 요구를 제대로 조직하고, 현실화시킬 만한 비전과 정치 실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판단 아닐까. 

2016년 8월 민주노총 조합원 54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95.4%의 조합원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78.6%의 조합원이 단일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58.4%의 조합원이 2020년 총선 전까지 민주노총 중심의 진보대통합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정치적 진출에 대한 압도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제대로 반영했다면 대의원대회의 결과는 달라졌어야 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간부들의 잘못을 조합원들에게 떠넘기지 말자. 그리고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한 굳은 믿음이 없는 세력에게 지도적 위치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다

보수정당에 줄서기식 정치세력화, 쇼핑하듯 사분오열된 정당 중 하나를 선택해 가입하는 식의 정치세력화는 촛불시대의 비전일 수 없다. 노동자의 정치적 힘을 위임하자는 주장, 결과적으로 대리정치를 연장하자는 주장이 촛불시대의 비전일 수 없다. 

‘직장갑질119’, ‘최저임금119’ 운동처럼 노동자들의 당면하고 절박한 문제에 복무하면서 전략적 힘을 얻고 확장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당면투쟁에 앞장서서 연대하고,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전략조직사업에 함께 뛰어들어서 진보정당이 노동조합의 조직과 투쟁에 전략적 동맹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조합이 성장하는 만큼 진보정당도 성장하는 새로운 비전을 세워야 한다. 

돌이켜 보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는 과정,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는 과정, 마트 노동자들의 조직되는 과정, 최근의 파리바게트 노동자들이 조직되는 과정에서도 진보정당은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 선거가 민주노총 조합원의 직접정치 시대를 열어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지도부를 세우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노총 조합원을 굳게 믿는 지도부가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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