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경의 민족 이야기] 민족의 뿌리

우리는 단일민족이며 민족의 시조는 단군이다. 어떤 이들은 당연한 말이라고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사회과학적 개념은 아니다!’라며 고개를 젓는다. “우리는 정말 단일민족일까? 민족의 시조라는 말은 신화적 표현일까? 아니면 모두 단군의 핏줄이란 뜻일까?” 

우리는 <겨레>라는 말을 <민족>의 순우리말 표현쯤으로 안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은 뜻이 다르다. 겨레는 민족을 형성하는 기본 단위인 <족>이라는 의미이다. 민족은 하나의 겨레(족)로 구성될 수도 있고, 여러 겨레(족)가 모여 구성될 수도 있다. 여러 <겨레>가 모여 <민족>을 이룬 서양과 달리 우리 민족은 <하나의 겨레>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겨레>와 <민족>을 같은 뜻으로 쓴다. 우리는 민족이라고 하면 당연히 같은 겨레인줄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 지구상에 단일민족 국가는 몇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덴마크를 제외하면 작은 섬 정도의 국가들이며, 인구 7000만이 넘는 나라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언제, 어떻게 단일민족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살던 원시무리 씨족들은 신석기를 경과하는 동안 족외혼 등을 거쳐 혈연공동체인 종족공동체들을 형성한다. 신석기 농업혁명을 거치면서 종족들 사이에 접촉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분산과 통합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친연관계의 종족들 사이에서는 혈연의 공통성, 지역의 공통성, 방언의 교류로 인한 언어의 공통성이 형성 강화되어 겨레(족)로 발전한다. 겨레는 민족을 형성하기 이전의 맹아단계이다. 

▲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강화 첨성단 [사진 뉴시스]

민족은 고대국가의 성립과 함께 형성되기 시작한다. 권력의 형성으로 정치적 힘이 집결되자, 겨레의 통일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민족으로 발전되는 추동력이 생긴다. 고대국가를 지탱하는 정치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에 피지배 계층이 발생하게 되는데 고대국가는 노예제를 계급적 기초로 하여 탄생하였다. 고조선의 순장제 무덤, 8조법금, 고인돌 등의 유적유물이 이를 증명한다. 3000년 고조선은 북방의 여러 혼란기 동안, 우리 민족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으로서 견고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단군조선의 성립과 함께 민족이 형성되었던 반면, 서양에서는 근대 부르주아 국가의 탄생과 함께 여러 겨레가 모여 민족이 형성되었다. 서양에서 근대 부르주아 국가의 탄생과 함께 민족이 형성된 것은 그 이전에는 민족국가를 형성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였다. 아테네, 스파르타 등 도시별로 소국가군을 이루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 족들이 모여 민족국가를 이룰 수 없었다. 또 로마는 거대한 제국주의적 특성상 잦은 정복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 영토의 변화, 종족들의 이합집산 등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하였다. 서양에서는 대략 4세기경부터 6세기까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여러 종족들의 이합집산이 진행되었다. 게르만족은 고대 유럽의 게르만계 종족들을 통칭한다. 게르만계 종족들은 서고트족, 동고트족, 노르만족, 반달족, 루근트족, 알라마니족, 앵글족, 유트족, 투튼족, 프랑크족, 색슨족, 프리센족, 수에비족, 암브로네스족, 바바리아족, 바타비아족 등이 무수한 종족들로 구성된다. 게르만족이 유럽을 휩쓸면서 또 다시 켈트족, 브리튼족 등 유럽의 거의 모든 종족들과 이합집산 되었다. 5세기 초 프랑크 왕국이 성립되었는데, 프랑크 왕국은 고립분산적인 장원을 중심으로 한 신분제 사회, 긴 어둠의 터널, 중세의 시작을 의미한다. 근대적 민족단위 국가의 탄생 조건이 형성되지 못한 기간이 10세기 넘게 지속되었다. 

이런 이유로 서양에서는 민족단위 국가는 부르주아 혁명과 함께 시작된다. 그런데 하나의 겨레가 민족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겨레가 국가를 기본 단위로 모여 민족으로 결합되었다. 예컨대 프랑스는 북부프랑스족(켈트족)과 프로방스족(페니키아인)이 모여 민족국가를 형성한다. 양자는 유전학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근대 프랑스의 성립과 함께 프랑스 민족으로 결합되기 시작하였는데 역사가 짧은 만큼, 민족적 동질성과 견고성은 느슨할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학문을 배운 지식인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부르주아적 기치’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서양에서의 일방적인 경험이지 보편적인 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가 단군을 <민족의 시조>라고 하고 우리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단군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가문의 조상을 일컫는 육체적 생명에 관한 담론이 아니라 ‘사회적 생명에 관한 담론의 명제’이다. <단군 민족이라는 사회적 생명체>는 단군조선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단군조선을 창립한 단군을 우리민족의 시조라고 칭하며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단군조선의 발전과 함께 우리민족의 역사와 언어,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우리는 서양의 경우처럼 여러 겨레가 모여 민족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살던 우리의 조상은 신석기 시대부터 한강-대동강을 중심으로 새김무늬 토기(빗살무늬토기)를 한반도 전역과 만주 일대로 전파시키며 하나의 겨레로 발전되어 왔다. 단일한 언어, 단일한 핏줄, 단일한 문화권을 형성하는 과정과 신석기 농업혁명의 순환과정을 거치며 청동기 문화를 창조, 이윽고 고대국가가 탄생되었다. 이것은 단일한 겨레로 이루어진 고조선이 성립되었다는 의미이며 고조선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굳건한 민족으로 발전되게 된다. 

당시에도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말갈(여진)족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민족과 하나의 핏줄로 통합되지 않았고, 언어도 문화도 달랐다. 우리가 신석기 농업혁명을 이루며 농경민족으로 진화하는 동안, 유목을 위주로 생활하였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만주족, 몽고족, 아이누족 등 북부 아시아 일대의 모든 민족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들은 아직 고대국가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민족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왔다. 예를 들어 말갈족은 고구려와 발해 시기에 우리의 영토 내에서 피지배 종족으로 한 국가 내에서 살아왔지만, 핏줄과 언어,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우리 민족으로 동화, 흡수되지 않고 다른 민족으로 발전해 갔다. 이러한 사례들이 우리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구체적 증표이다. 이처럼 민족이란 핏줄과 언어, 문화와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해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공고한 사회적 집단이며 운명공동체이며 국가를 단위로 형성된다.

우리민족은 단군조선 때 형성되어 반만년 이상을 단일한 민족으로 살아온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조선부터의 길고 긴 역사로 단일민족을 유지 발전시켜 오는 동안 다져진 단결력과 자주성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공고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일제 식민사학의 잔재로 인해 붕당과 사대로 점철된 민족이라고 교육받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거듭된 외세의 침입을 거족적인 단결과 항전으로 몰아내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낸 것이 우리민족의 역사이며 이는 우리민족의 단결력이 얼마나 높은가를 웅변해주고 있다. 구체적 사례를 한가지만 보도록 하자. 전에 나는 신미양요에서 우리민족의 강인한 자주적 투쟁성이 당시 미군을 얼마나 질리게 했는지는 잘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최근 강화역사박물관에 갔다가 신미양요에 참전했던 미군의 비명을 담은 그림을 보았다. 그림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조선군은 근대적인 무기 한자루 없이 우리에게 대항하여 용감히 싸웠다, 아마도 우리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그토록 강렬하게 싸우다 죽은 국민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미군은 조선민들의 악착같은 투쟁성에 치를 떨면서 더 이상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조선군은 몸이 새카맣게 타버렸거나 포탄에 맞아 산산조각이 난 동료의 시신을 보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 흙을 집어 미군의 얼굴에 뿌리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웠다. 많은 전투를 치러온 미군이지만 이렇게 까지 나라를 위해 온 몸으로 맞서는 적은 처음 보았다고 한다. 조선에 더 있어봤자 얻을 것도 없었고, 다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이 되지도 못했다.... 신미양요가 끝났다, 조선군은 완패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이 철수했다. 애당초의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굳이 따지자면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재연과 그 부대원들의 치열한 애국심과 희생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 강화도사 411∼414쪽 이경수 저, 역사공간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이다. 그리고 지금도 단군민족으로 이어온 우리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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