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조건 없는 남북대화 들고 나와 협상 물꼬 터야

▲미국 공군의 B-1B 전략폭격기가 지난 7월 한국 공군 F-15K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예상대로 한반도 전쟁위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월29일 북한의 ‘화성-12’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시험발사와 차원을 달리한다. ▲기존의 고각발사가 아닌 정상 각도로 발사한 실전형 훈련이었다는 점 ▲미사일로는 처음으로 일본 상공을 가로질러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점 ▲북태평양 2700km 지점에 탄착케 해 괌 수역 타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점 등이 그렇다. 북한이 앞으로는 고각발사 형태로 기술적 완성도를 관련국들에 확인시켜주는 차원이 아니라 정상 각도로 태평양의 목표지점을 향해 미사일을 쏘겠다는 의미다. 바로 미국과 일본을 직접 겨냥한 발사훈련을 하겠다는 것이다. 서배스천 고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 부보좌관이 “북한이 한 가장 도발적인 미사일 발사”라고 평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발사훈련’이란 표현처럼 기존의 미사일 제원이나 기술적 특성을 알렸던 시험발사와 달리 그 군사정치적 의미와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우선 이번 발사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단호한 대응조치의 서막”이라고 한 데서 보듯 미국이 말로만 대화하자면서 실제로는 변함없이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한 것에 대한 직접적 대응이다. 한미연합훈련은 오랜 기간 북은 물론 중국, 러시아도 그 중단을 요구해 온 대북 적대정책의 상징이다. 최근에 북은 미사일 발사를 한 달여 동안 자제하면서 “미국의 행태를 지켜볼 것”이라고 태도 변화를 촉구하였지만 미국은 눈 가리고 아웅 하듯 훈련 규모만 축소하고 그대로 UFG 연합훈련을 강행하였다. 게다가 사드배치를 다그치고, 북과 거래하는 중‧러 기업과 개인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그리고 세계 각국에 대한 북과의 관계단절 압박 등 온갖 적대 행태를 이어갔다. 북한이 “미국과는 점잖게 말로 해서는 안 되며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에 또 한 번 찾게 되는 교훈”이라고 한 배경이다.

다음으로 북한은 이번 ‘화성-12’형 발사의 성격을 “우리 군대가 진행한 태평양상에서의 군사작전의 첫걸음”, “침략의 전초기지인 괌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이라고 밝히고, “전략무력의 전력화, 실전화, 현대화”라는 목표까지 공개하였다. 향후 미국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고 공세적인 미사일 발사훈련을 예고한 것이다. 반면 그 시기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미국의 언동을 계속 주시할 것이며 그에 따라 차후 행동을 결심할 것”이라고 미국의 태도변화 여하에 따라 발사훈련 역시 조절할 수 있음을 밝혔다. 공을 미국에 보낸 것이다. 북한을 대변해 온 재일 조선신보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괌 포위사격을 피하려면 북한에 대한 ‘도발 행위’ 중단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보도하였다, 이제는 미국이 한미연합훈련 중단 선언 같은 실질적 적대정책 폐기조치를 먼저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적어도 지금까지 한‧미‧일 3국 정부의 대응방향은 강경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는 답이 아니다”고 밝히고, 아베 일본 총리와 2차례나 통화하면서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며 군사대응을 포함한 대북 압박 수위를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일 정상 역시 “북에 대한 압력을 극한까지” 높여나갈 것을 합의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을 막겠다고 하면서 실제론 긴장을 더 부추기고 있다. 한미 간에는 공세적인 미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 전술핵무기 재배치 거론, 핵잠수함 구비 거론 등 온갖 강경대응 방안이 꼬리를 물고 있고, 처음으로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35B와 전략 폭격기 B-1B랜서 편대가 동시에 휴전선 인근에 출격해 실탄훈련을 전개하였다. 또 이 와중에 미 국무부는 다시 한 번 개성공단 폐쇄를 옹호하며 한국 통일부의 대북제재 국면 변화를 전제로 한 개성공단 재개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발언에 대해서조차 쐐기를 박고 나섰다. 미국의 내정간섭과 대북 적대정책이 도를 넘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강경대처를 해나간다면 정세는 더욱 예측불허로 갈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미국이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더한다고 해서 북이 굴복하여 미사일 발사훈련을 중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도 이 점은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반도 전략 혼선과 정권 내부 역학관계로 입장을 바꾸지 못하고 지금처럼 계속 나간다면 북한은 예고한대로 괌 수역에 대한 미사일 타격을 실시할 것이다. 미국은 이를 요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는 미국 군축협회 소속 미사일 방어 전문가의 말을 빌려 현재 미‧일에 배치되어 있는 패트리엇3, SM-3, 사드 등 미사일 방어체계로는 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고 보도하였다. 미 외교협회(CFR)도 괌의 미사일방어체계는 한 번도 동시에 날아오는 여러 개의 미사일을 방어 시험해 본 적이 없어 북의 미사일에 대한 요격은 실패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만약 단 한 발이라도 북의 미사일이 괌 수역에 떨어진다면 미국의 미사일방어 신뢰성은 심각히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사실 이번 ‘화성-12’형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통과했음에도 미군과 자위대가 이에 대한 요격을 시도조차 못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동맹방어 약속은 금이 갔다.

미국이 북의 미사일 요격에 실패하면 미 군사패권의 한 축인 미사일방어(MD)에 대한 신뢰와 동맹방어 약속이 무너져 세계 패권이 흔들릴 것이고, 그렇다고 요격하지 않는다면 자국 수역도 방어하지 못하는 나라로 미국의 국제적 위신은 결정적으로 추락할 것이다. 결국 이런 치명적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이 택할 수 있는 방안은 선제타격 등 북에 대한 군사공격을 단행해 전쟁을 개시하거나, 아니면 적대시책을 중단하고 북과 공식적 평화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밖에 다른 길은 없다. 

한반도의 운명이 다시 중대 기로에 섰다. 지금처럼 한‧미‧일 정부가 대북 적대를 계속 밀어붙이면 정세는 조만간 파국으로 흐를 것이다. 이제는 미국이 답변할 차례다. 미국은 중국 외교부가 비난 하듯이 “앞에서 악수하면서 (뒤에서)등에 칼을 꽂는 행보”를 중단해야 한다. 미국이 진정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면 남북화해를 가로막지 말고 적대정책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금의 대북 적대와 대미 추종이 전쟁을 막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 빠트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 외교부가 사실상 자신을 향해 “화중취율(火中取栗.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하고 남에게 이용당하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을 새겨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대화의 여건 마련이 중요할 때 문재인 정부가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들고 나와 물꼬를 튼다면 미국도 적대정책을 내려놓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전쟁을 막는 ‘한반도의 운전자’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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