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미국, 차분한 북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피닉스컨벤션센터에서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칭하면서 "그가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8월 6일 유엔 대북제재결의안 통과와 북의 괌포격 선언,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으로 이어지던 최고의 긴장상태가 훈련중임에도 불구하고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김정은 위원장이 8월 14일 전략사령부 시찰에서 괌 포격에 대해 큰 틀의 비준은 한 것으로 보이나 당장 발사문제는 ‘미국의 행태를 지켜보자’며 대기상태로 들어갔다. 그러자 미국은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서 전략자산 배치를 중단하고, 미군 참가자 7,500명을 줄이는 조치를 취했다. 북 역시 을지프리덤 가디언 훈련이 시작되었지만,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비판담화를 발표하는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 그 동안 북미간 비밀접촉이 있어왔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전쟁일보직전으로 치닫던 정세는 일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북미간 뭔가 진행되는 것 같기도 한데,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나온 게 없는 상황에서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미국은 지금 매우 요란하고 분주하다. 
얼마 전 던포드 합참의장이 한국을 방문하고 북중접경지역까지 갔다 오더니,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기간 중 미군 수뇌부 3명, 미 상하원의원 5명이 한국에 날아 들어왔다. 
존 하이텐 미 전략사령부 사령관,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 새뮤얼 그리브스 미 미사일방어국장은 22일 오산기지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이텐은 미 전략사령부가 갖고 있는 모든 자산을 한반도에 제공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해리스 사령관은 미국이 지역방어를 못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은 언제든지 지역을 방어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누가 봐도 불안에 떨고 있는 보수진영을 달래고자 함이다.

미국 내에서는 더 시끄럽다.
하루는 전쟁시나리오가 나오고, 또 다른 하루는 협상시나리오가 나온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는 “선대화추진, 후군사옵션”이라는 방안으로 정리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의회 전문지 ‘더 힐’ 기고문에서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좋은 옵션은 없다”, “이제는 차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며, “차악의 선택”을 주문했다. 
이미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리처드 루거 전 상원의원,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핵 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 특사 파견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최근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국장은 포린 폴리시(FP) 기고문을 통해 “게임은 끝났다. 북한이 이겼다”고 매우 선명한 평가를 했다.
칼럼니스트 톰 로건은 미국 워싱턴 이그재미너(Washington Examiner) 칼럼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내에서 이제 북의 핵을 용인하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실세’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핵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딜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 트럼프 행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결국 배넌은 18일 경질되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한 발 더 나갔다.
어제(22일)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 중에 북한 정권이 일정 수준의 자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기쁘다”며, 이는 “우리가 과거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프간 전쟁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하던 중에 불쑥 한 이야기다.
틸러슨 장관은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후 북한이 미사일 발사나 도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북의 자제를 추켜세운 것이다. 이어서 이런 움직임을 “미국이 기대해온 신호의 출발점이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이 북한이 긴장의 수준을 자제할 준비가 돼 있고, 도발적 행동을 자제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해석되면, 아마도 미국은 가까운 장래에 대화로 이어지는 경로를 찾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가 담긴 말이다.
틸러슨 장관은 이어 북한으로부터 더 많은 걸 봐야 하지만, 여기까지 북한이 취한 단계만큼은 인정하고 싶다며, 이를 짚고 넘어가는 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확인사살에 나섰다.
22일 미국 서남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칭하면서 "그가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존중한다(I respects the fact that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may be starting to respect the United States)"고 말했다. 이어서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지만, 뭔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Maybe something positive can come about)"고까지 말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괌에 대한 포위사격을 임시 유예하자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논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까지 나서서 북미대화의 모멘텀을 모양좋게 만들어 보려는 미국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반면에 북은 답답할 게 없다는 태도이다. 한 번씩 액션을 취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이 없다. 언제고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를 미국에게 보내주면 된다’는 식이다.

이런 정황에서 과연 북미대화는 열릴 것인가.
공식적으로만 보면 여전히 팽팽하다.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서 북미간에는 날카로운 대치가 이어졌다.
​제네바주재 미국대표부의 로버트 우드 군축담당 대사는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으로부터 미국과 동맹을 보호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순위라고 밝히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미국은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우드 대사는 “대화를 향한 길도 여전히 하나의 방안으로 열려 있”지만, 미국은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을 막는 것을 단념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의 주용철 참사관은 북한이 핵 억지력을 강화하고 대륙간 로켓을 개발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주 참사관은 북한은 절대 "자위적 핵 억지력을 협상 테이블에 놓지 않을 것"이고, "핵 무장력 강화를 위한 길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여전히 북의 비핵화 요구를 접지않고 있고, 북은 핵 억지력을 협상탁에 올려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가가 북미대화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 큰 틀의 합의가 나오면 대화가 열릴 것이고, 나오지 않으면 새로운 미증유의 긴장국면이 조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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