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장급 97명 “연합뉴스 정상화 위해 즉각 물러나야” 성명

▲전국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지부장 이주영)가 지난 6월 23일 정오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박노황 사장 퇴진 등을 촉구하는 ‘연합뉴스 바로세우기 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 : 언론노조 홈페이지]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에서도 전국언론노조가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적폐 부역자’로 지목한 박노황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1984년에 입사한 공채 4기 등 선임 기자들이 지난 21일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후배 기자들의 사장 퇴진 운동에 동참을 선언했다. 이번 성명은 특히 국·부장급 간부 사원들의 입장 표명이어서 ‘박노황 체제’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연합뉴스 선임 기자 97명은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으로 씁니다’란 제목의 성명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박 사장 취임 이후 경영진의 독선적이고 편향적인 경영 행태로 인해 연합뉴스 구성원들은 말 못할 고통을 겪었다”며 편집총국장제 등 편집·보도의 독립성과 공정성 담보 장치의 일방적 폐기, 임명 동의를 받지 않은 편집국장 대리를 내세운 편법 운영 등 문제점을 꼽았다. 

기자들은 이어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박노황 사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 책임”이라며 “언론인 양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그래도 남아 있다면 관련 책임자들을 해임하고 경영진은 연합뉴스 정상화를 위해 즉각 물러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자사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진 사퇴와 회사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들은 “현 경영진을 선임하고, 그동안 이들의 편향된 경영을 방관하고 두둔해온 진흥회 이사진도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즉시 사퇴해야 한다”면서 “이는 공영언론사 연합뉴스를 바로 세우고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임무를 다하게 하기 위한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연합뉴스에선 지난 17일 2011년 입사한 32기 기자 23명과 2015년 입사한 35기 기자 10명이 “권력에 기대고 금력에 숙이는 경영진 필요없다”면서 “더는 연합뉴스를 욕보이지 마라”며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했다. 

한편, 전국언론노조는 지난해 말 ‘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적폐 부역자’ 1차 명단을 발표하면서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을 포함시켰다. 언론노조는 박 사장에 대해 “취임 직후 단체협약을 파기하며 공정보도 제도를 유명무실화하고, 보복성 지방발령 인사를 현재까지 방치”했으며 “편집총국장이 아닌 편집국장 직무대행을 임명해 1년8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부당해고와 객관적 근거 없는 ‘이례적 대기발령’이 난무하는 등 연합뉴스를 총체적인 위기로 몰아가고 있”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성명]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으로 씁니다

 

오랫동안 연합뉴스의 구성원으로 지내오며 부끄러운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난 2년 반 동안 박노황 사장 취임 이후 경영진의 독선적이고 편향적인 경영 행태로 인해 연합뉴스 구성원들은 말 못할 고통을 겪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국립묘지 참배와 국기 게양식 행사는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의 추락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자 치욕의 시작이었습니다. 편집총국장제를 비롯해 노사 합의로 운영돼 온 편집·보도의 독립성 및 공정성 담보 장치는 일방적으로 폐기됐습니다.

기자들의 임명동의를 받지 않은 편집국장 대리를 내세워 공영언론이자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를 편법으로 운영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권과 재벌에 유리한 내용의 기사가 적지 않았습니다. 바른말을 하거나 공정보도를 주장하는 기자와 사원들은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회사 안에 공포가 지배했습니다. 분노와 무기력을 떨치고 공영언론사 기자와 종사자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저항과 노력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장벽을 제대로 넘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최근에는 경영진과 편집국장 직무대행 등이 정권은 물론 재벌기업 간부에게 아부하는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할 말을 잃게 됐습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라는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박노황 사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언론인의 양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그래도 남아 있다면, 관련 책임자들을 해임하고 경영진은 연합뉴스 정상화를 위해 즉각 물러나길 촉구합니다.

연합뉴스의 공공성과 독립성 보장을 책임져야 하는 뉴스통신진흥회의 책임 역시 막중합니다. 현 경영진을 선임하고, 그동안 이들의 편향된 경영을 방관하고 두둔해온 진흥회 이사진도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즉시 사퇴해야 합니다. 이는 공영언론사 연합뉴스를 바로 세우고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임무를 다하게 하기 위한 문제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잘못된 소유·지배구조의 방치도 사태의 중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지난 시절 자행된 외부의 부당한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막고 권력과 금력에서 독립적으로 국민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혁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합뉴스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을 위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싸우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무기력과 침묵, 외면으로 일관한 우리 중견 사원에게도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범자들’임을 자인합니다.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는 후배들의 절규를 더는 외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후배들과 함께 연합뉴스를 바로 세우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2017년 8월 21일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