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평등화, 남북 경제공동체의 필수조건… 유럽연합 노동법 연구해야

▲사진 : 노동과 세계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국 ‘사회적 총파업’ 현장에서 터져 나왔다. 노동현장에서의 불평등과 저임금, 취업 불안정 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노동자들의 한 맺힌 절규다. 노동현장의 제도화된 불평등을 철폐하라는 정당한 요구다.

이 사회의 노동시장은 불평등이 제도화되어 있다. 즉 노동자를 정규직, 비정규직, 기간직, 계약직, 무기계약직, 인턴 등 다양한 신분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차별적 대우를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다양하게 제도화되어 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어려울 지경이다.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해온 주요 노동정책의 하나가 노동현장의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동시장의 불평등은 일반 사회의 불평등이 제도화되어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의 경우 학문적 목적으로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문제되지 않지만 일반인은 이른바 ‘불온서적’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벌 심사대상이 된다. 보안법은 이른바 신분에 따라 법 적용을 달리하는 식의 관행이 정착되어 있는데 이런 모습은 노동현장의 불평등을 제도화해서 노동자를 괴롭히는 것과 흡사하다.

이 사회는 생산 3요소의 하나인 노동에 대해 신분에 따라 처우를 달리하는 제도를 양산해 노동현장의 불평등은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을 심화시키고 있다. 자본에 대해 각종 특혜를 제공해온 것과 대비되는 행태다. 노동자들의 신분을 세분하는 것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노동운동의 일체감, 구심점을 파괴 또는 약화시키려는 저의가 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역대 정권은 기업의 생산비를 절감해주는 목적의 하나로 노동현장의 불평등을 제도화해왔고 이는 전체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가 지체되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노동 노예나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가 존재하고 그것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노동 지옥과 같은 것이다. 특권을 지닌 자들이 위법을 해도 장차관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매우 후진적인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신분에 따라 법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노동시장 제도가 뿌리를 내린 탓이다.

노동시장의 불평등 제도화는 사회 전반에 횡행하는 ‘갑질’의 한 근원이 되고 있다. 정치가 노동자의 구심점을 파괴하고 노노 갈등을 유발할 제도를 만들면서 전체 사회의 민주화에 필수적인 평등 의식이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집단이 노동시장을 황폐화시키는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민주화를 저지하려는 음모적 발상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의혹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공기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조치에 힘을 쏟고 있다. 이 조치는 상당한 의미가 있지만 민간 기업의 1천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그늘이 있다. 민간 기업에 대해 정부가 비정규직 해소를 강압 또는 구걸하는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할 일은 법으로 노동 문제를 푸는 것이다. 즉 입법을 통해 법치를 정착시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새 정부는 비정규직 해소를 위해 일반 기업에서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작업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 직종으로 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구상 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 법 시행과정에서 그 위반 적발 등이 쉽지 않은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일반 기업들이 구조조정이나 직제개편 등과 같은 속임수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시행과정에서 그 준수와 위반 여부가 쉽게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요건을 잘 갖춘 노동 관련법이 유럽연합의 노동법이다.

유럽연합은 알려진 바와 같이 유럽이 세계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다시는 그런 비극의 발생을 막기 위해 만든 국가공동체다. 유럽연합은, 유럽 국가들의 갈등과 충돌을 막기 위한 근본적 조치의 하나가 경제공동체 결성이라고 보고 소속 국가들의 노동시장의 평등화를 위한 제도를 만들었다. 그것이 유럽연합 노동법이다. 이 법은 ‘동일 직장에서 동일 노동을 하면 동일 임금을 받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는 취업 기간뿐이다’라는 내용이다. 시장경제에서 동종 기업이라 해도 그 시장 지배력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직장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유럽연합 노동법은 회원국들이 비준을 통해 자국 법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연합 회원국 노동자들은 20여개 회원국에 자유여행을 하면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언어와 종교, 연령, 성별 등이 달라도 어떤 형식의 차별이나 부당노동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 독일 같은 경우는 임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주는 10여 년간 사주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독일 등 유럽연합 국가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입국하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와 노동계 등은 한국 노동시장의 적폐청산과 평등화를 위한 여러 구상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노동현장이 지난 수십 년간 각종 불평등이 제도화되는 등 신분에 따른 처우가 다르고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일한 처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같은 비정규직이라 해도 임금 등에 차이가 크고 관련 법 적용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된 공기업의 경우 임금체계는 변화가 없어 불평등은 여전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을 다 감안해 검토해야 할 제도의 하나가 유럽연합 노동법이다.

이 사회의 노동시장에서 불평등이 사라져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 노동자와 탈북민 등이다. 이들은 비정규직으로 심각한 비인간적 처우를 받고 있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심각하다. 코리안 드림을 갖고 있던 외국인들은 불평등이 일상화된 한국 노동시장을 거쳐 간 뒤 반한 인사가 되는 일이 흔하고 탈북민은 ‘차라리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괴로워하고 있다.

이 사회 노동시장의 평등화는 남북이 평화적 공존 등을 통한 남북 경제공동체, 남북통일 추진을 위해 시급히 달성되어야 한다. 이는 앞서 밝힌 전체 사회 민주화를 위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상적인 처우를 통한 국가 위상 제고를 위해 필수적이다. 전체 사회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노동시장을 평등화하는 것은 보안법과 같은 악법 철폐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촛불혁명 뒤 이 사회가 청산해야 할 적폐는 너무 많다. 새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에 입각해서 노동개혁 등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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