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상호방위조약 불평등 문제 거론 않고 지나가 – 중국·성주 주민 반발 우려

▲사진 : 뉴시스

한미 정부 간의 사드 진실공방이 하루 만에 진화됐다. 한미 정부가 지난해 7월 합의한 사드의 배치 정당성 여부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기존 결정을 바꾸려는 것은 아니’라며 사드 배치의 기정사실화를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사드 문제는 국회 비준이 필요하고 차기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했던 태도와 큰 차이가 있다. 새 정부가 과거 정부의 결정을 승계한다는 것을 미국에 확인시킨 것이다. 이는 자칫 공약 위배 시비가 나올만한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을 방문 중인 딕 더빈 미 민주당 상원의원을 청와대에서 만나 사드 관련 진상조사 지시는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보내려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조사 지시는 전적으로 국내 조치로 기존의 결정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면서 사드는 북핵 위협 대응을 위해 한국과 미국이 공동 결정한 것으로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자신이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에 대한 국방부 보고가 누락된 데 대해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에 대해 ‘한국 내 사드 배치 과정은 미국처럼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이 강력히 요구된다. 우선 환경영향평가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게 사드 배치 합의를 준수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통고한 것이다.

미군은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일반 기준을 넘어 매우 엄격하게 적용된다며 주변 환경과 운용 요원들의 건강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주한미군과 관련해 한국 방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며 한미 공조가 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정권의 계속되는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은 국제평화를 심각히 위협하는 것으로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공조를 통해 보다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는 단숨에 이뤄지기 쉽지 않다며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사드 배치 기정사실화 언급은 청와대가 국방부의 사드 관련 보고 누락에 대해 대대적인 문책성 조치를 하는 과정에 대해 미국 정부가 즉각 반박한 가운데 나왔다. 문 대통령이 30일 “국방부가 사드 발사대 4기 반입 보고를 누락했다. 사드 발사대 비공개 추가반입된 것은 충격적”이라며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에 대해 미 국방부는 “사드 배치는 완전히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반박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방부가 대통령에게 사드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하지 않은 점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해 야당으로부터 ‘청와대가 국방 안보 쪽을 손보기 위한 노림수가 아니냐’하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야당도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 등에 대한 언급은 적극 회피하는 입장이어서 정치권 논란은 더 격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보수, 진보 정권 모두 기존의 한미방위체계 유지를 원칙으로 한다는 동일한 입장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사드 배치의 법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에 대한 지적이 생략되고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이 강화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가 문재인 정부에서 중국측 입장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최근 약화된 사드 보복 조치를 언제든 강화하겠다는 경고를 해왔다.

또한 사드 배치가 불법이 아니냐 하는 식으로 공세를 펼치던 시민사회단체의 향후 대응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과거 정부와 같은 태도를 취하자 사드 반대라면서 문 대통령 측과 공동보조를 취하던 시민사회단체의 향후 대응이 궁색해졌다. 시민사회의 운동이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원칙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정치권은 필요할 경우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지만 정치적 필요가 있을 경우 당리당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일방적으로 입장을 바꿔 시민사회단체를 궁지에 빠뜨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특히 사드 배치 장소로 확정된 경북 성주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우려된다. 주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이 부적절했고 심지어 불법의 소지가 크다는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논리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사드 철거 촉구운동을 펴왔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성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사드 배치 논란이 수년간 지속되면서 한국의 군사적 예속 상태가 법제화되어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을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사드 배치 논란을 통해 중국이 한국에 다각적인 보복 조치를 취하는 등 변화된 동북아 정세가 확인되었지만 한미 간의 구태의연한 군사동맹 관계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조약은 한반도 방위에 필요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1953년 이 조약이 만들어진 뒤 미국의 전술핵무기 등이 한국에 배치되고 오늘날 미군의 순환배치 원칙에 따라 주한미군에 각종 신무기가 반입되는 것도 이 조약에 근거한 것이다. 이 조약에 의하면 미국은 ‘슈퍼 갑’이고 한국은 반대할 권한이 거의 없는 ‘을’에 불과하다. 21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군사조약의 하나다.

오늘날 한국의 위상이나 중국이 급부상하는 동북아 정세 변화 등에 비쳐볼 때 이 조약을 수정하는 것이 중장기적인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 매우 적절하고 필요하다. 사드 논란은 이 조약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로 부각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이 조약의 문제점 지적을 외면하고 언론도 유사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자주적으로 지정학적 변화를 주도하는 태도가 결여되었다는 것과 함께 미국에 대한 심각한 종속적 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새 정부가 집권 초반의 공세적 기세로 인사논란, 사드논란을 매듭짓고 있지만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참신하고 개혁적인 정권이라면 매사에 원칙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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