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박경순, 단군릉 발굴 성과 등을 바탕으로 과학적 검증

한국사는 언제부터인가 동네북처럼 아무나 두드려 보고 가는 영역이 됐다. 제도권의 고등 역사학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 ‘민족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이론을 내놓기도 한다.

전자상거래가 주전공인 경제학 교수가 경제사도 아닌 고대사 전반에 대한 책을 내고 강연을 하러 다니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소위 강단사학계가 ‘친일사관’에 찌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즉 일제시대부터 왜곡된 우리의 역사, 특히 고대사를 복원하는 과정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 역사가 모두 한민족의 역사인 것처럼 해석하는 속칭 ‘환빠’류의 역사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어떤 학문분야이든 기존의 통념에 도전하는 연구결과는 언제나 나올 수 있다. 시골마을의 평범한 연구자가 내로라하는 세계적 석학들을 제치고 노벨상을 수상하는 사례도 종종 전해진다.

때문에 어떤 연구자가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반드시 폄하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제도권에 속해 있다고 반드시 배척할 필요도 없다. 연구 성과가 파격적이라 해서 무조건 과장과 허위라고 치부할 필요도 없고 무조건 찬양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그의 주장이 합당한지만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역사학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신간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내일을여는책)의 저자 박경순의 이력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특이하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지만 2학년 만에 중퇴하고 주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에 몸담았다. 그러던 그가 진보정당 1기가 끝난 뒤 40년 만에 다시 역사학도로 돌아왔다.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는 역사학도로 돌아온 그의 첫 번째 결과물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다.

북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반도 문명의 선진성 검증

“한반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은 건국연대로 볼 때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이며, 세계적으로도 가장 앞선 시기에 성립된 고대국가이다. 이로써 한반도 문명은 중국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선진문명으로 세계문명의 주요 발상지 중의 하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고조선의 성립은 한반도 문명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등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고대 한반도인들을 하나의 국가 통치 밑에 포괄해 가면서 핏줄의 공통성을 이어 가고 언어와 핏줄, 문화의 공통성을 유지하고 강화 발전시켜 나가도록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민족의 원형을 형성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의 기본 문제의식은 분단사학이 아닌 통일사학의 관점에서 남한의 사학계가 애써 무시해 온 1993년 단군릉 발굴 이후 북한학계의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북은 단군릉을 포함해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유적들을 연대측정법을 통해 분석했다. 그리고 한반도 청동기문화가 중국의 청동기문화보다 1천년 이상 앞서있다고 밝혔다. 저자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고대 문화가 중국 황하문명의 직간접적 영향 하에서 발생하고 발전해 왔다는 동아시아 고대문명에 대한 기존 상식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한반도 문명을 인류 5대 문명으로 규정하거나, 황하 문명 대신 4대 문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군은 실존인물, 기자동래설은 허구

이 책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조선-후조선-만조선으로 이어진다. 단군조선은 한반도 평양 지역에서 실존인물 단군이 세운 나라이다. 종족연합체 추장의 아들로 태어난 단군은 계급 간, 종족 간 대립을 억제하는 사회적 변혁에 기초해 기원전 30세기 초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를 세운다. 후조선은 단군조선을 계승해 세운 국가이고 만조선은 ‘만’이라는 인물이 기원전 194년 후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세운 국가이다.

저자는 중국왕조의 책봉을 받은 이방인 기자조선을 세우고 조선을 문명개화했다는 기자동래설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가짜 신화가 유포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허구성을 밝힘과 동시에 기자동래설의 교훈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 사학계가 위만이라고 부르며 연나라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인물도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을 근거로 옛 고조선 땅에 살던 고조선의 후예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고조선은 단군-후-만 조선을 거치는 동안 ‘단 하나의 조선’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한반도의 신석기 농업혁명에서 청동기 문명 탄생과정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국된 단군조선의 역사로 넘어간다. 그리고 고조선의 강역과 경제, 문화 등에 대한 연구성과를 소개했다. 이외에도 고조선의 대중국 관계와 한사군 논쟁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민족이 북방에서 왔다는 식의 외래기원론을 부정하고 인류의 발상지로서 한반도의 위치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서 21세기 민족 문제에 있어 고조선과 우리 민족 연구가 가지는 함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연구결과도 그렇듯 <새로 쓰는 고조선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반론이 가해질 수 있다. 어쨌든 이 책은 40년 만에 역사학자로 돌아온 첫 저작이며 또 단지 한 권의 책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될 연구 내용들이다. 

민족문제와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조선과 동아시아 선사시대 문제를 단순한 흥미나 일반교양 차원이 아니라 통일 한반도의 위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반드시 치열한 학습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며 이 책은 그러한 문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저자약력>

1956년 전북 임실 출생

1977년 서울대 문리대 입학, 동양사학과 2학년 중퇴

1998년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구속, 7년형 선고받고 4년9개월 복역

2008년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부소장

2012년 통합진보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

주요저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새세상연구소), <마녀 vs 마녀>(아고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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