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쟁위기'에도 모두들 조용한가?

▲ 사진제공: 뉴시스

1. 무심하게 대한다

‘미국 항모는 모여들고, 국민들은 벚꽃놀이를 떠난다.’ 지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외국 언론들은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보도를 쏟아내며 한반도가 위기상황이라고 요란을 떨었지만 정작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황교안 적폐잔당 내각이 사회적 불안감 형성을 막으려고 ‘우려할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선전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

전면전쟁 그것도 핵전쟁의 위기 앞에서 이렇게 태연자약할 수 있는 국민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보수언론들은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국민들이 성숙한 의식을 발휘하고 있다’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결코 자랑할게 못된다. 국민들이 대범하기(?) 짝이 없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우리 국민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정전상태로 60년 넘게 살아온 탓에 전쟁위기에 무감각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1994년 전쟁위기 때 수도권에서는 라면과 생수 사재기가 벌어졌던 것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 물론 그 사재기 현상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라면봉지 뜯어볼 틈도 없게 되어버린 1990년대 말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는 아예 외면함으로써 걱정과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전쟁 발발은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길 외면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을 방편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기 군대에 대한 지휘권도 없고, 자기 나라의 운명을 가지고 남의 나라가 제멋대로 구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 때문이다. 또 전쟁이 나더라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촛불항쟁으로 박근혜를 몰아내고 적폐집단을 응징하는 위대한 승리를 거둔 대한민국 국민이 계속 이렇게 살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2. 사상검증의 기회로 삼는다

어떤 이는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총을 들고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면 그 전쟁은 해보나 마나다. 물론 그는 이념공세를 회피하려는 목적에서 그런 발언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의 한반도 전쟁위기는 미합중국 도널드 트럼프가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발사를 막아보려고 무모한 짓을 벌인 때문에 생긴 것이다. 트럼프는 전법과 군사교리에도 맞지 않게 3개의 항모전단을 한반도 인근에 집결시키는 무리를 해가며 일촉즉발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공공연히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하겠다고 말하고, 한국을 방문한 미국 부통령 마이크 팬스는 ‘우리가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 북한은 트럼프의 의지를 시험하지 마라’고 외쳤다.

미국의 이런 행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동의한 적도 없다. 따라서 이는 북한에 대한 도발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생존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라면 미국에게 도발을 중단할 것을 먼저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 벌이려는 전쟁에 ‘총을 들고 앞장서겠다’고 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충정이 아니라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따지고 보면 트럼프가 자행하는 전쟁책동과 다를 바가 없다. 대한민국에 나라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지도자가 나오려면 더 많은 노력과 세월이 필요한 모양이다.

3. 뭔가를 바쁘게 준비한다

이번 사태에서 눈여겨 볼 것은 입만 열면 ‘북한응징’을 외치던 무리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조기를 흔들어 대는 그들의 평소 행각으로 볼 때 이들은 트럼프의 선제타격 책동을 지지하고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미국에 의한 전쟁위기가 현실화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1994년 전쟁위기를 비롯한 한반도 위기상황 때마다 이런 행태를 보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태가 실제로 이 지경이 되면 자기만 살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국가안보나 국민의 안위는 종북소동 거리거나 안보장사 거리일 뿐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자 국내 물가 중 금값만 큰 폭으로 상승했다. 국민들은 라면사재기조차 포기하고 있을 때, 이 무리들은 뭔가를 바삐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충무공 이순신의 말에 의하면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4. 지성인으로서 품위는 유지한다

지성인 행세를 하는 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데는 북한도 책임이 있으니 미국만 규탄하는 것을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 북핵문제를 비롯하여 북한과 관련된 일에 대해 다양한 입장과 견해는 가질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전쟁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때이며 전쟁으로 이르는 군사도발을 자행하고 있는 자는 미국이다.

양자책임론에 입각해서 이 사태를 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경꾼의 논리로서는 매우 고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는 취할 바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지식인 속에, 진보적인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속에 더 널리 퍼져 있는 이런 태도에 대해 어느 사회학자는 ‘잠재된 식민지 노예의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분단과 적대, 그리고 그것이 만든 법과 제도에 굴종하여 만들어진 의식을 지성인의 자세, 합리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뒤집어진 생각은 전쟁발발 위기라는 극단적인 사태가 닥쳐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지성인의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것인데 노예의식에서 끝내 해방되지 못한 참으로 자랑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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