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3대 문학상' 맨부커상 수상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썼다. 손가락의 관절들이 아팠기 때문이다. 여학생 Y는 타이핑아르바이트를 해주었다. 인쇄를 해오면 여백을 이용해 고치고, 그것을 다시 타이핑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의 반복은 인내를 요했다. 백지 한 장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계속 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나는 지쳐버렸다.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렇게 2년 가까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 소설 〈채식주의자〉 작가의 말 중에서 

이렇게 2년여를 보내며 연작소설을 창작해낸 소설가 한강, 그녀가 지난 17일 새벽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현지 시간으로 16일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에서 맨부커상선정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다른 후보작품을 제치고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됐다.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받는 맨부커상은 제2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데, 영연방 작가의 영어소설에 매년 주는 맨부커상과 비영연방 작가의 영어소설에 격년제로 주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으로 나눠져 있다가 올해부터 인터내셔널 부문도 작가와 번역가에게 매년 수상하고 있다.

지난 3월 작가 한강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 13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된데 이어 지난달에는 6명의 최종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문단에서도 기대를 걸었고 수상이 확정되자 문단 뿐 아니라 온 국민을 기쁘게 했다. 

특히 이번 수상은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내 마음 속의 낯섦>, 중국의 옌렌커 작품 <사서>, 앙골라의 호세 아두아르도 아구아루사 소설 <망각의 일반 이론>, 이탈리아 여성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제탈러의 <인생 전체> 등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을 물리치고 이뤄내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이번 상은 한 작가와 번역가인 데버러 스미스씨에게 공동 수여됐는데, 상금은 5만 파운드(약 8500만 원)로 절반씩 나눠 받는다.

‘꿈을 꾼 후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된 주인공과 그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 애정이 폭력으로 점화되는 지점, 그녀가 육식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등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소설 〈채식주의자〉는 ‘한 여성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로 변화되는 모습을 매우 함축적이고 도발적으로 표현해 기이함의 깊이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장인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유력 일간지들은 "한국 현대문학 중 가장 특별한 경험", "감성적 문체에 숨이 막힌다", "미국 문단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한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이 과연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작품"이라며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은 “데버러 스미스의 문학적 번역 덕이 크다”고 번역가인 스미스에게 공을 돌렸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추사〉,〈다산〉,〈소설 원효〉등을 쓴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딸이기도 한 작가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4년 서울신문 단편소설 '붉은 닻' 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소설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과 김동리문학상 등과 2002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등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한 중견소설가다.

5월 광주를 담은 <소년이 온다>로 주목받았던 작가 한강은 아버지인 한승원 선생과 같은 이상문학상과 김동리문학상을 받기도 했으며, 소설과 동화를 쓰는 오빠 한동림 작가를 비롯해 동생들도 소설을 쓰는 작가여서 소설가 집안이라는 분위기가 그녀의 작가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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