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계단 오르기]첫 번째 계단 - 시인 조연희, 詩의 사생활 20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언니가 운영하는 대학로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언니 말로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밤마실을 갔다 우연히 카페를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은 버는 대로 조금씩 줘도 되니 맡아달라고 통사정을 해서 당시 백수였던 언니는 엉겁결에 ‘시사랑’을 인수하게 되었다.

5평쯤 될까. 테이블이 고작 4개인 조그만 찻집이었다. 커피는 기본이고 간단한 식사와 안주도 제공되는, 요즘 카페와는 다르게 찻집과 호프집을 넘나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상호가 ‘시사랑’이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복선처럼 느껴진다. 당시 시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난 영원히 시를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까.

문제는 ‘시사랑’ 카페의 ‘물’이었다. 언니 후배가 왜 그렇게 강제로 떠넘기려고 했는지 깨닫는 데는 불과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시사랑’은 이름과는 다르게 시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창신동 양아치 1세대라고나 할까. 세련된 문화 냄새가 폴폴 풍기는 대학로 대로변에는 감히 진출하지 못한 원주민 양아치들이 어둡고 습하고 작고 구석진 뒷골목 카페 ‘시사랑’을 그들의 접선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찐득찐득한 ‘세느강’

사람들은 알까. 지금 대학로라 불리는 그 거리의 보도블록 밑으로 한때 검은 개천이 흘렀다는 것을. 청계천으로 흘러간다는 검은 도랑물은 여름이면 다리가 비틀거릴 정도의 악취를 풍겨대곤 했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일명 ‘세느강’이라 불리던 그 실개천은 복개되었다. 지하철 4호선이 들어서고 주말이면 ‘차량통행금지’ 거리로 조성되면서 대학로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 문예회관 대극장과 바탕골 소극장, 샘터 파랑새 극장, 학전, 코미디 아트홀 등 연극공연장이 들어서며 검은 도랑물이 흐르던 이화동 사거리는 예술의 거리가 되었고 공원 구석구석은 거리공연장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저 보도블록 밑으로 흐르던 검은 실개천에 빠져 본 사람은 찐득찐득한 어두운 열정의 소유자가 된다고. 어쩌면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되지도 않는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린 시절 ‘세느강’이라 불리던 그 찐득찐득한 도랑물이 혈관 속으로 일부 흘러들어와서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내가 ‘시사랑’에서 만난 원주민 깡패들도 자신들의 존재를 제도권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지하 어두운 배수관으로 흘려보낸다는 의미에서 나와 같은 동족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언니 후배는 동네 토박이인 언니가 카페의 적임자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일은 만만치 않게 돌아갔다. 고층빌딩 유리창 닦는 K, 풀빵장수 L, 갓 출소한 대학생 Y, 막노동꾼 J 등이 ‘시사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언니가 카페를 인수한 다음 날이었다. ‘시사랑’ 문을 열자마자 낯익은 청년이 들어왔다. 둘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며 기억의 갈피를 뒤적거리는 듯했다.

“어? 누나… M 누나 아냐?”

“어, 너… Y 아니니?”

“맞아!”

“너 어릴 때 모습 그대로다, 야.”

이 순간 모든 것이 결정돼버렸는지도 모른다. Y는 소년원에서 검정고시 패스 후, 대학까지 합격하였다. 그래서 감형을 받아 출소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때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언니와 갓 출소한 대학생 Y는 세월을 단박에 뛰어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언니는 졸지에 그 또래 양아치들의 큰 누님이 되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 또래의 양아치들까지 더 ‘시사랑’으로 몰려들게 되었다는 의미다. 군기가 빠진 형님들이 동생들을 훈계하는 곳이 ‘시사랑’이었으며, 갓 출소한 대학생 친구들의 청춘상담소 또한 ‘시사랑’이었다.

“너… H 맞지? 감히 너랑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악수 한 번만 하자… 이런 영광이….”

오빠라고 자칭하는 그들은 별종의 인간처럼 보이던 내가 자신들과 같은 어둠의 무리일 수도 있다는 것에 감격하는 눈치였다. 어둠은 습기를 몰고 오는 것인가. ‘시사랑’은 하루가 다르게 어두워졌으며 습해졌다. 찌든 담배 냄새와 음식물 부스러기들이 하루 종일 굴러다녔다. ‘시사랑’은 이제 바퀴벌레들 최적의 은신처가 되었다. 벽장 구석구석 바퀴벌레들이 알을 까댈수록 손님은 줄어들었고 언니의 적자는 늘어갔다. 빌딩 유리창, 풀빵장수, 대학생, 막노동꾼 등은 돈 없는 날이 많아서 외상이 갈수록 늘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가게를 내놓았지만, 소문 때문에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언니를 도와준다며 가게에 죽치고 있는 양아치들 때문에 다른 손님들의 발길도 끊겼다. 그럴수록 바퀴벌레들만 무섭게 증식했다. 이제 바퀴벌레를 손으로 때려잡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양아치들에 대한 분노를 바퀴벌레 때려잡는 것으로 삭히고 있을 정도였다.

<바퀴벌레만 보면 그 적응력에 상처 내고 싶어

3억 8천만 년 전에 출몰해

지독히 장수해온 종족이라기에

더욱 박멸을 결심하고 인정사정없이 뭉개보지만

간단히 갈색 분비물만 사정해버릴 뿐

그 모습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는

저 망할 놈에게는 보드라운 속살이란 게 없나 봐.

그러다 그만 그 생각을 하고 말았네.

속,살,에,대,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속살을 보여준 만큼

노출면적 만큼 상처받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속살이 없는 곤충이란 놈

수억 수만 년 동안 종족보존에 성공했나 봐.

원유웅덩이에서 화산 천에서

심지어 다른 종족의 살 속을 뚫고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내는 놈들이라니….

지구가 멸망해도 잿더미에서 검은 더듬이를 흔들며

유유히 한 세기를 탈피해버릴 곤충들

속살이 많은 공룡이란 놈

바보처럼 몸피만 커다래서

한꺼번에 상처받고 일찌감치 모습을 감췄네.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성충으로 진화할수록

말랑말랑한 속살은 퇴화돼 버린다는 걸

저 곤충들은 알고 있을까

나이 먹을수록 이유 없이 비만해져 가는

내 속살의 비밀을,

-졸시 ‘속살에 대한 명상’ 전문>

날이 어둑해지면 바퀴벌레처럼 ‘시사랑’의 어두운 조명 아래 그들이 모여들었다. 그날은 초저녁부터 빌딩 유리창, 풀빵장수, 갓 출소한 대학생, 막노동꾼이 술판을 벌였고, 옆 테이블에서는 이방인처럼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곱슬머리 중년 사내가 혼자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턴테이블에서 정태춘의 ‘북한강에서’가 흘러나왔지만,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형, 그러니까 오늘은 외상값 좀 갚아. 일 있을 때 갚아야지.”

“새꺄, 니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니까.”

언니는 혼자 온 곱슬머리 중년사내와 얘기 중이었다. 곱슬머리는 집이 이 근처이며 작곡가라고 했다. 혼자 서울에 와 있다며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더듬더듬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 개자식 보자보자 했더니… 니가 여기 기둥서방이라도 돼? 새꺄!”

목소리를 높이던 빌딩 유리창이 안주머니에서 꽤 많은 지폐를 꺼내더니 반으로 쭉 찢어 카페 바닥으로 내던졌다. 순간 카페가 조용해졌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가 박은옥의 ‘봉숭아’로 넘어가고 있는데도 카페는 정적이 흘렀다.

“쓰고 싶으면 붙여서 써!”

빌딩 유리창은 매서운 눈으로 좌중을 한 번 휘둘러보더니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비웃음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뺀질뺀질하면서도 건조한 그의 모습이 바퀴벌레처럼 상처받을 속살도 피도 없어 보였다. 뭉그러질지라도 갈색 분비물만 찍 갈긴 채 다시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언니가 벌떡 일어나 지폐를 찢어 뿌린 빌딩 유리창의 멱살을 잡았다. 풀빵장수가 유리창을 뒤에서 껴안았고, 갓 출소한 대학생이 언니를 말렸다. 막노동꾼이 카페 바닥에 흩어진 돈을 주웠다. 곱슬머리는 갑자기 선명하게 한국어로 내게 말했다.

“경찰을 불러요!”

어이없는 이 상황에 어쩌자고 눈물이 쏟아지는 것인지. 엄마와 아버지의 몸싸움…. 그동안 무수히 보아왔던 몸싸움들과는 또 다른 아픔이 엄습해왔다. 난 화장실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근 채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내겐 아직도 상처받을 속살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눈물을 닦고 밖으로 나오니 ‘시사랑’ 간판이 기력이 쇠한 노인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간판 등이 수명을 다한 모양이었다. 하늘을 보니 시사랑 간판과는 대조적으로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별빛이 반짝이는 건 공기입자의 떨림 때문이라던데. 그래서 바람이 심하게 불수록 대기입자가 심하게 흔들릴수록 별빛이 더욱 반짝인다던데. ….

그러면서 문득 글을 쓰는 사람은 통점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주 흔들리고 자주 아파하는 것이라고. 대기 입자가 흔들릴수록 더욱 반짝이는 별처럼, 흔들리는 만큼 내 글도 더욱 반짝일 수 있지 않을까.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나는 경찰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사랑’ 카페로 들어갔다.

조연희 시인은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시산맥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 영상기획 및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주)빅시스템즈 기획실장.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