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관성을 극복해야

세계 다극화 흐름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공식 취임으로 분기점을 맞았다. 그가 내세운 정책 변화가 과연 얼마나 현실화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힘의 약화로 대외정책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미국 주도 동맹질서 유지를 위한 정책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대외 개입을 자제하고 미국을 다시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우려하는 것처럼 트럼프시대의 미국은 “동맹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인내하던 그런 미국이 더 이상 아닐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영국 더타임즈(TheTimes)와의 회견에서 나토(NATO)를 구 시대의 유물로 치부하고 영국의 EU탈퇴(브렉시트)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국가들은 고유 정체성을 원한다"며 "다른 나라들도 떠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EU의 해체 가능성 마저 시사했다. 동맹 보다 각 국 고유의 정체성, 즉 자국의 이해와 요구를 우선하는 주권강화 흐름이 세계적 전환의 핵심동인이 되고 있다.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는 17일 EU외의 브렉시트 관련 협상에서 하드-브렉시트를 천명하였다. 이것은 EU의 관세동맹을 탈퇴하고, EU 사법권으로부터 독립하고, 노동·환경·산업 등 각종 EU 법규들로부터 이탈하는 '주권국가' 영국으로 나가겠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은 유럽 전역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곧 있을 프랑스 대선, 독일과 이탈리아 총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리아 전쟁에서 시리아 정부의 승리는 시리아 주권을 침해하여 시리아 정권을 전복하려던 서방의 시도가 실패하였음을 의미한다, 지난 16년에 걸친 부당한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리비아에 대한 주권 침해와 침략 전쟁은 이제 시리아에서 멈추게 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시리아 정권 전복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리아 문제는 시리아 국민이 결정한다는 자주와 주권재민의 원리는 중동 각 국에 영향을 미쳐 새로운 중동질서를 세우는 기본 원리가 될 것이다. 23일 아스타나에서 열릴 시리아평화회담은 그 시작이다.

오랜 미국의 동맹 터키와 필리핀의 친미노선 이탈은 자주와 주권강화의 흐름이 유럽 만이 아닌 전 세계의 보편적 흐름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가 한 손으로 미국과 손 잡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를 지지하고, 중국 주도 상하이협력기구에 참여한 것은 자국의 입장에 선 자주적 정책의 한 면모다. 중국이 미국에 의한 ‘하나의 중국’원칙을 침해하려는 움직임과 한국의 사드 배치에 보이는 날카로운 반응은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이렇듯 자주와 주권강화는 오늘날 세계질서 전환을 추동하는 핵심동인이다.

오직 한미동맹 이외 그 어떤 정책도 생각하지 못하는 한국의 수구보수세력은 이러한 세계적 전환과 미국의 입장변화 움직임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대북적대정책이라는 냉전 논리와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사드배치와 미군 주둔에 만 메달리고 있다. 심지어 먼저 나서서 미군 주둔비 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점증하는 경제적 보복에 이렇다 할 대응도 못하고, 일본의 소녀상 철거 요구와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강도적 주장에 대해서 조차 쩔쩔매는 모습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이게 주권을 가진 나라냐’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고 있다. 사대주의에 빠지면 자주와 주권강화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촛불혁명은 주권을 강화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담고 있다. 한일위안부 합의와 사드배치 반대를 일관되게 외치는 것은 더 이상 외세의 이해에 휘둘려 국민적, 민족적 주권을 침해받지 않겠다는 국민적 의지의 표현이다.  

자주와 주권강화는 한반도 냉전질서의 완전한 파산을 지향한다. 분단은 이 나라에 미일을 비롯 중러가 개입하게 만드는 근본요인이다. 남북이 대결을 종식하고 화해 협력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외세의 개입을 배제하고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주권강화의 길이다. 

이번 대선은 이같은 시대적, 국민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르는 결정적 계기다. 국민주권 강화를 위한 적폐청산과 구조개혁을 책임지고, 자주적 주권행사를 통한 작전권 이양과 사드 배치 철회, 한일 위한부 합의 무효화를 실현할 정권의 출현만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그리고 남북의 화해 협력과 제2의 6.15통일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의 대선후보들은 이제 더 이상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관성을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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