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장어', 권위적 태도, 민첩한 결정능력 부족 혹평... 파리기후협약 높은 점수

"한국 대통령 자리를 노리며, 반기문 총장이 그의 유엔 업적을 광(光)내려 한다" 헤드라인이 달린 기사가 포린폴리시에 실렸다. [이미지 : 포린폴리시 누리집 화면 갈무리]

미국의 시사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오는 31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콜럼 린치 유엔 출입 외교전문기자가 쓴 반 총장의 업적에 대한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엔 "한국 대통령 자리를 노리며, 반기문 총장이 그의 유엔 업적을 닦아 광(光)내려 한다"라는 헤드라인이 달렸다. 매체는 반 총장이 ‘역대 최고 친미 성향(pro-American) 유엔사무총장’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길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기자는 반 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반 총장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며 반 총장이 미국을 동경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기사는 올해 72살인 반 총장이 한국전쟁 당시 피란 생활의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받은 모범생으로 성장한 유년기를 소개한다. 또한 "반 총장 세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반 총장도 미국이 한국의 수호자이며 ‘자유 진영 세계’의 당연한 지도자 (natural leader)라고 여겼다"고 묘사한다.

역대급 친미,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도록 압력을 가하는데 일조

18세 때 국내 영어 에세이 대회에서 1등을 한 반 총장은 미국 적십자사의 후원으로 미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고, 이 여행 중 12명 남짓의 다른 외국인 학생들과 케네디 대통령을 보게 됐다. 훗날 반 총장은 외교관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계기가 이때 받은 깊은 감명 때문이라고 밝혔다.

외교관 임무를 수행하며 미국과 한층 더 가까워진 반 총장은 ‘한국 내 가장 친미성향을 가진 관료’로 명성을 얻었다. 그뿐 아니라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략을 강행할 당시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일조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부시 정부는 반 총장을 선호했다. 반 총장이 흔들림 없이 한미동맹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코피 아난 전임 유엔사무총장 같은 인물을 기피하고 싶었던 미 정부에게 반 총장은 안성맞춤이었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2003년 미국 이라크 침공이 불법이라고 맹렬히 비난해 부시 정부에게 미운털이 박힌 바 있다. 또한 기사는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과 '세계 도덕의 수호자로서의 헌신'이 반 총장에게는 결여됐다는 점을 미국이 높이 샀다"고 평가했다.

<포린폴리시>는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반 총장의 10년을 평가하며 파리기후협약을 조속히 이끌어낸 것을 가장 큰 업적으로 손꼽았다. 그리고 유엔 기관 내부 및 아프리카 등지의 국가들에서 동성애자 인권신장을 호소하는 데 기여한 점도 주요업적으로 평했다.

반면 아이티 콜레라에 대한 유엔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공식 사과를 미룬 것은 맹렬히 비난받았다. 중동사태와 시리아 내전은 재앙급 실패로 평가됐다. 북한에 대한 반 총장의 외교력도 ‘실패 목록’ 중 하나에 포함됐다.

반 총장은 '수첩 장어'?... 권위적 태도, 소극적 소통방식 지적

기사는 반 총장의 성실한 업무 태도에 좋은 점수를 줬지만 리더십과 관련해선 혹평하며 반 총장의 무능이나 불통을 지적하는 자문위원들을 비롯한 다수 유엔 관련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반 총장과 일하던 유엔 부하직원들은 반 총장은 스태프 회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거나 부하직원이 자신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 발언을 할 경우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럴 때면 비서관 등 관련 직원들은 반 총장의 눈을 피해 다녀야 했다며 반 총장의 권위적인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간 반 총장은 외교관으로서 난처한 질문을 능숙하게 피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기름장어’란 별명을 얻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반 총장은 유엔 내 ‘수첩의 제왕’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이 업무 관련 통화를 할 경우, 미리 수첩에 적어둔 대로만 읽는다거나 세계 지도자급 인사를 만나도 미리 준비해 간 내용만 읽는다는 습관도 밝혀졌다. 유엔 관계자들은 반 총장이 ‘좋은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 차원에서의 소소한 대화는 하지 않았다’고 전하며 그를 유엔 내 ‘불통의 아이콘’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은 본인이 ‘옥스퍼드 영어’를 구사하지 않기 때문에 서구 언론들이 이러한 비판을 내놓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기사는 반 총장이 ‘좋은 중재자(peacemaker)’가 되기엔 "카리스마, 지적 민첩함,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한 고위 자문위원은 반 총장이 케냐나 시리아 등지의 분쟁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기보다 줄곧 특사를 파견한 것에 대해 "(반 총장은) 순간적 상황 판단력이 약하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매체가 매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점수는 이러하다. 10년 임기의 전반적 평가로는 C학점, 파리기후협약 성사를 크게 고려해 점수를 얹어줬을 땐 B학점.

"대한민국 위상을 높인 분을... 명성을 높이지는 못할망정?"이란 이상한 발언

“서운하다. 10년을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고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은 분을 우리가 나서서 그 명성을 높이지는 못할망정 훼손하는 게 이유나 배경이 정치적이든 다른 거든 온당치 못하다.” 반 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숙 전 유엔대사가 지난 28일 고려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최측근으로서 안타까운 심경을 전한 것이겠지만 그의 발언은 오류와 위험 요소로 가득하다.

이날 김 전 대사가 “(반 총장의)10년의 국내 공백”을 언급한 것처럼 반 총장의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명성이나 업적은 외신을 더 많이 참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외신이 전하는 유엔 관계자들의 반 총장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반 총장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은퇴한다 하더라도 국제기구인 유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냉철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하물며 그가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을 불사르겠다”라고 지난 20일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사실상 대선 출사표를 던진 이상, 그의 정치적 능력과 소통 능력 및 업무방식, 의사결정 능력, 가치관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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