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18) 코리아나 : 손에 손잡고 (1988)

1979년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정권의 부도덕성을 타계하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을 소위 말하는 3S(Sex,Sports,Screan)로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올림픽 유치였다.

1980년 9월 체육관 선거로 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가장 먼저 한 사업이 올림픽 유치였다. 80년 12월 올림픽유치위원회의 올림픽 개최지 신청 마감 4일 전에 대한민국 서울은 유치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81년 2월 체육관 선거로 12대 대통령에 정식 취임한 전두환은 본격적으로 유치를 위한 각종 사업을 진행한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유치단은 체육단체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저명한 기업인과 정치인, 언론인 등을 포함한 대규모의 유치단이었다. 아프리카의 회원국 지원을 위한 필사의 노력 덕분에 당연히 일본에서 개최될 것이 유력했던 올림픽은 서울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승리 뒤 전국은 올림픽의 물결이 메아리쳐졌고, 각급 초·중·고등학교에는 저마다 올림픽 꿈나무라는 이름하에 운동선수 육성에 열을 올렸다.

잠실에는 10만 관중이 들어갈 수 있는 종합운동장이 만들어졌고, 송파구 일대에 올림픽 개최를 위한 각종 시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1988년 송파구가 강동구와 분리될 때 구의 이름을 올림픽구로 하자고 논의했을까.

올림픽의 열기는 뜨거웠다. 연이어 올림픽 예행연습 형태로 1986년 아시안 게임의 서울 유치까지 확정됐다. 개최지 도시 설명회에서 서울은 발전된 미래상을 보여주고 정비가 잘 된 도로와 건물을 얘기했다.

따라서 서울올림픽에 발맞춰 서울의 정비는 필연적이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올림픽 개최도시 서울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 국민적 호응 속에서 매우 잘 준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면에는 도시빈민의 속출이라는 정권의 이중성이 내포돼 있었다.

▲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정권의 부도덕성을 타계하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을 소위 말하는 3S(Sex,Sports,Screan)로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올림픽 유치였다.[이미지 출처 ;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영상 켑처]

상계동은 86년부터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주거정비사업이 시행됐다. 올림픽 개최지인 서울에 낡은 주거환경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계동 173번지의 비닐하우스와 판자촌을 철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86년부터 시작한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철거는 87년 4월 상계동 일대에 단 한 채의 천막촌과 판자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없애버렸다.

상계동에서 내쫓긴 주민들은 명동성당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말 그대로 임시거처였던 명동성당을 떠난 주민들은 부천시 고강동 일대의 넓은 대지위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판자촌을 건설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였다.

고강동의 경인고속도로가 지나는 그 허허벌판 땅으로 올림픽 성화가 봉송된다는 것이었다. 성화봉송로 주변에 판자촌이 있으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만들자마자 또다시 공무원들에 의해서 강제철거를 당하게 된다. 올림픽 성화가 그곳을 지나는 시간은 고작 1분이지만 그 1분을 위해 거리로 내몰린 도시빈민들을 받아줄 수 있는 아량은 정부에 있지 않았다.

정부의 관심은 온통 올림픽이었다. 더구나 88년 개최된 올림픽은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올림픽을 개최한 구 러시아(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미국을 위시한 일부 자본주의 국가들이 참가를 거부했다. 연이어 열린 미국의 LA올림픽도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참가를 거부해 반쪽으로 치러졌던 올림픽이 됐다. 서울올림픽은 다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참석하는 올림픽이 될 수 있는 기대를 가진, 말 그대로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될 장이였던 것이다.

거기에 분단 상황 속에서 북한과 경쟁하던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북한보다 더 발전한 대한민국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기회이기에, 외형적으로 비치는 거리에 미관을 해치는 철거민이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아픔은 이후 김동원 감독에 의해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다큐로 탄생했다.

▲ 88올림픽을 위해 철거된 상계동판자촌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그린 다큐 독립영화 '상계동 올림픽'의 장면들

올림픽의 이상을 노래한 ‘손에 손잡고’와 올림픽의 아픔을 카메라에 담은 ‘상계동 올림픽’은 각각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한 획을 긋는다. ‘상계동 올림픽’은 이후 한국 다큐 독립영화의 이정표가 됐다.

‘손에 손잡고’는 코리아나라는 그룹을 국민적 그룹으로 만들었고 코리아나는 이 노래를 통해 전 세계 17개국에서 음악차트 1위를 차지하고 30여국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인기를 누리며 대한민국 가수로는 최초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활동하게 됐다. 그러나 이 노래는 우리나라 잔치에 다른 나라(조르지오 모로더:이탈리아)의 작곡가가 만들어 주제가로 불렸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남겼다.

 

* 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88올림픽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gwGV-0k6JI

* 서문탁 ‘손에 손잡고’ https://www.youtube.com/watch?v=H2WeYqfukuI

* 박완규, 마야, 백청강, 이태권 ‘손에 손잡고’

https://www.youtube.com/watch?v=VSExhRJii0A

* 파이널 스테이지 손에 손 밴드 '손에 손 잡고'

https://www.youtube.com/watch?v=WykSEYCJ3ec

* 이정&윤하 ‘손에 손잡고’ https://www.youtube.com/watch?v=lX5CD7bnlhc

 

* 독립영화 상계동올림픽 소개글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1990#

* 영상 ‘농민운동과 도시빈민운동’ https://www.youtube.com/watch?v=ihU6u2QuCp4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재개발의 그늘, 폭력철거

https://www.youtube.com/watch?v=RQafJQS-O5s

*스포츠로 지배하라! 5공 3S정책(상계동 관련 영상은 37분 이후)

https://www.youtube.com/watch?v=kqhKQnqQL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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