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의 LP로 듣는 한국현대사(12) 한정무 : 에레나가 된 순이 (1954)

전쟁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생활환경과 문화를 바꾸게 한다. 한반도 사회는 5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전쟁에서 힘의 약자인 여성이었다.

▲ 54년 이 노래가 최초 발표한 한정무 레코드

전쟁이 끝나면 여성은 승전국에 바치는 조공품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고려는 몽고에게 항복한 후 매번 여성들을 골라 원나라로 보내야 했기에 조혼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왔다. 화냥년이라는 말이 나돌았던 조선시대의 병자호란도 여성이 전쟁에서 얼마나 비참한 삶을 영위했는지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역시 여성은 정신대란 이름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대한민국의 장자상속제와 가부장적 사회의 남아선호사상 역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대 전쟁을 겪으면서 변화된 사회적 악습이었다. 전쟁의 주체는 권력과 남성이지만 그 피해는 언제나 백성과 여성이었다.

대한민국이 성립되면서 일어난 6.25 전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해 집안을 살피는 일은 여성의 몫이었다. 폐허가 된 전쟁 속에서 여성이 가정을 이끌 수 있었던 가장 큰 돈벌이는 자신의 몸으로 돈을 벌어야 했고 그중에서 가장 큰 돈벌이는 이른바 양공주로 불리는 미군상대의 술집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양공주의 숫자가 무려 100만이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숫자는 이들이 자발적인 변화가 아닌 강제 혹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던 시대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들을 이용했다.

60년대 소위 말하는 양공주는 윤락행위 방지법에서 예외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들이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70년대 기지촌 정화작업은 이들을 사회로 보내는 것이 아닌 미군들의 안전한 성생활을 위한 방법적 선택이었다. 오죽하면 그녀들은 통행금지법에도 저촉되지도 않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사회와 정부는 그녀들에게 양공주보다 더한 양갈보라는 이름으로 그녀들을 저속화시켰다.

▲ 1960년대 학사가수 1호로 불리는 안다성씨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수많은 여성들이 미군에게 몸을 팔았던 그 때 시골의 순박한 19살 처녀 순이는 에레나가 되어야 했다. 미군에게 받은 목걸이와 팔찌를 차고 밤이면 미군들과 양주를 마시는 순이는 동네 청년의 순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겉으로는 고고한척 피하며 속으로는 청년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순박한 시골 처녀로 대표되는 순이가 에레나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손로원은 노래로 만들었고 전쟁의 참상 속에서 이 노래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노래가 최초 발표된 것은 54년 한정무씨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1960년대 우리나라 학사가수 1호로 불리는 안다성씨가 새롭게 발표하면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 한정무 ‘에레나가 된 순이’ https://www.youtube.com/watch?v=Nvs1GwDHdKg

* 안다성 ‘에레나가 된 순이’ https://www.youtube.com/watch?v=NyJYhSJmkS0

* 이미자 ‘에레나가 된 순이’ http://https://www.youtube.com/watch?v=QSv4zgUEYok

* 오나라 ‘에레나가 된 순이’ https://www.youtube.com/watch?v=r7IFSRLh7Bg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