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정훈의 ‘여명의 눈동자’(13)

▲ 사진출처: 새누리당 홈페이지

불과 일주일 사이 박근혜는 정치적으로 사망했다. 현 비상시국은 한국 수구보수 진영 내부의 심각한 정치적 내분이 점차 심화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점화됐다. 전례 없이 급진전된 이 비상정국은 왜 시작됐고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언론의 최순실 국정 농락 폭로 사태로 형성된 10월 정국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과정이 민중들의 대중투쟁에 의해 심화되고 격화된 것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이 글은 전체 정국의 한 축인 수구보수 세력의 내분과 그들의 ‘새로운 의도’를 중심으로 서술하려 한다. 이 새로운 계획을 추진하는 자들을 여기서는 ‘신보수’라 부른다. 그것이 향후 전개될 그들 신보수의 ‘검은 계획’의 정체를 추론해보고, 그 의도를 바르게 간파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1 조선일보, 공범의 변심

박근혜와 친박, 새누리당, 조중동 보수언론, 그들은 박정권 창출의 주역이고 이 나라를 망친 공범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부턴가 차기 권력 교체 문제를 두고 내부에서 갈등을 빚고 심각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근본 원인은 ‘친박 중심의 재집권 전략’이었다. 이들 친박 계파는 개헌이든 대선이든 2선 후퇴할 의향이 전혀 없었다. 4.13 총선으로 친박이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친박이 다시 차기 정권을 쥐려고 집요하게 움직였다. 수구보수 세력 내부에서 그대로 가면 차기 대선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인데도 친박이 주도하는 ‘배타적’ 재집권 연장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그 의지의 실체는 알고 보니 무당 최순실이었다.

이들 공범들은 생각했다. 이대로 정권을 내주고 공멸하는가, 새로운 살 길을 도모하는가? 살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은 박근혜를 죽이기로 공모했다. 박근혜와 친박을 정치적으로 죽여야 수구보수 전체가 산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그전부터 박근혜의 가장 약한 고리가 최순실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 사태가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했건 배후의 누구에 의도에 움직이건 그것은 나중에 역사가 밝힐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이 사태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2 새로운 공모의 시작, 보수정권의 재창출

이들 공모자들, 즉 ‘신보수’의 목적은 박근혜를 제거하고 새로운 차기 보수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위기’와 ‘비상시국’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 일시적 위기보다 중요한 것은 수구보수 전체의 기득권과 생존권이다. 이 위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마도 그들에게는 애국이며 충정일 것이다. 친박 집권과 박근혜 정치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책 없이 기다리다 보수 정권을 잃는 신세를 맞는 끔찍한 상황보다 ‘위험한 선택’이 더 유리하다 판단할 수 있다.

그들 ‘신보수’가 벌이는 계획의 최종 목적지는 ‘새로운 수구 보수정권의 중심’을 다시 재구성하는 것이다. 불과 일주일 사이 이미 친박, 박근혜와 함께 새누리당도 사실상 사망했다. 이들은 적당한 시기에 새누리당을 용도 폐기할 것이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외연을 확대하여 이른바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고, 개헌을 주장하는 유력 야당 인사들을 포함하는 ‘보수연합정당’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을 나와 비박계만 분리되어 새 옷을 갈아입는 수준의 변신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이러한 공감대와 이해관계에 일치하는 세력은 이미 적지 않다.

3 그들의 묘수, 개헌

87년 6월 항쟁 이후 이를 수습한 것은 6.29 선언을 발표한 노태우이다. 이 사태의 중심에 있는 새로운 수구보수는 누구를 제2의 노태우로 만들 것인가? 차기 정권의 유력 주자는 누구인가?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차기 정권 유력주자가 없다. 반기문,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오세훈, 원희룡 등이 거론되는데 모두 대선의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반기문의 지지율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김무성을 세우려 해도 정치적 폭이 너무 좁다. 유승민 역시 아직은 약했다. 그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대선을 피하려하는 이유였다. 그것이 그들이 개헌을 매개로 근본적 한국 정치권 구조개편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는 그저 명분이다.

박근혜가 전격 발표한 개헌 제안은 물론 최순실 물타기였지만, 동시에 보수진영 내부에서 오랫동안 구상한 차기 집권 계획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친박은 제거해도 비박계와 친이계 등이 중심이 된, 이른바 ‘합리적 보수’를 포괄하여 개헌에 우호적 환경을 형성해서 적절한 시기에전격 ‘보수체제 유지를 위한’ 개헌을 실행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1차 목표이다. 이것이 실패할 경우 그들은 다시 19대 대선의 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

▲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4 야당의 적전 분열과 동요

새누리당과 야당을 포함하여 보수정치권 전반에서 개헌에 동의하는 세력이 현재 대다수이다. 그러나 개헌의 목적과 내용은 제각각이다. 민주당은 실제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해답을 내각제 개헌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동시에 전통적인 ‘민주 대 반민주’ 정치투쟁 구도를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한다. 새누리당과 싸우는 것이 피곤하며 매번 호남을 제외하면 승산도 낮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당히 싸우며 공생하고 나누어 먹기를 원한다. 이것을 고상한 말로 하면 일본 자민당과 같은 내각제 중심의 ‘보수대연합’ 체제이다.

이들 개헌의 내용이 제각각이고 시시각각 다른 이유는 한국정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정치적 처지 조건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경우, 친박 주도 개헌을 시도하려고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시도하려던 개헌의 방향은 단임제 폐지나 외교와 국방을 대통령이 맡고, 정치를 실세 총리가 맡는 이원 집정부제 개헌이었다. 만약 개헌론이 19대 대선을 대체할 대안으로 본격화하면 민주당은 문재인 진영과 이른바 개헌을 지지하는 ‘비문’이 분열된다. 국민의당 역시 마찬가지다.

5 미국, 한국정치의 보이지 않는 손

미국은 어떤 입장일까? 한국의 중요한 역사적 장면마다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한국정치를 뒤에서 움직이는 '검은손 미국'이다. 위키릭스의 폭로에 의해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한국정치에 대한 주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장악하고 있고 한국 내정에 일상적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국의 정변과 어떠한 큰 정치의 흐름도 이들의 정책 방향과 역행한 적이 없다. 역행한 경우는 예외 없이 제거됐다. 10.26으로 제거된 박정희가 대표적 경우이다. 우연일까? 박근혜 역시 10.26에 정치적으로 사망한다. 한국 정치에 가장 큰 손은 최순실이나 삼성, 보수언론이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이 이 흐름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는 차후 역사가 밝힐 문제이다. 그러나 미국이 수명이 다한 친박세력의 무모한 재집권 시도를 반길 리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정권이 보인 독자 핵무장론과 대북정책의 무개념과 저돌성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국 차기 행정부는 실패한 오바마 대북정책의 대안으로 대북 직접 협상 전략을 가능한 방안으로 고심 중이다. 정책적 유연성이 없는 무개념 친박세력은 오히려 장애물이다. ‘토사구팽의 시기’란 말이 가장 적절한 용어로 보인다. 누가 더 주도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크게 보아 현재 미국과 새롭게 등장하는 수구보수는 전체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6 사활을 건 권력투쟁의 시작

한국정치는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기존의 정치일정을 모두 무너뜨릴 더욱 강한 정치 폭풍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일시적으로 정비하고 저항하려 해도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때는 늦었다. 박근혜는 이미 식물대통령이며, 대통령 하야 여부는 민심과 대중투쟁의 완강성과 규모 여하에 달려있다. 기존 19대 대선 중심의 정치일정도 따라서 무너졌다. 조기 개헌도 가능하며, 대선 일정이 완전히 죽지는 않았으나 불투명하다. 결국 현 사태를 수습하는 ‘주도 세력’이 차후 새로운 정치일정을 제시하게 돼있다.

누가 이 사태를 주도하며 정리할 것인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시작된 정권교체 투쟁과 이 투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세력이 새로운 정치 일정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 박근혜를 제거한 비박계 중심의 ‘신보수’ 세력이 사태 수습을 진행하려 할 것이다. 최순실을 구속하고, 허수아비 식물대통령을 그대로 두고 내각 총사퇴와 신임 총리를 두고 사태를 수습하려 하고 있다. ‘신보수’는 대중의 본격 진출이 두려워 대통령 하야를 결코 원치 않으나 만약의 사태에 대통령 하야까지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7 민주당과 국민의 당, 환상과 공생

예상대로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은 청와대, 내각 인적쇄신을 요구하며 대통령제 폐해로 개헌은 더욱 필요하게 됐다고 발언했다. 민주당은 ‘국민의 역풍’과 ‘국정공백’을 우려하여 내각 총사퇴와 ‘거국 중립내각’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대변인 우상호는 탄핵, 하야투쟁을 같이할 생각이 없다고 발언하면서 대통령 퇴진 투쟁과 선을 긋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차기 대선 유불리이다. 이 참에 내각에 참여해 차후 민주당에 유리한 정치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기획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 당의 주장도 청와대 비서진 교체와 내각 총사퇴뿐이다.

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이 모든 사태의 공범인 새누리당을 엄벌하고 박근혜를 하야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국민대중과 함께 투쟁의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일정을 주도적으로 창조하여 집권할 의지와 프로그램이 없다. 아니 민주당도 국민의 정치적 진출을 두려워하고 있다. 민주당의 주 관심은 새누리당을 경쟁 파트너를 인정한 19대 차기 ‘대선게임’이다. 이들은 현 사태가 차후 민주당 대선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만을 예상하며 자족하고 있다. 차기 대권은 이제 민주당 것이라는 환상과 망상에 사로 잡혀있다. 사태의 추이를 보여 수구보수 내부의 분열로 생긴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이들과 공생할 생각을 하고 있다.

8 미끼와 함정, 거국 중립내각

새로운 민주정권은 새롭게 변신한 공범 ‘신보수’의 의도를 완강히 저지하며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내각 총리로 거명되는 김종인, 손학규 등은 개헌론자이며 보수 연정론자들이다. 이들은 이전부터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넘나들던 보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비박계가 차후 주도할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보수연합 정계개편의 주요 대상들이다. 이들은 결코 중립이 아니라 그들 프로그램에 보조 세력으로 예상됐던 인물들이다.

문재인, 안철수는 사태의 위중함을 모르고 거국 중립내각을 섣불리 주장했다. 사실 가능치 않다고 판단하며 제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일주일 만에 새누리당이 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주일 만에 친박의 새누리가 아니라 신보수가 주도하는 새누리당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이 신보수의 작전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이 거국 중립내각을 무는 순간 이들 신보수가 추진하는 더 큰 그림에 포섭되게 된다. 민주당은 31일 새누리당의 거국 중립내각 주장에 대해 “청와대의 은폐 시도에 맞서 진실을 규명하는 게 우선”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고 걷어찼다. 박지원 국민의 당 원내대표도 “거국 중립내각과 책임총리제 논의는 얘기할 필요가 없다. 최순실의 귀국 배경을 밝히는 등 진실 규명이 먼저”라 강조했다.

9 박근혜 하야가 국정수습의 시작, 정국의 분수령

이들 신보수는 현재 국민들의 대중투쟁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이 사태를 역으로 주도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거국 중립내각을 미끼 전술로 야당도 과감히 포섭해 새로운 보수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유력 정치인과 정치적 구심을 세우려 하고 있다. 동요하는 야당을 돌려세울 힘은 오로지 국민밖에 없다. 오직 국민대중의 힘으로 박근혜 하야를 관철시키고 국민주도 정치개혁 프로그램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 새로운 민주 정권은 결코 ‘사이비 중립 내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광장에서 국민과 함께 만들어진다.

국정공백론은 보수세력의 기만 슬로건이다. 박근혜 하야는 망가진 국정기강과 체제가 새로 정비되는 새로운 국정의 출발점이지 국정공백이 아니다. 허수아비 박근혜를 그대로 두는 것이 국가혼란이며 국정공백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과 그리고 그 공범들 ‘신보수’의 과거 국기문란 죄부터 조사하여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이며 새로운 민주정부의 출발점이다. 현행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하게 돼있다. 그러나 방법은 다양하며 모든 방법은 국민의 창조력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위에 국민이 있다. 야당주도로 박근혜를 하야 시키고, 국민의 힘으로 특별법과 ‘국가 정상화 특별위원회’를 국회에 구성하여, 우선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현행 헌법조항을 탄력적으로 처리하는 문제를 처리하면 된다.

10 하야, 민주정부 수립과정의 첫 공정

이 사태가 자연발생적이든 누가 의도했든, 권력교체를 위한 권력투쟁은 새로운 방식으로 이미 조기에 시작됐다. 차기 정권은 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세력을 중심으로 개편돼 수립되게 돼있으며, 그 끝이 어디일지는 아직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10월 사태가 새로운 수구세력을 중심으로 조기에 수습될지, 아니면 더욱 복잡한 혁명적 정국으로 해를 넘어서 발전할 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조선일보는 신보수와 이 프로그램의 전위대이다. 이미 친박이 나간 청와대 비서자리에 조선일보 배경의 비박계로 교체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최순실 구속도 주장하던 조선일보도 조만간 민중의 진출을 방해하며 다시 민중의 적으로 돌아설 것이다. 이들의 일차적 목표는 하야 없는 식물 박근혜 대통령 유지와 비박주도 정국조기 수습이다. 이 정국이 시간을 끌고 길어질수록 화살은 다시 전체 새누리당과 공범 비박계로 향하게 될 것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국민대중이 직접 진출하고 국민이 투쟁하고 주도권을 쥐는 만큼만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전진할 것이다. 그 과정의 첫 분수령은 박근혜 하야이다. 박근혜 하야를 실제로 관철해야 민주정부수립의 첫 기반이 국민과 함께 열린다.

신보수가 주도하는 기만극의 실체를 간파하고 낡은 수구보수 체제를 이 기회에 완전히 해체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국민의 손으로 바로잡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수구보수 세력과 기회주의 야당들의 야합으로 다시 농락당하게 둘 것 인가? 한국정치는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가 다시 갈림길에 섰다.

이정훈 위원은 1985년 고려대 광주학살원흉 처단투쟁위원회 위원장, 삼민투 위원장을 지냈다.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으로 3년 옥고를 치른 뒤 오산과 수원에서 노동자회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런던대 아시아태평양 지역학 석사과정,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통합진보당 교육위원, 경실련 하이텔정보교육원 이사, 사람과 사상 소리클럽 출판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민플러스 편집기획위원으로 국제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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